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생명의 빛”(1)

by 청지기 posted Feb 0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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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6시 06분


제6과


“생명의 빛”(1)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463-469; 요한복음 8:12-56


기억절 :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0-32)


서론 :  구속 사업에는 강제가 없다. 외부 압력이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성령의 감화 아래서 누구를 섬길지를 선택할 자유가 주어져 있다. 사람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할 때 일어나는 변화 가운데 가장 높은 의미의 자유가 있다. 죄를 버리는 것은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 스스로 사단의 지배를 벗어날 힘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기를 바라고 크게 그 필요를 느껴 자신보다 더 높은 힘을 구할 때 영혼의 힘에는 성령의 거룩한 힘이 불어넣어져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의지의 지배를 받는다.

인간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리스도는 진리이시다. 마음을 약하게 하고 영혼의 자유를 파괴함으로써만 죄는 승리할 수 있다. 하나님께 대한 복종은 자신의 참 영광과 사람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가 순종할 거룩한 율법은 ‘자유의 율법’이다(약 2:12).”(소망, 466)


“나는 세상의 빛이라”(1)

1. 예수님께서 초막절 예식에서 “세상의 빛”이라고 소개하셨을 때, 제자들은 어떤 감명을 받았는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빛”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 1:4-5, 9)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벧후 1:19)


하나님의 백성에게 당신을 나타내실 때 빛은 항상 그의 임재하심의 상징이었다. 태초에 창조력을 가지신 말씀에 의하여 빛이 어두움을 비췄다. 빛이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에 싸여서 이스라엘 대군을 인도하였었다. 시내산에서는 빛이 여호와를 둘러 장엄하게 빛났었다. 빛은 지성소 안에 있는 시은소 위에 머물렀었다. 솔로몬의 성전을 헌당할 때 성전에 빛이 충만하였었다. 천사들이 양치던 목자들에게 구원의 기별을 가져왔을 때에 빛은 베들레헴의 들을 비추었다.”(소망, 464)

2. 예수님께서 자신을 빛 중에서도 “세상의 빛”이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하나님은 빛이시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하나님과의 하나 되심과 또한 온 인류와의 자신의 관계를 선언하셨다. 태초에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고후 4:6)게 하신 분은 예수님이셨다. 그는 해와 달과 별의 빛이시다. 그는 상징과 예표와 예언으로 이스라엘을 비춘 영적인 빛이셨다. 그러나 유대 나라에만 그 빛이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햇빛이 세상의 가장 멀고 구석진 곳까지 비취는 것처럼 의의 태양의 빛도 모든 영혼에게 비췬다.”(소망, 464)

“나는 세상의 빛이라”(2)

3. 오늘날 우리는 이른바 “고등 교육”이란 말을 흔히 듣는데, 참 “고등 교육”이란 무엇인가?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골 2:2-3)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다. 세상에는 일찍이 위대한 교사들, 곧 높은 지능과 광범위한 연구를 한 사람들, 말로써 사람의 사상을 자극하고 광대한 지식의 분야를 개척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지도자로 그리고 저희 민족의 보호자로 높임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보다도 더 높이 계시는 한 분이 계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2, 18). 우리는 인간의 기록이 시작된 아주 옛날부터 내려오는 세상의 위대한 교사들의 계보를 더듬어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빛은 그들보다도 먼저 있었다. 태양계의 달과 별들이 모두 태양의 비취는 빛을 반사하여 비추는 것처럼, 그들의 가르침이 진실된 한, 세상의 위대한 사상가들은 의로운 해의 빛을 반사하고 있는 것이다. 주옥같은 사상이나 빛나는 지성 하나하나는 다 세상의 빛이신 분으로부터 나온다. 오늘날 우리는 이른바 ‘고등 교육’이란 말을 흔히 듣는다. 참 ‘고등 교육’이란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고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골 2:3; 요 1:4)고 하신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것이다.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 가운데 행하리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소망, 464-465)

4. 예수님께서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소개한 이유는 구약의 어떤 말씀을 인용하신 것이었는가?

그가 가라사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 49:6)


‘내가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으로 예수께서는 자신이 메시야라고 선언하셨다. 연로한 시므온은 예수께서 지금 가르치고 계시는 성전에서 그에 대하여 ‘이방을 비취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눅 2:32)라고 말한 일이 있었다. 이 말씀으로 시므온은 모든 이스라엘에게 잘 알려진 예언을 예수에게 적용시키고 있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성령께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사 49:6 인용). 이 예언은 메시야에 관하여 말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었으며 예수께서 ‘내가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을 때에 백성들은 자신이 바로 약속되신 사람이라는 그의 주장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소망, 465)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5. 예수님께서 “내가 세상의 빛이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바리새인들과 관원들은 그분께서 친히 “메시야”로 선언할 수 없게 하려고 어떻게 힐문했는가? 그분께서는 어떻게 답하셨으며, 그분의 말씀을 믿은 청중들을 향하여 어떤 보증을 주셨는가?

저희가 말하되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 …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고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 이 말씀을 하시매 많은 사람이 믿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25, 28, 30-32)


바리새인과 관원들에게 있어서 이 주장은 오만하고 참람된 것처럼 보였다.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 그러한 주장을 하는 것을 그들은 용인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의 말씀을 무시하려는 듯이 ‘네가 누구냐’고 힐문하였다. 그들은 예수께서 친히 그리스도라고 선언하지 않을 수 없게 하려고 열중했다. 그의 풍채와 사업이 백성의 기대에 매우 어긋났으므로 교활한 원수들이 믿고 있었듯이 그가 직접 자신이 메시야라고 선언한다면 그는 사기꾼으로 배척을 당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네가 누구냐’란 그들의 질문에 예수께서는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니라’고 대답하셨다(요 8:25). 그의 말씀 가운데서 계시되었던 것이 그의 성품에도 나타났다. 예수는 그가 가르치신 바로 그 진리의 화신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또 내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런 것을 말하는 줄도 알리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함으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자신이 메시야가 된다는 것을 입증하려고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과 자신의 하나 됨을 보이셨다. 만일 그들의 마음의 눈이 하나님의 사랑에 열려 있었다면 예수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의 청중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믿음으로 그에게 이끌렸으며 그는 그들에게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셨다.”(소망, 465)

6.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관원들은 그분을 믿는 많은 청중들과는 달리 여전히 어떤 죄의 속박에 매여 있었는가? 그들이 사단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인가?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요 8:24, 34-37)


이 말이 바리새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였다. 그들은 저희 민족이 오랫동안 타국의 멍에를 멘 것을 무시하고 분노하여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고 부르짖었다. 예수께서는 악의 종이요 생각이 복수심으로 기울어진 이 사람들을 보시고 슬프게 대답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그들은 가장 나쁜 형태의 속박에 매여 있었다. 즉 그들은 악령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었다.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기를 거부하는 영혼은 모두 다른 세력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는 자신의 것이 아니다. 그가 자유를 말할 수 있을지라도 가장 비참한 종살이 가운데 빠져 있다. 사단이 그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그는 진리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다. 그는 자신의 판단을 따르고 있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흑암의 왕자의 의지에 순종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영혼으로부터 죄의 속박의 사슬을 끊기 위해 오셨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

인간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그리스도는 진리이시다.”(소망, 466)

참된 아브라함의 자손

7.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자부했으나, 왜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될 자격이 없었는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의 명성과 가치의 승계는 무엇에 근거되어야 하는가?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요 8:37-40)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언해 왔었다. 예수께서는 이 주장은 아브라함의 일을 행함으로써만 확증될 수 있다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참된 아브라함의 자손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 순종하는 생애를 살 것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은 하나님께 받은 진리를 말하고 있는 그분을 죽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랍비들은 그리스도를 해하고자 음모함으로써 아브라함의 일을 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의 직계 혈통 그 자체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같은 정신을 가지고 같은 일을 행함으로 나타나게 될, 그와의 그런 영적 연결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그의 자손이 아니었다.

이 원칙은 오랫동안 그리스도교계를 소란스럽게 해온 사도적 계승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도 똑같이 중요하다. 아브라함의 자손됨은 이름이나 혈통으로써가 아니라 성품의 같음으로만 판명된다. 그러므로 사도직의 계승은 교권의 전달에 의존되는 것이 아니요 영적 관계에 달려 있는 것이다. 사도들의 정신으로 움직여 행동하는 생애, 사도들이 가르친 진리를 믿고 가르치는 것, 이것이 참된 사도직을 계승한 증거이다. 이것이 사람들을 복음의 첫 교사들의 계승자가 되게 하는 것이다.”(소망, 466-467)

8.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부인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로 누구의 자손임을 증명했는가? 그들이 이렇게 된 원인은 무엇인가?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저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부인하심은 물론 하나님께서 저들의 아버지시라는 저들의 말 또한 거짓임을 어떻게 증거하셨는가?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요 8:41-43)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부인하셨다. ‘너희는 너희 아비의 행사를 하는도다’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들은 조롱하는 어조로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라고 대답하였다. 암암리에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형편을 가리켜 한 이 말은 그를 믿기 시작하고 있는 자들 앞에서 그를 혹평하려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비열한 암시에 유의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 나서 왔음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거짓말쟁이요 살인자인 마귀와 관계하고 있음이 그들의 행위로 증명되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 내가 진리를 말함으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요 8:44, 45)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진리를 확실하게 말씀하셨는바 바로 그것이 유대인의 지도자들에게 그가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였다. 진리는 독선적인 사람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 진리는 죄의 기만성을 폭로했으며 그들의 가르침과 행습을 정죄했다. 그러므로 그것은 환영을 받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과오를 겸손히 회개하는 대신에 진리에 대하여 눈을 감았다. 그들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이 진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소망, 467)

“하나님께 속한 자”

9.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죄를 책잡고자 날마다 따라다녔지만, 그분에게서 단 하나의 허물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믿지 아니함은 자신들의 무엇을 입증한 것인가?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요 8:46-47)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매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그의 원수들은 삼 년 동안 날마다 그리스도를 따라 다니면서 그의 품성 가운데서 어떤 오점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사단과 모든 악의 연합군은 그리스도를 정복하려고 노력해 왔었다. 그러나 그들은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어떤 조건을 그에게서 조금도 찾을 수 없었다. 귀신들까지라도 ‘당신은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막 1:24)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하늘과 타락하지 않은 세계와 죄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율법대로 생애하셨다. 그는 천사들과 악마들 앞에서 나는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한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무도 그런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이 말씀이 다른 사람의 입술에서 나왔다면 참람된 말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스도에게서 아무런 죄도 찾을 수 없었지만 유대인들이 그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들이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기별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인식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판결을 내렸다고 생각하였으나 그리스도를 거절함으로써 그들은 그들 자신에게 판결을 내리고 있었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소망, 467-468)

10. 누구든지 하나님께 속하였다면, 누구의 음성도 들을 수 있을 것인가? 진리의 음성을 듣는 자들은 누구에게로 향할 것인가?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요 18:37)


이 교훈은 언제나 참되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의문나는 어떤 점들을 찾아내어 공론을 벌이고 비평하기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사상적으로 독립되고 지적으로 예리하다는 증거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성경을 판단하기 위하여 앉아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사실은 스스로를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그 기원이 하늘에 있으며 영원을 포괄하는 진리들을 옳게 평가할 능력이 없음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하나님의 의의 큰 산 앞에서 그들의 정신은 경외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막대기와 짚들을 모으는 일에 분주하여 편협하고 세속적인 본성 즉 하나님을 이해할 능력을 신속히 상실해 가고 있는 마음을 무심코 드러내고 있다. 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만지심에 반응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증가시키고 품성을 세련되게 만들고 향상시키는 그런 것들을 추구할 것이다. 빛나는 햇빛이 꽃송이에 아름다운 색채를 줄 수 있도록 꽃이 태양을 향하듯이, 하늘의 빛이 그의 품성을 우아한 그리스도의 품성으로 아름답게 만들도록 영혼은 의의 태양으로 향할 것이다.”(소망, 468)

조상 아브라함은 그리스도께 배웠음

11.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주장한 유대인들은 실제로는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어떻게 전혀 달랐는가? 아브라함은 약속된 구주를 보기를 갈망하다가 계시로 나타나신 그리스도의 품성의 영광을 보고 그는 어떻게 했는가?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장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5-56)


아브라함은 약속된 구주를 보게 되기를 매우 바랐었다. 그는 죽기 전에 메시야를 바라볼 수 있도록 매우 간절한 기도를 올렸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를 보았다. 초자연적인 빛이 아브라함에게 비췄으며 아브라함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품성을 인정하였다. 아브라함은 그리스도의 날을 보고 기뻐하였다. 그에게 죄 때문에 당하는 거룩한 희생의 광경이 보였다. 이 희생이 아브라함 자신의 경험에서 예증되었다.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 가서 … 번제로 드리라’(창 22:2)는 명령이 그에게 주어졌다. 아브라함은 그의 희망의 중심이었던 약속의 아들을 희생 제단에 놓았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하여 칼을 들고 제단 곁에서 기다리고 있을 때에 그는 하늘로부터 들려오는 음성을 들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이 무서운 시련이 아브라함에게 이른 것은 아브라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보고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가장 수치스러운 죽음을 당하도록 당신의 독생자를 주신,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너무도 위대한 사랑을 깨닫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소망, 468-469)

12. 아브라함은 어떻게 함으로써 그에게 계시된 그리스도의 경이로운 희생에 대한 이상(異常)을 깨달을 수 있었는가? 그는 고난의 경험을 통하여 어떤 위대한 진리를 배웠는가?

그러므로 세상에 임하실 때에 가라사대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시니라 …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히 10:5, 7, 10)


아브라함은 일찍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주어진 교훈 중에서 가장 큰 교훈을 하나님에게서 배웠다.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아브라함의 기도는 응답되었다. 아브라함은 그리스도를 보았다. 그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 보고도 죽지 않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았다. 아브라함은 완전히 복종함으로써 그에게 주어진바 된 그리스도에 대한 이상(異常)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독생자를 주심으로 이때까지 어떤 인간도 할 수 없었던 위대하고 더욱 경이로운 희생을 하고 계심이 아브라함에게 보여졌다.

아브라함의 경험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주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를 위하여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미 6:6, 7).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는 아브라함의 말에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삭 대신에 희생 제물을 준비하신 데서, 자기를 위하여 스스로 속죄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선언되었다. 이교의 희생 제도는 하나님께 전혀 가납될 수 없었다. 어떤 아버지도 속죄 제물로 자녀를 드려서는 안 될 것이었다. 오로지 하나님의 아들께서만 세상의 죄악을 담당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고난을 통하여 구주의 희생의 사명을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들의 교만한 마음에 그토록 반갑지 않은 그것을 깨달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에 관한 그리스도의 말씀은 청중들에게 아무런 깊은 의미도 주지 못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이 말씀에서 새로운 트집거리를 보았을 뿐이었다.”(소망, 469)


[상고할 말씀]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참 상태가 숨겨져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진리를 보지만 진리의 가치와 그 요구를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진리를 들으나, 그들의 생애가 진리와 일치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진리를 순종함으로 얻는 성화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은총의 증거인 낮의 구름 기둥과 밤의 불 기둥이 그들 앞에 가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태연자약하며 만족해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아노라고 공언하지만 행위로는 그분을 부인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특별한 백성이라고 생각하지만, 끝까지 구원하시는 그분의 임재와 능력은 그들 사이에서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런 자들의 어둠이 얼마나 짙은가!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빛이 비치나 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옳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행위를 가납해 주신다고 믿게 하는 기만보다 더 큰 기만으로 인간을 속일 길은 없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을 경건의 정신과 능력으로 오해한다. 그들은 가난하고 가련하고 눈멀고 벌거벗고 모든 것이 필요하지만 부요하다고 생각한다.

영적 일에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으면서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세속적 사업에서는 어떤 일이건 힘을 다하고,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고 바라는 결과를 얻기 위한 야망을 나타낸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달려 있고 그들의 영원한 행복이 그들의 성공에 좌우되는 영생의 사업에서는 그들이 마치 도덕적 존재가 아닌 것처럼, 마치 다른 사람이 그들을 위하여 생명이 걸린 경기를 대신해 주고 그들은 결과를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무관심하게 행동한다.”(1증언, 406-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