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들을 축복하심

by 청지기 posted Mar 2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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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6시 54분


제1과


아이들을 축복하심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511-517; 마태복음 19:13-15; 마가복음 10:13-16; 누가복음 18:15-17; 재림신도의 가정 273-281


기억절 :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 10:14)


서론 :  구주께서는 자신의 피로 사신 영혼들을 무한한 자비심을 가지시고 돌보신다. 그들은 당신의 사랑의 대상이다. 그는 말할 수 없는 갈망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보신다. 그의 마음은 행실이 좋은 아이들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 않은 품성의 특질을 타고난 아이들에게까지 미치신다. 많은 부모들은 저희 아이들의 이런 특성에 대하여 저희가 얼마나 큰 책임이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저희가 오늘의 형편에 이르게 만든 과오를 범한 아이들을 다룰 자비심과 지혜가 없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런 아이들을 동정심을 가지고 바라보신다. 그는 원인부터 결과에 이르기까지 살펴보신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이런 아이들을 구주께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될 수 있다. 그는 지혜와 재치를 가지고 아이들을 그의 마음에 동여매고,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그들의 품성이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소망, 517)


아이들을 사랑하신 예수님

1. 유대인들에게는 어린아이들을 위한 어떤 풍습이 있었는가? 그러나 구주의 제자들은 어머니들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예수께 나오는 것을 왜 못마땅하게 여겼는가?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마 19:13)


유대인들에게는 아이들을 어떤 랍비에게 데려가 그가 아이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하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러나 구주의 제자들은 이런 일로 방해를 받기에는 그분의 사업이 너무나 중대하다고 생각하였다. 어머니들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예수께 나올 때에 제자들은 그들을 미워하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제자들은 이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예수를 찾아와 유익을 얻지 못하리라고 생각하고 예수께서도 그들이 오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시리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예수께서 불쾌하게 생각하신 자들은 바로 제자들이었다. 구주께서는 자녀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교육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는 어머니들의 염려와 수고를 알고 계셨다. 그는 그들의 기도를 들으셨다. 예수께서 친히 그들을 당신 앞으로 이끄셨다.”(소망, 511)

2. 예수님께서 항상 어린아이들을 사랑하심은 물론 그분께서도 어디서든지 어린아이들로부터 어떤 사랑과 신뢰를 얻으셨는가?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이가 큰 자니라”(눅 9:47-48)


예수께서는 언제나 아이들을 사랑하셨다. 그는 그들의 어린이다운 동정과 편견이 없고 변함이 없는 사랑을 받으셨다. 그들의 순결한 입술에서 나오는 감사의 찬양은 그분의 귀에 음악이 되었고 교활하고 위선적인 사람들과 접촉하심으로 말미암아 억눌렸던 그분의 정신을 상쾌하게 하였다. 어디로 가시든지 구주의 인자하신 용모와 온화하고 친절하신 태도는 어린이들의 사랑과 신뢰를 얻었다.”(소망, 511)

아이들을 통해 보여주신 구주의 사랑

3. 어린아이를 데리고 어머니들이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왔을 때 그분께서는 어린아이들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시므로 제자들의 잘못을 깨우쳐 주셨는가?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막 10:13-14)

마 18:2-3


한 어머니와 아이는 예수를 찾으려고 집을 떠났다. 도중에 어머니는 이웃에게 자기의 목적을 말하였고 그 이웃도 예수께서 저희 아이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원하였다. 이리하여 여러 어머니들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함께 나아왔다. 그 중 어떤 아이들은 유아 시대를 지나 아동과 청년기에 접어든 아이들이었다. 어머니들이 그들의 소원을 아뢰었을 때 예수께서는 동정심을 가지고 그들의 수줍어하고 눈물 어린 요구를 들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어떻게 제자들이 그들을 대하는지 보고자 하셨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을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어머니들을 돌려보내는 것을 보셨을 때에 제자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보이시며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을 팔에 안으시고 그들의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저희가 받으러 온 축복을 주셨다.”(소망, 511-512)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가장 나이 어린아이를, 구원의 큰 사업을 무시하는 다재다능하고 학식 있는 사람보다도 더 위대하게 보신다. 그들의 마음과 생애를 하나님께 바친 청년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지혜와 탁월함의 원천에 자신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다.”(청년, 329)

4. 어린 자녀를 둔 어머니들은 예수님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어떻게 예수님의 격려와 축복을 받을 수 있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눅 18:17)


어머니들은 위안을 받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격려와 축복을 받고 저희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새로운 기쁨으로 저희의 임무를 수행하고 희망을 가지고 저희 어린이들을 위하여 일하도록 격려를 받았다. 오늘날의 어머니들도 동일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 사셨을 때처럼 오늘날도 틀림없이 개인의 구주이시다. 그는 유대에서 어린이들을 팔에 안으셨던 그때처럼 오늘날도 틀림없이 어머니들의 조력자이시다. 우리 가정의 아이들은 오래 전의 아이들과 똑같이 예수의 피로 사신 아이들이다.”(소망, 512)

“그리스도께서는 그대의 자녀들을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바칠 정도로 그들을 높이 평가하셨다. 그들을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바 된 자들로 대접하라. 인내와 단호함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들을 훈련시켜라. 사랑과 관용으로 그들을 훈련시켜라. 그대가 이와같이 행할 때에 그들은 그대에게 기쁨의 면류관이 될 것이요 세상에서 빛과 같이 비칠 것이다.”(가정, 279)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의 수고를 아시는 예수님

5. 어린 자녀들을 위해 수고하는 어머니들의 마음을 아시고 동정하시는 예수님께서는 모든 어머니들을 위하여 어떤 초청을 원하고 계시는가?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 49:15)


예수께서는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의 수고를 아신다. 가난과 궁핍과 더불어 싸운 어머니를 모셨던 예수께서는 수고하는 모든 어머니들을 동정하신다. 한 가나안 여인의 마음의 고통을 제거해 주시기 위하여 먼 여행을 하신 예수께서는 오늘날의 어머니들을 위하여 더 많이 일하실 것이다. 나인성의 과부에게 그녀의 외아들을 살려주시고 십자가 위의 고통 중에서도 자신의 어머니를 기억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어머니들의 슬픔에 동정하신다. 모든 슬픔과 모든 곤경에 그는 위로와 도움을 주실 것이다.

어머니들로 그들의 어려운 일들을 가지고 예수께 나아가게 하라. 그들은 아이들을 다스리는 일에 그들에게 충분한 도움이 되는 놀라운 은혜를 발견할 것이다. 그들의 수고를 구주의 발 아래 놓고자 하는 모든 어머니들을 위해 문들이 열려 있다.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그분은 당신에게서 축복을 받도록 저희 어린 것들을 데리고 오도록 어머니들을 초청하신다. 어머니의 팔에 안긴 영아일지라도 기도하는 어머니의 믿음을 통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늘 아래 거할 수 있다. 침례 요한은 날 때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가운데 산다면 우리도 역시 아주 어릴 때부터라도 성령께서 우리의 어린 자녀들을 꼴지워 주시리라고 기대할 수 있다.”(소망, 512)

6.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들과의 접촉을 왜 중요하게 여기셨으며, 어떤 중대한 교훈이라도 언제나 단순한 방법으로 가르치셨던 이유는 무엇인가?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7)


예수께서는 당신과 접촉한 어린이들 중에서 당신의 은혜의 후사요, 당신의 나라의 시민이 될 남녀들을 보셨으며 그들 중 어떤 이들은 당신을 위하여 순교자들이 될 것이었다. 그는 이 어린이들이 세상적으로 현명하고 마음이 완고한 장성한 사람들보다도 매우 쉽게 당신의 말씀을 듣고 당신을 구주로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아셨다. 그들을 가르치심에 있어서 그는 그들의 수준으로 내려오셨다. 하늘의 왕이신 그는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동심의 이해력에 맞도록 당신의 중대한 교훈을 단순하게 하셨다. 그는 후년에 돋아나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맺힐 진리의 씨를 그들의 마음속에 심으셨다.

아이들이 복음의 가르침을 가장 잘 받아들인다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다. 그들의 마음은 거룩한 감화를 받을 수 있게 열려 있고 받은 교훈을 간직하기에 강하다. 어린아이들은 그들의 나이에 알맞는 경험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 그들은 영적 사물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으므로 부모들은 아이들이 그리스도의 품성을 닮은 품성을 형성할 수 있도록 모든 편의를 그들에게 제공해야 한다.”(소망, 512-515)

아이들을 위한 가정에서의 교육

7. 가정에서 어릴 때부터 어떤 하늘의 원칙들이 가르쳐져야 하며 누가 그들의 교사가 되어야 하는가? 어린아이들에게도 회개와 개심의 경험은 필수적이지만 이 경험은 어떻게 가르쳐져야 하는가?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하늘을 위하여 교육하도록 그들에게 위탁된 주님의 가족의 어린 식구로 여겨야 한다.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께 배우는 교훈들을 어린 심령들이 받을 수 있는 대로 하늘의 원칙의 아름다움을 조금씩 조금씩 그들에게 설명해 주어야 한다. 이리하여 그리스도인 가정은 학교가 되고 거기에서 그리스도께서 친히 주임 교수가 되는 한편 부모들은 보조 교사가 된다.

우리들은 우리의 아이들을 개심시키는 일에 있어서 격렬한 감정을 죄를 깨달은 필수적인 증거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개심한 정확한 시간을 아는 일은 필요치 않다. 우리는 그들에게 저희 죄를 예수께로 가져가 그의 용서를 구하고 예수께서 몸소 세상에 계실 때에 아이들을 영접하신 것처럼 저희를 용서하시고 받아 주신다는 것을 믿도록 가르쳐야 한다.”(소망, 515)

8. 가정의 교육자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들의 자녀들을 가르칠 때 가장 첫째 되는 공과는 무엇이며 누구의 모본을 따라야 하는가?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신 30:20)

“너희 소자들아 와서 내게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함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시 34:11)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그들이 어머니를 사랑하기 때문에 순종하도록 가르친다면 곧 그녀는 그리스도인 생애의 첫째 교훈들을 그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은 아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대표하며 어머니를 신뢰하며 순종하는 어린이들은 구주께 순종하고 신뢰하는 것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아이들의 모본이신 동시에 아버지의 모본도 되셨다. 예수께서는 권세를 가지신 자처럼 말씀하셨고 당신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었으나 거칠고 난폭한 사람들과의 모든 교제에서 한 번도 불친절하거나 무례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마음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은혜는 천부(天賦)의 위엄과 예절감을 나누어 줄 것이다. 그것은 거칠은 것은 무엇이든지 부드럽게 하고 조잡하고 불친절한 모든 것을 너그럽게 할 것이다. 그것은 부모로 하여금 저희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그들의 자녀들을 지성적 존재로 다루도록 할 것이다.

부모들이여, 그대의 아이들을 교육시킬 때 하나님께서 천연계에 주신 교훈들을 연구하라. 그대가 석죽(石竹)이나 장미나 백합을 기르고자 할 때에 어떻게 하는가? 어떤 과정으로 그가 모든 가지와 잎사귀를 매우 아름답게 번성하게 하고 균형잡히고 사랑스럽게 자라게 하는지 정원사에게 물어보라. 그는 이것을 거칠게 취급하거나 과격한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그 까닭은 그렇게 하면 연한 줄기들만 부러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은 주의들을 자주 반복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는 땅을 축축하게 하고 자라나는 식물들을 심한 바람과 작열하는 태양에서 보호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이 자라나 아름다운 꽃이 피게 하셨다. 그대들의 아이들을 다루는 일에 있어서 정원사의 방법을 따르라. 부드럽게 손질하고 사랑으로 다스려 그들의 품성을 그리스도의 품성의 본을 따라 형성시키기 위해 노력하라.”(소망, 515-516)

그리스도를 보도록 아이들을 가르치라

9. 천연계의 경이로운 창조물을 통해서 그리고 성경과 율법을 통해서 어린아이들에게 무엇이 가르쳐져야 하는가?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하나님께 사랑을 표현하고 상호간에도 그렇게 하도록 권하라. 이 세상에 그토록 마음이 강퍅한 남녀들이 많은 이유는 참된 애정을 연약으로 간주하고 막고 억눌러 왔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의 더 좋은 본성은 어린 시절에 짓눌려 없어졌다. 하나님의 사랑의 빛이 그들의 냉혹한 이기심을 녹여버리지 않는 한 그들의 행복은 영원히 파괴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이 예수의 부드러운 정신과 천사들이 우리에게 나타내는 동정심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어린 시절의 관대하고 사랑스러운 감정을 북돋우어 주어야 한다.

천연계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보도록 아이들을 가르치라. 그들을 집 밖의 장대한 나무들 아래나 정원으로 데리고 나가라. 경이로운 모든 창조물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을 보도록 그들을 가르치라.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을 주관하는 법칙을 만드셨고 또 우리를 위한 율법을 만드셨으며, 이 율법들은 우리의 행복과 기쁨을 위한 것임을 그들에게 가르치라. 긴 기도와 지루한 권고로 그들을 지치게 하지 말고 자연의 실물 교훈을 통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순종을 가르치라.

그대가 그리스도의 추종자들로서 그들의 신임을 받는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큰 사랑을 그들에게 가르치기 쉬울 것이다. 그대가 구원의 진리를 설명하고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노력할 때에 천사들이 그대의 곁에 있을 것이다. 주께서는 세계의 희망이신 베들레헴의 아기에 대한 귀중한 이야기에 그들의 어린 자녀들의 흥미를 끌수 있는 은혜를 부모들에게 주실 것이다.”(소망, 516-517)

10. 어린아이들을 그리스도께서 인도하시는바 그들이 그분께 나오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우리는 어떤 경고에 유의해야 하는가?

저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리라”(눅 17:2)


예수께서는 당신께 나아오는 아이들을 금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각 시대를 통하여 당신의 추종자들 즉 교회의 지도자들, 목사들, 조력자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어린이들을 이끌고 계시며 우리에게 그들로 내게 오는 것을 막지 말라고 명하신다. 그는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려는 것 같다. 너희가 방해하지 않으면 그들은 올 것이다.

그리스도와 같지 않은 그대의 성품이 예수를 그릇 나타내지 않도록 하라. 그대의 냉대와 거칠음으로 어린아이들을 예수에게서 떠나가게 하지 말라. 그대가 있다면 하늘이 그들에게 즐거운 장소가 되지 않으리라고 느끼게 될 소지를 결코 아이들에게 주지 말라. 신앙이란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말하거나 그들이 어린이 시절에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이 기대되고 있지 않다는 듯이 행동하지 말라. 그리스도교 신앙은 침울한 종교이며, 구주께 나아옴으로 그들의 생애를 기쁘게 하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는 그릇된 인상을 그들에게 주지 말라.”(소망, 517)

그리스도의 일꾼인 어린아이들

11. 그리스도께서는 아이들의 품성의 특질이 좋고 나쁨을 떠나 똑같은 사랑과 동정심으로 바라보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 18:23)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골 3:21)


구주께서는 자신의 피로 사신 영혼들을 무한한 자비심을 가지시고 돌보신다. 그들은 당신의 사랑의 대상이다. 그는 말할 수 없는 갈망을 가지고 그들을 바라보신다. 그의 마음은 행실이 좋은 아이들뿐 아니라, 바람직하지 않은 품성의 특질을 타고난 아이들에게까지 미치신다. 많은 부모들은 저희 아이들의 이런 특성에 대하여 저희가 얼마나 큰 책임이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저희가 오늘의 형편에 이르게 만든 과오를 범한 아이들을 다룰 자비심과 지혜가 없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런 아이들을 동정심을 가지고 바라보신다. 그는 원인부터 결과에 이르기까지 살펴보신다.

그리스도의 일꾼은 이런 아이들을 구주께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될 수 있다. 그는 지혜와 재치를 가지고 아이들을 그의 마음에 동여매고,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그들의 품성이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소망, 517)

12. 하나님께서는 언제 어떻게 어린아이들을 통하여 일하셨으며 그 역사는 언제 다시 그분의 영광스러운 사업을 위해 완전히 성취될 것인가?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마 21:16)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이다”(시 8:2)


구주의 재림기별을 스칸디나비아 여러 나라에 전파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의 소리가 잠잠하게 되자, 당신의 사업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어린아이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셔서 일하게 하셨다. 일찍이 예수님께서 당신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면서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환호성을 올리는 많은 무리를 거느리고 예루살렘 가까이 이르셨을 때 질투심이 많은 바리새인들은 그분에게 그들을 잠잠하게 하라고 요구하였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일이 예언의 성취이므로 만일 그들이 잠잠할 것 같으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고 대답하셨다. …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초림시에 어린아이들을 통하여 일하셨던 것처럼 당신의 재림의 기별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도 어린아이들을 통하여 일하셨다. 구주께서 다시 오신다는 기별이 모든 나라와 지방과 백성에게 전파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어야 한다.”(쟁투, 367-368)

“사람들이 예수께서 하셨던 대로 더 이상 진리를 단순하게 제시하지 않는 것을 하늘의 지성적 존재들이 보게 될 때, 어린이들이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감동을 받아 나아가서 이때를 위한 진리를 선포할 것이다.”(사건, 206-207)


[상고할 말씀]

성령께서 어린이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때에 성령의 하시는 일에 협력하라. 구주께서 그들을 부르고 계시며 그들의 꽃다운 시절에 자신들을 구주께 바치는 것보다 그분께 더 큰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가르치라.”(소망, 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