8. 시몬의 집에서 열린 잔치(1)

by 청지기 posted May 1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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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7시 38분


제8과


시몬의 집에서 열린 잔치(1)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557-564; 마태복음 26:6-13; 마가복음 14:3-11; 누가복음 7:36-38; 요한복음 11:55-57; 12:1-11


기억절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막 14:9)


서론 :  인간의 논리로 따져보면 구원의 계획 전체는 하나님의 자비의 낭비요, 자원의 낭비이다. 그것은 사람 속에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마련된 것이다. 그것은 속죄를 받아들이는 모든 이들에게 하늘에 있는 집들을 넉넉히 확보해 줄 수가 있다. 소문이 널리 나 있던 마리아의 아낌없이 줌은 구원의 계획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방법을 예시한 것이다. 왜냐하면 본성과 은혜는 서로 관계를 맺고 있어서 마리아의 승리는 그 근원이 고상하게 하시는 은혜로 충만해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화잇주석, 마 26:6-13)


산헤드린의 음모와 결의

1.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엿새 전에 어디에 이르셨으며 누가 그분과 제자들을 집으로 초대했는가? 그 잔치에는 누구도 함께 초대되었는가?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요 12:1-2)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눅 7:36)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막 14:3)


베다니에 사는 시몬은 예수의 제자로 여김을 받은 사람이었다. 시몬은 공공연하게 그리스도의 추종자들과 연합한 소수의 바리새인들 중의 하나이었다. 그는 예수를 한 교사로 알았고 예수께서 메시야가 되셨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으나 예수를 구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었다. 그의 품성은 변화되지 않았으며, 그의 생애의 원칙도 변하지 않았다.

시몬은 문둥병에서 고침받았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예수께 이끌려갔다. 그는 감사를 표하고자 하였으며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으로 베다니를 방문하셨을 때에 그는 구주와 그 제자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다. 이 잔치에는 많은 유대인들도 같이 참석하였다. 이 때에 예루살렘은 크게 흥분되어 있었다. 그리스도와 그의 사업은 이전 어느 때보다도 더 크게 주목을 끌게 되었다. 잔치에 나온 사람들은 예수의 동향을 면밀히 살폈으며 어떤 사람들은 적의가 서린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소망, 557)

2. 나사로가 살아난 이후 그리스도에 대한 동정심이 고조되자,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어떤 문제를 의논하고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가?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케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저희가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저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요 11:55-57)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회의가 소집되었다. 나사로가 살아난 이후 그리스도에 대한 동정심이 매우 고조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공공연하게 체포하는 것은 위험할 것이다. 그러므로 당국자들은 예수를 비밀리에 체포하여 될 수 있는 대로 조용히 심문하려고 결심하였다. 예수의 유죄 선고가 알려질 때에 변하기 쉬운 대중의 여론의 물결이 그들에게 유리하게 되기를 희망하였다.

그와 같이 그들은 예수를 죽이기로 제의하였다. 그러나 제사장들과 랍비들은 그들이 안전하지 않음을 알았다. 무덤에서 나흘 동안 있다가 예수의 한마디 말씀으로 다시 살아난 바로 그 사람의 존재가 조만간에 반발을 일으킬 것이었다. 백성들은 그와 같은 이적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의 생명을 취한 저희 지도자들에게 복수할 것이었다. 그러므로 산헤드린은 나사로도 역시 죽여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증오와 편견은 그들의 노예들을 이런 지경에까지 이끌고 왔다. 유대인의 지도자들의 증오와 불신은 무한한 능력으로 말미암아 무덤에서 살아난 자의 생명까지라도 그들이 취하려고 할 만큼 커졌다.”(소망, 558)

온 집안을 가득 채운 마리아의 향유 옥합

3. 예루살렘에서 예수님과 나사로를 죽이려는 음모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베다니 시몬의 집에서 열린 잔치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가?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눅 7:37-38)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요 12:3)


이러한 음모들이 예루살렘에서 진행되고 있는 동안 예수와 제자들은 시몬의 잔치에 초대되었다. 식탁에서 구주는 시몬과 나사로와 같이 앉으셨는데 한편에는 흉악한 질병에서 고침을 받은 시몬이 앉았고 다른 편에는 죽음에서 살리심을 받은 나사로가 앉아 있었다. 마르다는 식탁에서 일하고 있었으나 마리아는 예수의 입술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었다. 예수께서 은혜로써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또한 오라비를 무덤에서 불러내셨으므로 마리아의 마음은 감사로 가득 차 있었다. 마리아는 예수께로부터 그의 죽음이 가까움을 알리시는 말씀을 듣자 깊은 사랑과 슬픔으로 예수에게 경의를 표하기를 원하였다. 개인적으로 크게 희생하여 그는 예수의 몸에 부을 ‘값진 향유’ 한 옥합을 샀다. 그러나 지금 많은 사람들은 예수께서 왕이 되시려고 한다고 선언하고 있었다. 마리아의 슬픔은 기쁨으로 변하였으며 그는 제일 먼저 주님께 영광 돌리기를 열망하였다. 옥합을 깨뜨리고 그는 향유를 예수의 머리와 발에 부었다. 그리고 그는 울면서 무릎을 꿇고 그의 눈물로써 발을 적시고 길고 미끈한 머리털로 예수의 발을 씻었다.”(소망, 558-559)

4. 마리아는 다른 사람이 모르게 하려고 노력하였으나, 그녀의 행동이 주목을 끌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회계였던 유다는 자신의 이기심과는 매우 현저한 대조를 이루는 마리아의 행동을 어떻게 불평했는가?

…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 12:3)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 12:4-6)


마리아는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을 피하려고 노력하였으며, 그의 동작은 타인의 주목을 끌지 않도록 진행되었으나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였으므로 마리아의 행위는 마침내 참석한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다. 유다는 이와 같은 행위를 매우 불쾌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스도께서 이 일을 어떻게 말씀하실지 들으려고 기다리는 대신에 그는 가까이 있는 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이런 낭비를 묵인하신다고 비난하며 불평을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교활하게도 불평을 일으키기 십상인 암시를 하였다.

제자들을 위한 회계였던 유다는 그들의 얼마 되지 않은 저축금에서 자기 자신이 쓰기 위하여 비밀히 얼마를 떼어 두고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의 재원(財源)은 줄어들었다. 그는 얻을 수 있는 것이면 모든 것을 주머니에 넣기를 열망하였다. 주머니 속에 있는 재물은 가끔 가난한 자를 구제하기 위하여 사용되었으며 때때로 유다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어떤 것을 샀을 경우 그는 ‘왜 이것을 낭비하느냐 왜 이 돈을 내가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가지고 다니는 이 주머니 속에 넣지 않았느냐’고 말하곤 하였다. 지금의 마리아의 행위는 수치를 받아야 할 그의 이기심과는 매우 현저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었다. …

유다는 자신의 행정 능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재정 관리인으로서 그는 그의 동료 제자들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스스로 믿고 있었으며, 그는 제자들도 그를 그와 같은 견해로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유다는 그들에게 신임을 받았으며 그들 중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가난한 자를 동정한다는 말로 그는 그들을 속였다. 그의 교활한 암시는 그들로 하여금 마리아의 헌신을 불신하게 하였다. 식탁 주위에는 ‘무슨 의사로 이것을 허비하느뇨 이것을 많은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 줄 수 있었겠도다’ 하는 불평이 돌았다.”(소망, 559-560)

사망에 이르는 냄새와 생명에 이르는 냄새

5. 마리아가 깨뜨린 옥합 때문에 방안에 어떤 향기가 가득하였는가? 그 향기의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고후 2:14-16)


쓸데없는 말과 바리새인 정신, 자기 칭찬이 너무 많다. 그러나 이런 것은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없다. 순결하고 성결된 사랑, 그리스도의 생애의 사업 중에 나타난 그런 사랑은 거룩한 향수와 같다. 마리아의 깨어진 향유 옥합처럼 그것은 온 집안을 향기로 가득 채울 것이다. 유창함, 진리의 지식, 보기 드문 재능이 사랑과 하나로 섞이면 모든 것이 귀한 바탕이 된다. 그러나 능력만으로는, 최선의 재능만으로는 사랑에 미치지 못한다.”(6증언, 84)

6.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생명의 향기가 되지 못하고 사망의 향기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에 착념치 아니하면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 6:3-5)


우리가 선교 사업에 큰 열심을 나타내어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이기심으로 말미암아 부패 되어 있고, 자기 냄새가 강하게 풍기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는 그것이 썩고 더러워진 헌물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문을 예수께 열어놓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영혼의 전을 점령하지 않으시고, 마음에 하늘의 속성이 주입되지 않으면, 인간의 행동을 하늘의 천평 저울에 올려놓았을 때 ‘부족하다’는 선고를 받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대를 부요하게 한다. 그러나 그의 사랑의 가치를 실제로 느끼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그들이 갖고 있는 정신에는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이 부족하다는 것과 그들을 빛의 통로가 되게 할 사랑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원고 33, 1894).”(화잇주석, 계 3:14-18)

마리아는 자신의 행위를 설명할 수 없음 – 성령의 쓰시는 도구 

7. 마리아가 떨리는 가슴으로 자리를 피하려고 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어떤 위안의 말씀을 주셨으며, 그리스도께 대한 깊은 감사의 예물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그리스도에 의하여 얼마나 더 큰 의미로써 공중 앞에 드러났는가? 이러한 행위 하나하나는 그분께서 시련의 어두움에 들어가실 때 얼마나 큰 위로가 될 것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막 14:6-8)


마리아는 비평하는 말을 들었다. 그의 가슴은 떨렸다. 그는 그의 언니가 낭비한다고 책망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주님 역시 아낄 줄 모른다고 생각하실지 모른다. 사과나 변명도 없이 마리아가 피하려고 할 때에 주의 음성이 들렸다.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예수께서는 마리아가 당황하고 어려움에 빠진 것을 아셨다. 예수께서는 이와 같은 봉사를 통하여 그가 사죄함을 받은 데 대한 감사를 표시한 것임을 아시고 그의 마음에 위안을 주셨다. 비난의 수군거림보다 더욱 높은 음성으로 예수께서는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구주의 시신에 아낌없이 부으려고 했었던 향기로운 선물을 그는 산 몸에 부은 것이다. 장사 때에 이 향기는 무덤에만 가득할 뿐이지만 지금 이 향기는 마리아의 믿음과 사랑의 보증으로서 예수의 마음을 기쁘게 하였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는 저희의 사랑의 선물을 예수께서 살아계실 때 바치지 않았다. 그들은 비통한 눈물을 흘리면서 예수의 차디찬 의식 없는 몸을 위하여 값진 향료를 가져왔다. 향을 가지고 무덤에 찾아갔던 여인들은 예수께서 이미 부활하신 뒤였기 때문에 저희의 수고가 헛된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께서 그의 헌신을 의식하실 때에 구주께 대한 사랑을 쏟으므로 그의 장사를 위하여 기름을 부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당신이 받으실 큰 시련의 어두움으로 내려가실 때에 당신이 구속하신 자들에게서 받으시게 될 열렬한 사랑에서 우러나온 그 행위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가셨다.”(소망, 560)

8. 마리아는 왜 이런 상황(때와 장소)에서 예수님께 값비싼 향유를 아낌없이 부었는지 설명할 수 없었으나 예수님께서 그 의미를 어떻게 깨우쳐 주셨는가? 우리는 이러한 상황들을 우리를 위해 계획하시는 성령의 섭리에 대하여 얼마나 깨닫고 있는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요 12:7-8)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 5:2)


마리아는 자기의 사랑의 행위의 의미를 충분히 깨닫지 못하였다. 그는 비난자들의 말에 답변할 수가 없었다. 왜 그가 예수에게 기름을 붓기 위하여 그러한 기회를 선택하였는지를 설명할 수 없었다. 성령께서 그를 위하여 계획하셨으며 그는 성령의 강권하심에 순종하였던 것뿐이다. 영감은 우리에게 아무런 이유도 알려주지 않으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정신과 마음에 말씀하시고 마음을 움직여서 행동하게 하신다. 이것이 이 일 자체의 명분을 세우는 주장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에게 그녀의 행동의 의미를 말씀하셨으며 이로써 그가 받으신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마리아에게 주셨다.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사를 위하여 함이니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옥합이 깨어질 때에 향기가 온 집에 가득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운명하시고 그의 몸은 훼손되실 것이나 그는 다시 무덤에서 일어나시고 그의 생명의 향기는 세상에 가득하게 될 것이었다.”(소망, 560-563)

“하나님께서는 시대와 기회에 맞도록 기별을 준비하신다. 때때로 그분께서는 당신의 성령을 그분의 기별자들에게 주심으로 마치 그분의 기별자 요한이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마 3:3)고 그랬던 것처럼 주야로 경고를 발하게 하신다. 그리고 또다시 의무에 있어서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편에 선 자는 누구인가? 그는 우리 편에 설지어다’라고 외칠 행동의 사람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처한 다양한 형편에 따라 그에 맞는 기별을 갖고 계실 것이다.”(3증언, 279)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9. 죄인이었던 여인이 구주께 대한 헌신과 사랑으로 깨트린 이 옥합의 향기는 왜 복음과 함께 영원할 것인가? 깨어진 옥합은 누구를 표상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막 14:9)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 53:5)


예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고 선언하셨다. 장래를 내다보시면서 구주께서는 당신의 복음에 관하여 확실히 말씀하셨다. 이 일은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었다. 복음이 전파되는 어느 곳에서든지 마리아의 선물은 그 향기를 발할 것이며 그의 꾸밈 없는 행동을 통하여 심령들이 축복을 받을 것이다. 나라들은 일어나고 또 넘어질 것이며 군주들과 정복자들의 이름은 잊혀진바 될 것이나 이 여인의 행동은 거룩한 역사의 페이지에서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끝나는 날까지 그 깨어진 옥합은 타락한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큰 사랑의 이야기를 말해 줄 것이다.”(소망, 563)

“인간의 논리로 따져보면 구원의 계획 전체는 하나님의 자비의 낭비요, 자원의 낭비이다. 그것은 사람 속에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마련된 것이다. 그것은 속죄를 받아들이는 모든 이들에게 하늘에 있는 집들을 넉넉히 확보해 줄 수가 있다. 소문이 널리 나 있던 마리아의 아낌없이 줌은 구원의 계획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방법을 예시한 것이다. 왜냐하면 본성과 은혜는 서로 관계를 맺고 있어서 마리아의 승리는 그 근원이 고상하게 하시는 은혜로 충만해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원고 28, 1897).”(화잇주석, 마 26:6-13)

10. 마리아의 행위는 유다가 취하려고 하는 행동과 어떻게 현저한 대조를 이루었는가?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요 12:4-6)


마리아의 행위는 유다가 취하려고 하는 행동과 현저한 대조를 이루었다. 비평의 종자를 떨어뜨리고 제자들의 마음에 악한 생각을 일으키려고 한 자에게 예수께서는 얼마나 날카로운 교훈을 주실 수도 있으셨던가! 비난자가 얼마나 정당하게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이 만드실 수 있으셨던가! 모든 마음의 동기를 아시고 모든 행동을 이해하시는 예수께서는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 앞에서 유다의 경험 가운데서 어두운 장면들을 공개하실 수도 있으셨다. 변역자가 그의 말을 기초한 공허한 가면도 적나라하게 폭로될 수도 있었다. 그 까닭은 그는 가난한 자를 동정하기는커녕 구제에 요구되는 돈을 훔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과부와 고아와 고용인을 압박하였기 때문에 그에 대하여 분노가 격발될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유다의 가면을 벗기셨었더라면 이것이 주를 배반한 이유로 주장되었을 것이었다. 그리고 도적이라는 책망을 받을지라도 유다는 제자들 가운데서 더욱 동정을 받게 될 것이었다. 구주께서는 그를 질책하지 않으셨다. 그와 같이 하여 그는 그에게 배반할 구실을 주지 않으셨다.”(소망, 563)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게 된 동기

11. 유다가 정죄한 마리아의 행위를 예수님께서 칭찬하심으로 유다는 자신이 한 책망을 스스로 되돌려받았다. 이것은 얼마나 그의 마음에 사무쳤으며 무엇을 결심하게 했는가?

열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저희가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줄 기회를 찾더라”(막 14:10-11)


그러나 예수께서 유다에게 던지신 시선은 구주께서 그의 위선을 통찰하시고 천하고 비열한 성격을 아신다는 사실을 유다로 하여금 깨닫게 하였다. 그리고 매우 혹독하게 정죄받은 마리아의 행위를 칭찬하심으로 유다를 책망하셨다. 이 일 전에는 구주께서 결코 그를 직접 책망하신 일이 없으셨다. 이제 그 질책은 그의 마음에 사무쳤다. 그는 복수하기로 결심하였다. 만찬석을 떠나서 유다는 직접 대제사장의 궁궐에 들어가 그곳에서 회의가 소집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그들에게 예수를 넘겨주겠다고 제의하였다.

제사장들은 크게 기뻐하였다. 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돈도 없고 값도 없이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일 기회가 제공되었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으로 강권하는 가장 부드러운 정신으로 그들에게 제공된 귀중한 선물을 거절하였다. 그들은 금보다 더욱 귀중한 구원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고 저희 주를 은 삼십에 샀다.”(소망, 563-564)

12. 유다의 품성에도 아름다운 특성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모든 아름다운 특성이 압도당하기까지 어떤 특성을 버리지 않은 채 품어왔는가?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의 행위를 다른 사랑의 행위들과 어떻게 구별하셨는가?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눅 12:15)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요 12:8)


유다는 그의 품성의 모든 아름다운 특성이 탐욕에 압도당하기까지 탐욕을 품어 왔었다. 그는 예수께 드리는 헌납물을 탐내었다. 유다의 마음은 구주께서 세상 군주들에게나 적당한 선물을 받으시자 질투심에 불탔다. 그러므로 그 향유의 옥합 값보다도 훨씬 적은 금액에 그는 그의 주님을 판 것이다.

제자들은 유다와 같지 않았다. 그들은 구주를 사랑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의 고결한 품성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않았다. 만일 제자들이 예수께서 그들은 위하여 행하신 일을 깨달았다면 저들이 예수께 바쳐진 어떤 것도 낭비된 것이 아니라는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예수에 대하여 별로 아는 것이 없었던 동방의 박사들은 예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예에 대하여 참된 평가를 하였다. 박사들은 구주께 귀중한 선물을 가지고 와서 구유에 누운 아기에 불과한 예수 앞에서 경의를 표하여 경배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공손한 행동을 가치 있게 여기신다. 누구든지 예수에게 하늘의 공손으로써 후의를 베풀었을 때 그는 그 행위자에게 축복하셨다. 예수께서는 어린아이의 손으로 꺾은 지극히 보잘것없는 꽃이라도 사랑으로 그에게 드려졌을 때에는 거절하지 않으셨다. 그는 어린이들의 선물을 받으시고, 준 아이들을 축복하시며 저희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셨다. 성경에는 예수께 기름 부은 마리아를 다른 마리아들과 구별해서 말하였다. 예수를 위한 사랑과 존경의 행동은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신앙의 증거이다. 성령께서는 그리스도께 대한 여인의 충성의 증거를 이렇게 언급하신다.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는 자라’(딤전 5:10).”(소망, 564)


[상고할 말씀]

선물을 받을 대상의 인격과 필요에 따라 우리들이 적당히 조절해서 주는 선물이 있다. 가난한 사람들 중에 마리아의 헌물이나 우리 주님의 자발적인 희생을 감사하는 사람들이 별로 많지 않다. 그 선물은 사람이 받을 수 있는 선물 중 최고의 선물이다. 그것은 주는 자의 넘치는 사랑의 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것은 흘러넘치기까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이 그 사랑을 밖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제자들이 ‘낭비’라고 말한 마리아의 깨어진 향유 옥합은 민감한 또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천 번도 더 되풀이되고 있다. 

주 하나님은 이 세상에 선물을 주실 때 조금도 아낌이 없으시다. 하나님은 셀 수도 없는 그 많은 선물들을 왜 그런 식으로 주어 버리시고, 왜 그렇게 낭비해 버리시느냐? 고 물을 자도 있을 것이다. 주님은 인간 가족에 대하여 매우 관대한 마음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욱 많이 주실 수도 있으실 텐데, 왜 주시지 않으시는가? 라고 해서도 안 된다. 그분이 이 세상에다 그의 아들을 주셨을 때 그는 온 하늘을 다 주신 것이다. 그의 사랑에 쌍벽을 이룰만한 사랑은 없다. 하나님의 사랑이 미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인간의 논리로 따져보면 구원의 계획 전체는 하나님의 자비의 낭비요, 자원의 낭비이다. 그것은 사람 속에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마련된 것이다. 그것은 속죄를 받아들이는 모든 이들에게 하늘에 있는 집들을 넉넉히 확보해 줄 수가 있다. 소문이 널리 나 있던 마리아의 아낌없이 줌은 구원의 계획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방법을 예시한 것이다. 왜냐하면 본성과 은혜는 서로 관계를 맺고 있어서 마리아의 승리는 그 근원이 고상하게 하시는 은혜로 충만해 있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원고 28, 1897).”(화잇주석, 마 26: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