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갈릴리로부터의 마지막 여행(1)

by 청지기 posted Feb 2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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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6시 28분


제9과


갈릴리로부터의 마지막 여행(1)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485-489; 누가복음 9:51-56; 10:1-16


기억절 :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저희가 가서 예수를 위하여 예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들어갔더니”(눅 9:51-52)


서론 :  제자들은 그분의 임재로 사마리아인들을 축복하시는 것이 그리스도의 목적이었음을 알았다. 그들의 주님께 나타낸 냉대와 질투와 불경은 그들을 경악과 분노로 충만하게 하였다. 야고보와 요한이 특별히 흥분하였다. 그들이 매우 높이 존경하는 그분께서 이렇게 대접하는데 대하여 즉시 형벌을 내리지 않고 지나치는 것은 너무도 큰 잘못인 것처럼 보였다. 선지자 엘리야를 데리러 보낸 사마리아 관원들과 그 무리들의 멸망을 가리키면서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말을 듣고 괴로워하시는 예수를 보고 놀랐으며 다음과 같은 그분의 책망이 그들의 귀에 울렸을 때에 더욱 더 놀랐다. ‘너희는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 모르는구나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요 구하러 왔노라’(눅 9:54-56).

사람들을 강권하여 당신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명의 일부분이 아니다. 양심을 강요하는 자는 사단이요, 사단의 정신에 자극된 사람들이다. 의에 대한 열심을 구실로 악한 천사들과 동맹한 자들이 때때로 그들의 종교적 이념으로 그들을 개종시키기 위하여 그들의 동료들에게 고통을 가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은혜를 나타내시고 언제나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심으로 마음을 얻고자 노력하신다. 예수께서는 영혼 내에서 경쟁자를 용납하지 않으시고 부분적인 봉사를 가납지 않으신다. 그분은 자원하는 봉사, 사랑의 강권 아래서 마음을 기꺼이 굴복시키는 것을 갈망하신다.”(행적, 540-541)


그리스도의 일하시는 방법에 변화가 생김

1. 예수님의 봉사의 생애가 마지막에 가까워짐에 따라 그분의 일하시는 방법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가?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눅 9:51-52)


봉사의 마지막이 가까워짐에 따라 그리스도의 일하시는 방법에 변화가 생겼다. 그분께서는 지금까지 흥분을 일으키거나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것을 피하려고 노력하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인기가 제어할 수 없을 만큼 열광적으로 불타오르는 것처럼 보이자 백성들의 경의를 사양하고 이곳저곳으로 빨리 왕래하셨다. 그분께서는 여러 차례 아무도 당신을 그리스도라고 선언하지 말도록 명령하셨다.

초막절에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신 여행은 신속하고도 비밀리에 행해졌다. 그분의 형제들이 자신을 메시야로서 공적으로 나타내도록 강권하였을 때에 그분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요 7:6)고 대답하셨다. 그분께서는 다른 사람의 주목을 끌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가셨으며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도성에 들어가셨으며 대중의 존경도 받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분의 마지막 여행은 그렇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제사장들과 랍비들이 악의를 품고 있었기 때문에 잠시 동안 예루살렘을 떠나셨다. 그러나 이제 그분께서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위해 출발하셨는데,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순회로를 따라 여행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오심을 알리기 위하여 사자를 앞서 보내셨는데, 이는 그분께서 전에 결코 하신 적이 없던 일이다. 그분께서는 큰 희생 치르실 현장으로 나아가고 계셨는데, 이 희생에 백성들의 관심이 돌려져야 하였다.”(소망, 485)

2. 제자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는 것을 왜 막으려고 하였는가?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요 3:14)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이 그들을 치료하기 위하여 세워진 상징물인, 높이 들린 뱀을 쳐다보아야 되었던 것처럼 모든 사람의 눈은 잃어버린 세계에 구원을 가져다준 희생 제물인 그리스도에게로 이끌려야 한다.

예수의 형제들이 그에게 초막절기에서 자신을 백성들에게 공공연하게 나타내도록 권유하게 된 것은 메시야의 사업에 대하여 그릇된 개념을 가졌기 때문이었으며, 예수의 신적 신분에 대하여 믿음이 부족한 까닭이었다. 이제 이와 똑같은 정신으로 제자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는 것을 막으려고 하였다. 제자들은 그곳에서 어떤 일이 그에게 일어날 것이라는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으며 종교 지도자들의 치명적인 적개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희 주님으로 하여금 그곳에 가는 것을 단념하도록 기꺼이 권유하였다.”(소망, 485-486)

박해와 거절과 정죄와 죽음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하심

3. 예루살렘으로의 마지막 여행에서 예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가장 고통스러워하셨는가?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8)


사랑하는 제자들의 공포와 실망 그리고 불신을 거스리고 당신의 길을 밀고 나아가는 것은 예수의 마음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고민과 절망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제자들을 인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사단은 인자를 유혹하기 위하여 가까이에 있었다. 왜 그는 이제 죽음이 확실한데 예루살렘으로 가셔야 하는가? 예수의 주위에는 생명의 양식에 굶주리고 있는 영혼들이 있었다. 사방에는 고통하는 사람들이 예수의 치유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다. 예수의 은혜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사업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청춘의 정력이 넘치고 있었다. 왜 그는 그의 은혜의 말씀과 병고치는 능력을 가지고 세계적인 넓은 분야로 나아가지 않는가? 왜 그는 어두움과 슬픔에 싸인 무수한 사람들에게 광명과 즐거움을 주는 기쁨을 맛보지 않는가? 어찌하여 믿음이 아주 약하고 이해력이 매우 둔하고 일하는 데 그처럼 느린 제자들에게 추수를 맡기는가? 겨우 요람기에 있는 사업을 그대로 두고 왜 죽음에 직면하려고 하는가? 광야에서 유혹하던 원수는 지금 무섭고도 교활한 유혹으로 그리스도를 맹렬히 공격하였다. 만약 예수께서 한 순간이라도 굴복하시고, 가장 사소한 점에 있어서라도 자신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의 행로를 변경하셨더라면 사단의 행위는 승리하였을 것이며 세상은 잃어버린 바 되었을 것이다.”(소망, 486)

4. 예수님께서 공생애의 모든 때를 구별하시고, 마침내는 박해와 거절과 정죄와 죽음이 기다리는 줄 아시면서도 그 길을 가시기로 결심하신 것은 그분의 생애의 어떤 원칙 때문이었는가?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눅 9:51)


그러나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다. 예수의 생애의 유일한 법은 아버지의 뜻이었다. 예수께서 소년 시절에 성전에 올라가셨을 때에 마리아에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 하고 말씀하셨다. 가나에서 마리아가 예수께서 이적의 능력을 나타내기를 원하였을 때에 그는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요 2:4)라고 대답하셨다. 예수의 형제들이 그에게 절기에 참석하도록 권유하였을 때에도 예수께서는 같은 말씀으로 대답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계획 가운데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그리스도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쳐야 할 시간은 정해져 있었으며 그 시간은 곧 올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실패하지도 머뭇거리지도 않으셨다. 예수의 발걸음은 원수들이 당신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오랫동안 음모하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다. 이제 예수께서는 생명을 버릴 것이다. 예수께서는 박해와 거절과 정죄와 죽음으로 나아가기로 굳게 결심하였다.”(소망, 486)

편견과 고집 때문에 축복을 상실한 사마리아 사람들

5.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의 한 촌으로 사자들을 보내셨으나, 왜 그분을 환대하지 않았는가? 그들은 무엇 때문에 모든 축복을 잃어버렸는가?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저희가 가서 예수를 위하여 예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촌에 들어갔더니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고로 저희가 받아들이지 아니하는지라”(눅 9:52-53)


그리고 예수께서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저희가 가서 예수를 위하여 예비하려고 사마리아의 한 촌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고 있었으므로 백성들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극히 증오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더 좋아하시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만약 예수께서 그리심산의 성전과 예배를 회복하기 위하여 오셨더라면 그들은 그를 즐겁게 영접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예수를 환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늘에서 주신 가장 큰 선물을 그들의 문간에서 쫓아내고 있다는 것을 거의 깨닫지 못하였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당신을 영접하도록 초청하셨으며, 당신이 그들에게 가까이 나아가 가장 풍성한 축복을 주실 수 있도록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셨다. 예수께서는 당신에게 베풀어진 후의에 대하여 하나하나 더 귀중한 은혜로 보답하셨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들이 지닌 편견과 고집 때문에 모든 축복을 잃어버렸다.”(소망, 486-487)

6. 요한과 야고보는 저희 주님을 멸시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어떤 형벌을 내리기를 원했는가? 이런 제자들을 예수님께서 책망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어떤 상고 사본에는, 55절 끝에 다음 말이 있음 「가라사대 너희는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 모르는구나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요 구하러 왔노라 하시고」〕”(눅 9:54-55)


그리스도의 사자로서 그곳에 간 야고보와 요한은 저희 주님을 멸시하는 것을 보자 몹시 분노하였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친히 사마리아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사마리아인들이 그처럼 예수를 무례하게 취급하자 분노로 가득 찼다. 제자들은 얼마 전에 변화산에서 예수와 같이 있었는데,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으며 모세와 엘리야도 그를 존경하는 것을 보았었다. 제자들은 사마리아인들이 행한 불명예스러운 일에 대하여 현저한 형벌을 내리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제자들은 그리스도께 나아와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에게 하룻밤을 유숙하는 것까지도 거절하였다고 백성들의 말로 예수께 보고하였다. 그들은 백성들이 예수께 무서운 과오를 범하였다고 생각하였으며 엘리야가 거짓 선지자들을 죽인 갈멜산을 멀리 바라보며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말하였다. 제자들은 저희의 말을 들으시고 슬픔에 잠기시는 예수를 보고 놀랐으며 그리고 더욱 놀란 것은 예수의 다음과 같은 책망의 말씀이 저희 귀에 들렸기 때문이었다. ‘가라사대 너희는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 모르는구나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요 구하러 왔노라’(간이 국한문 성서 눅 9:55-56 난외 참조). 그리하여 예수는 다른 촌으로 가셨다.”(소망, 487)

칠십인의 파송

7. 예수님께서는 전과 같이 가르치시며 또한 열두 제자들을 보내신 것처럼 몇 명을 각처로 보내셨는가?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막 10:1)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눅 10:1)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마지막 봉사의 수개월 동안의 상당한 부분을 유대로부터 ‘멀리 요단 편에 있는’ 페래아 지방에서 보내셨다. 그곳에서 많은 무리들이 갈릴리에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초기의 봉사에서처럼 그의 주위에 모여들었으며 그리스도께서는 초창기에 가르치시던 문제를 반복하여 가르치셨다.

예수께서는 열두 사람을 보낸 것처럼 ‘달리 칠십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 각 처로 둘씩 앞서 보내’(눅 10:1)셨다. 이 제자들은 저희가 일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기 위하여 얼마 동안 예수와 함께 있었었다. 열두 제자들이 그들의 첫 개별적인 사명을 띠고 파송되었을 때 다른 제자들은 갈릴리 전역을 여행하시는 예수와 동반하였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예수와 친밀히 교제할 수 있는 특권을 얻고 직접 개인적인 교훈을 받았었다. 이제 이 큰 무리도 역시 개별적인 사명을 띠고 나아갈 것이었다.”(소망, 488)

8.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파송할 때와 같이 칠십인에게도 어떤 지시를 주셨으며, 달라진 내용은 무엇인가?

갈지어다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 빈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 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눅 10:3-11)


칠십인에게 지시한 내용은 열두 제자에게 주셨던 것과 같았으나 이방이나 사마리아의 도성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열두 제자에게 주셨던 명령은 이번 칠십인에게는 주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방금 사마리아인에게 거절을 당하셨지만 사마리아인에게 대한 당신의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칠십인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나아갔을 때에 그들은 첫째로 사마리아의 도시들을 방문하였다.”(소망, 488)

갈릴리 지방의 추수

9.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변함없이 나타내셨던 관심과 사랑의 결과는 언제 볼 수 있었는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사 42:3)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마 12:21)


구주께서 친히 사마리아를 방문하신 일과 후에 선한 사마리아인을 칭찬하신 일 그리고 열 사람의 병고침을 받은 자 중에서 유독 감사에 넘치는 사마리아의 문둥병자만이 그리스도에게 돌아와 감사를 드린 일 등은 제자들에게 있어서 아주 의미 깊은 일이었다. 이 교훈은 제자들의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 바로 전에 제자들에게 그의 사명을 위임하실 때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는 제자들이 첫째로 복음을 전해야 할 곳이라고 말씀하셨다. 구주의 가르치심은 그들로 하여금 이 사명을 성취시키도록 준비시켜 왔었다. 제자들은 주의 이름으로 사마리아에 갔을 때에 백성들이 기쁨으로 영접하는 것을 보았다.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칭찬하신 말씀과 그가 또한 저희 나라 사람들에 대하여 자비를 베푸신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마리아인들은 저희가 예수를 거칠게 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저희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심을 보고 마음이 예수께 끌리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사마리아인들은 구주의 사신들을 환영했으며 제자들은 한때 저희의 가장 큰 원수였던 사람들 가운데서 귀중한 수확을 거두었다.”(소망, 488-489)

10.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명하신 것처럼 칠십인을 보내실 때에도 기별을 거절함에 대한 엄숙성에 대하여 어떤 주의를 주셨는가?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 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눅 10:10-12, 16)


칠십인을 보내실 때에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명하신 것처럼 저희가 환영받지 못하는 곳에 머물려고 애쓰지 말라고 명하셨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 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이렇게 하는 것이 울분이 그 동기가 되거나 자존심이 상했음으로써가 아니요 주의 기별이나 그의 사신들을 거절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보여 주기 위하여 행할 것이었다. 주의 종들을 거절하는 것은 그리스도 자신을 거절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다시 ‘그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때에 그는 가장 많은 봉사로 시간을 보내셨었던 갈릴리의 마을들을 회상하셨다. 마음 깊이 슬퍼하시는 어조로 예수께서는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갈릴리 바다 근방에 있는 분주한 마을들에 하늘의 가장 귀중한 축복들이 값없이 제공되었었다. 생명의 왕이 날마다 그들 가운데 출입하셨었다. 선지자와 왕들이 그토록 보기를 원하던 하나님의 영광이 구세주의 발 아래 모인 회중에게 비췄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늘의 선물이신 예수를 거절하였다.”(소망, 489)


[상고할 말씀]

유대의 여러 고을에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랑과 동정의 행동은 하늘의 천사들이 행한 기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고라신과 벳새다와 가버나움 사람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고 그들은 마음이 강퍅해서 영원한 시간이 소요된다 할지라도 그들의 주의를 끌어가기 어려울 것 같았다. 이 지역 주민들의 대다수는 하잘 것 없는 잡담으로 소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단지 몇 사람만은 인류의 구주는 그리스도라는 입장을 취하였다. 

성경의 예언들은 분명하였고, 구주의 생애와 품성과 사업에 관해서 명확하게 예언하고 있었다. 성령의 감동을 받고 말한 사람들의 증언으로부터 가져온 증거들은 예수님이 바로 그가 주장하시는 그분 곧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모세와 선지자들이 책에 쓴 그 선지자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시요, 이스라엘의 영광이라는 증거가 충분하였다. 그러나 그분이 제사장들과 율법사들에게 확신을 주고, 일반 대중들의 마음을 이끌어서 그의 빛으로 향하게 하려고 애쓰는 것은 헛된 일이었다. 제사장들과 율법사들 그리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유전과 의식과 관습 그리고 이론에 집착해 있었고, 거룩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의 마음이 감화를 받고, 정결하고 거룩하게 되도록 허락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몇 안되는 사람들은 비천하고 별 배움이 없는 사람들 중에서 나왔다(리뷰 1896. 6. 2).”(화잇주석, 마 11: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