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안식일

by 청지기 posted Aug 2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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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7시 9분


제9과


안식일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281-289; 마태복음 12:1-8; 마가복음 2:23-28; 누가복음 6:1-5


기억절 :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7-28)


서론 :  유대인들에게 위탁된 제도 중에 안식일만큼 그들과 주변국들을 철저하게 구별시킨 제도는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의 준수로 그들이 당신의 경배자로 일컬어지도록 계획하셨다. 안식일은 우상숭배로부터의 그들의 분리와 참 하나님과 연결된 표징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들 자신이 거룩하게 되어야 했다. 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하였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명령이 이스라엘에게 내려졌을 때에 여호와께서는 또한 그들에게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라고 말씀하셨다(출 20:8, 22:31). 이렇게 되어야만 안식일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경배자로 구별(區別)할 수 있었다.”(소망, 283)


안식일 – 창조주의 사랑과 능력에 대한 영구적인 기념물

1. 안식일은 언제, 누가,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제정되었는가? 하나님께서는 창조 사업을 누구를 통하여 이루셨는가?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창 2:1-2)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막 2:27)

요 1:1-3


안식일은 창조시에 거룩히 구별되었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제정된 것으로 그 기원은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욥 38:7)던 때이다. …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쉬셨기 때문에 일곱째 날을 복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즉 거룩한 목적에 사용되도록 구별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날을 아담에게 휴식의 날로 주셨다. 안식일은 창조 사업의 기념물이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의 표징이었다. …

만물이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 그리고 안식일은 창조 사업의 기념물이므로, 그리스도의 사랑과 능력의 표징이다.”(소망, 281)

2. 성경은 안식일이 이스라엘만의 안식일이 아니라, 온 인류를 위한 안식일로 주어졌을 뿐만 아니라, 천지가 없어지지 않는 한 폐하여질 수 없음을 어떻게 증거하는가?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삭과 매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사 66:2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시 119:89-91)


안식일은 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에 구현되어 있지만 이 때에 처음으로 안식의 날로 알려진 것은 아니었다. …

안식일은 이스라엘만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있는 것이었다. 안식일은 에덴에 살았던 아담에게 알려졌으며, 십계명의 다른 명령과 같이 폐할 수 없는 의무에 속한다. 넷째 계명이 그 일부를 이루는 율법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늘과 땅이 존속하는 한 안식일은 창조주의 능력의 표징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에덴이 다시 지상에 회복될 때에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의 날은 해 아래 있는 모든 사람에 의해 존귀히 여김을 받을 것이다. ‘매 안식일에’ 영화롭게 된 새 땅의 주민들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마 5:18; 사 66:23).”(소망, 283)

구별의 표 – 우상숭배자인가, 창조주의 경배자인가?

3. 안식일은 우상숭배로부터 구별되는 표인 동시에 하나님을 경배하는 순종의 표로 주어졌다. 그렇다면 이 안식일은 어떤 사람에게 순종의 표징이 되는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출 31:13, 16)

겔 20:12, 20


유대인들에게 위탁된 제도 중에 안식일만큼 그들과 주변국들을 철저하게 구별시킨 제도는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의 준수로 그들이 당신의 경배자로 일컬어지도록 계획하셨다. 안식일은 우상숭배로부터의 그들의 분리와 참 하나님과 연결된 표징이 될 것이었다. 그러나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해서는 사람들 자신이 거룩하게 되어야 했다. 그들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의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하였다.”(소망, 283)

“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은 사랑의 원칙을 반포한 것, 즉 하늘의 율법을 땅에 계시한 것이었다. 그 율법은 중보자의 손으로 제정되고, 사람의 마음을 그 율법의 원칙과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에 의해 선포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출애굽기 22장 31절)라고 말씀하시면서 율법의 목적을 드러내셨다.”(보훈, 46)

“우리가 이 율법을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세상에 보내는 마지막 자비의 기별의 요지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율법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된 거룩함이 아니라 알려진 거룩함이다. 그것은 자비와 사랑과 선행을 표현하는 원칙들의 규범이다. 그것은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품성을 선물로 주고, 인간의 모든 의무를 분명히 말해 준다(원고 88, 1897).”(화잇주석, 출 20:1-17)

“안식일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의 표징, 곧 그들은 그분께 순종하는 백성이며, 그들이 그분의 율법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표징이다. 안식일의 준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보존하고 그분의 충성된 백성과 그분의 율법의 범법자들과를 구분하는 하나님이 정하신 수단이다.

이것은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 세상 앞에서 도덕적 능력 안에 서 있으면서 이 믿음을 굳게 지키는 성도들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이다.”(8증언, 198)

4. 안식일의 표징이 왜 유대인들에게는 축복이 될 수 없었으며, 그리스도께서 창조주의 능력과 안식일의 정신을 충분히 증거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그분을 거절했는가?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좇아 나의 규례를 업신여기며 나의 율례를 행치 아니하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음이니라”(겔 20:16)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마 15:8-9)

사 29:13


유대인들이 하나님에게서 떠나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자신의 것으로 삼지 않았을 때, 안식일은 그들에게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사단은 자신을 높이고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서 떠나게 하려고 힘썼으며 안식일을 왜곡시키려고 활동하였는데, 그 이유는 안식일이 그리스도의 능력의 표징이기 때문이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안식의 날을 무거운 짐이 되는 요구 사항들로 둘러싸서 사단의 뜻을 성취시켰다. 그리스도의 시대에 안식일은 매우 왜곡되어서, 이날의 준수는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의 품성보다는 오히려 이기적이고 변덕스러운 사람들의 품성을 반영하였다. 랍비들은 사실상 사람들이 순종할 수 없는 율법을 주신 분으로 하나님을 나타냈다. 그들은 사람들로 하나님을 폭군처럼 여기게 하고,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안식일의 준수는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고 잔인스럽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게 하였다. 이런 그릇된 관념을 없애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일이었다. 랍비들이 무자비한 적개심을 품고 예수를 따라다녔지만, 예수께서는 조금도 그들의 규례들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이지조차 않으셨으며, 하나님의 율법을 따라 안식일을 지키시면서 똑바로 행하셨다.”(소망, 283-284)

“율법이 거룩한 것은 분명하나, 유대인들은 스스로 이를 지키는 것으로써 의를 얻을 수 없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바리새인의 의와는 다른 성격의 의를 얻어야 한다.”(보훈, 54-55)

안식일에도 무죄한 노동

5.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길을 가다가 밀 이삭을 잘라 비벼 먹은 일로 바리새인들이 신성 모독과 노동이라는 이중적 범죄를 지적했을 때, 예수께서는 안식일에도 필수적인 신성한 노동의 적법성에 대하여 논증하심으로 제자들의 무죄를 선언하심과 동시에 저들의 무지를 어떻게 꾸짖으셨는가?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고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한 자들이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마 12:1-6)


만일 다윗이 거룩하게 사용하기 위하여 구별해 놓은 떡덩이를 먹어서 자기의 허기를 채운 것이 정당하다면 제자들이 거룩한 안식일 시간에 곡식 이삭을 잘라 그들의 필요를 채운 것도 정당하였다. 더욱이 성전 안의 제사장들은 다른 날보다도 안식일에 더 많은 일을 행하였다. 세속적인 사업에 그런 노동을 하면 그것은 죄가 될 것이었다. 그러나 제사장들의 일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행사였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대속하시는 능력을 가리키는 의식을 집전하였으며 그들의 노동은 안식일의 목적과 일치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친히 오셨다. 그리스도의 사업을 하던 제자들은 하나님의 사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며 안식일에 이 사업의 성취에 필요한 일을 행하는 것은 옳은 일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제자들과 원수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무엇보다도 으뜸가는 일임을 가르치고자 하셨다.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사업의 목적은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었으므로, 이 사업을 성취시킴에 있어서 안식일에 행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안식일의 율법과 일치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 곧 모든 문제와 모든 율법 위에 계신 분이라고 선언하심으로 당신의 논증의 마지막을 장식하셨다. 이 무한하신 심판관께서 제자들이 범하였다는 바로 그 율법에 호소하심으로 그들에게 무죄를 언도하셨다.”(소망, 285)

6. 그리스도께서는 원수들을 꾸짖으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위선과 형식의 무가치한 신앙이 오히려 율법의 가치와 신성성을 훼손하고 있음을 어떻게 드러내셨는가?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마 12:7


예수께서는 당신의 원수들을 꾸짖는 일로 이 문제를 종결짓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눈이 멀어서 안식일의 목적을 오해하였다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다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마 12:7)고 말씀하셨다. 마음에도 없는 그들의 많은 의식은 하나님의 참된 경배자들을 늘 특징 지어줄 참된 고결함과 온유한 사랑의 결핍을 보충해줄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제물 그 자체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진리를 다시 반복하셨다. 그것은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었다. 제사의 목적은 사람들을 구주께 이끌어서 하나님과 일치되게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귀중히 보시는 것은 사랑의 봉사이다. 이것이 결여된 채 행하는 의식의 단순한 반복은 하나님께 대한 범죄이다. 안식일도 역시 그러하다. 안식일은 사람들로 하나님과 교통하도록 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 그러나 마음이 피곤한 의식에 골몰하여 있을 때에 안식일의 목적은 훼손되었다. 안식일을 단지 형식적으로 지키는 것은 헛수고였다.”(소망, 285-286)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7.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라는 질문을 받으셨을 때, 어떻게 답하셨는가? 

거기를 떠나 저희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편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송사하려 하여 물어 가로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마 12:9-12)


정탐꾼들은 자신들이 난처한 처지에 휩쓸려 들어갈 것이 두려워 대중이 있는 곳에서는 그리스도께 감히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예수께서 진리를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유전을 범하기보다는 사람이 고통을 당하도록 버려두는 한편, 버려둔다면 소유주가 손실을 당한다는 이유로 짐승은 구출해 주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에게보다 말 못하는 동물에게 더 큰 배려를 하였다. 이것은 모든 거짓 종교가 하는 일을 설명하여 준다. 이런 종교들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높이려는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것들은 사람을 야수보다 못한 존재로 타락시킨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항하는 종교마다 창조시에 가졌었고, 또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사람에게 회복될 영광을 사람에게서 속여 빼앗는다. 거짓 종교마다 그 신봉자들에게 인간의 필요, 고통, 권리에 대하여 무관심하라고 가르친다. 복음은 인류를 그리스도의 피값으로 산 바 된 존재로 높이 평가하며, 사람의 필요와 고통과 권리에 자애로운 관심을 보이라고 가르친다. 주께서는 ‘내가 사람을 정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오빌의 순금보다 희귀케 하리로다’(사 13:12)고 말씀하셨다.”(소망, 286-287)

8.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의도적으로 병자를 치유하심으로 저들의 관습을 정죄하실 뿐만 아니라, 저들의 사악한 마음의 계획을 어떤 질문으로 드러내셨는가?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저희는 분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처치할 것을 서로 의논하니라”(눅 6:9-11)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고 질문하시면서 예수께서는 그들의 사악한 목적을 그들에게 들이대셨다. 예수께서는 생명을 구하시며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시는 반면에, 그들은 심한 증오심을 가지고 그의 생명을 노리고 있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행하신 바 고통당하는 자들을 고치는 것보다 그들이 하려고 계획하고 있는 바 사람을 죽이는 것이 더 나았는가? 하나님의 성일에 인자한 행실로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나타내는 것보다 마음에 살의를 품는 것이 더 의로웠는가?

예수께서는 손이 마른 자를 고치심으로써 유대인의 관습을 정죄하셨고, 넷째 계명을 하나님께서 주신 그 본연의 모습대로 살리셨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고 선언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유대인의 무의미한 규례들을 쓸어 버림으로 안식일을 존귀하게 하신 반면에, 예수께 대하여 불평의 말을 하던 자들은 하나님의 성일을 더럽히고 있었다.”(소망, 287)

“이 이적은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신시키는 대신에 오히려 그 이적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기 때문에 분노로 가득 찼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자비의 행동이 안식일에 합당한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 일이 합당하지 않다고 하였다. 우리는 어느 편을 믿어야 할 것인가?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요 15:10)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길을 따르고 계명을 지키는 것이 확실히 안전한 것이다.”(1기별, 314)

마지막 시대의 안식일 –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印)

9. 사단은 마지막 시대에도 예수님 당시의 랍비들처럼 교회 지도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무너트리기 위해 어떤 계명을 집중적으로 공격할 것인가? 그는 안식일을 어떤 표징으로 바꾸려고 계획하고 있는가?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계 13:15-17)


그리스도교 시대에 인류의 행복의 대 원수는 넷째 계명 곧 안식일을 특별한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다. 사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하나님의 목적을 부지불식간에 방해하는 공작을 하겠다. 나의 추종자들에게 권능을 주어 하나님의 기념일인 제칠일 안식일을 제거하겠다. 그리하여 나는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복 주신 그날이 변경되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겠다. 그리하여 그날이 백성들의 마음에 살아 있지 않도록 할 것이다. 나는 그날에 대한 기억을 말살시킬 것이다. 나는 그 대신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한 날 곧 하나님과 당신의 백성 사이에 표징이 될 수 없는 날을 세우겠다. 나는 이날을 받아들이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제 칠일에 부여하신 거룩성을 그날에 부여하도록 인도하겠다.’

‘나는 나의 대리자를 통하여 나를 높이겠다. 첫째 날은 찬양을 받겠고 개신교계는 이 거짓 안식일을 참 안식일로 받아들일 것이다. 하나님이 세운 안식일을 준수하지 못하게 함으로 나는 하나님의 율법을 경멸하겠다.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란 말을 나는 내 안식일의 편에 적용되도록 하겠다.’

‘이리하여 온 세계는 나의 것이 될 것이다. 나는 지상의 통치자, 세상의 왕이 될 것이다. 나의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의 마음을 조종해서 하나님의 안식일을 특별한 멸시의 대상이 되게 하겠다. 표징? 나는 일곱째 날의 준수를 지상의 권위에 대한 불충성의 표징으로 삼겠다. 인간의 율법을 매우 엄하게 만들어 남녀들로 하여금 감히 제 칠일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겠다. 음식과 의복의 부족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세상과 연합할 것이다. 세상은 전부 나의 통치 아래 있게 될 것이다.’”(선지, 183-184)

10.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재림 전, 남은 백성들인 144,000인을 통하여 안식일의 거룩한 목적과 율법의 원칙을 세상에 어떻게 분명히 나타내실 것인가? 하나님의 계획은 최후의 기별들을 통하여 어떻게 성취될 것인가?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사 58: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5)


안식일이, 그분은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임을 보이는 그들과 하나님 사이의 표라고 생각하는 모든 자들은 그분의 정부의 원칙들을 나타낼 것이다. 그들은 그분의 나라의 율법을 매일 실천할 것이다. 안식일의 성결케 함이 그들 위에 머물기를 매일 기도할 것이다. 그들은 매일 그리스도와 동행할 것이며, 그분의 품성의 완성을 구현할 것이다. 매일 그들의 빛은 선행을 통하여 타인에게 비춰질 것이다.”(6증언, 353-354)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는 사람들만이 거룩한 도성의 문들을 통과할 여권을 갖게 될 것이다. …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성품이 그리스도를 닮은 자들에게만 쳐질 것이다.

초에 도장의 흔적이 남듯이 영혼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하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지녀야 한다.”(마라나타, 241)

“어린 양이 생명수 샘물 곁으로 인도하실 사람들, 그 눈에서 모든 눈물이 씻겨질 사람들은 지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지식과 성경에 대한 깨달음을 얻고 있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인간을 모방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우리의 표준이 될만큼 훌륭한 사람은 없다. 우리는 온전히 의롭고, 온전히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분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인간의 모범이시다. 그의 경험은 우리가 얻어야 할 경험의 척도이다. 그의 품성이 우리의 귀감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의 난처한 일들과 어려움을 마음에서 벗어 버리고 그분께 마음을 고정시키라. 이는 우리가 그를 바라봄으로써 그의 모습으로 변화되게 하려 함이다. 우리는 아주 효과적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며, 안심하고 그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아주 현명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를 바라보고 그를 생각할 때, 그분은 우리 속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으로 자리를 잡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능력을 가지고 144,000인 가운데 들도록 힘써 노력하자(리뷰 1905. 3. 9).”(화잇주석, 계 7:4-17)


[상고할 말씀]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폐하셨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을 범하셨을 뿐 아니라 제자들이 안식일을 범하는 것을 정당화하셨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그들은 실상 트집 잡던 유대인들이 하던 것과 똑같은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로써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노라’(요 15:10)고 말씀하신 그리스도 자신의 증언을 모순되게 만든다. 구주나 당신의 제자들 중 어느 누구도 안식일의 율법을 범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산 표본이셨다. 그의 생애 가운데 율법의 거룩한 명령을 범한 일을 찾아볼 수 없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정죄하려는 기회를 찾던 증인들을 바라보시면서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요 8:46)고 말씀하셨지만 아무도 반박할 수 없었다.

구주께서는 부조들과 선지자들이 말한 것을 폐지하려고 오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친히 이 대리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진리는 그리스도에게서 왔다. 그러나 이 무한히 귀중한 보석이 제 위치에 놓여져 있지 않았었다. 그 귀중한 빛은 오류에 도움이 되도록 사용되어 왔다. 하나님께서는 그것들이 오류의 배경에서 제거되어 진리의 틀 속에 놓여지기를 원하셨다. 오직 거룩하신 손만이 이 일을 성취할 수 있었다. 오류와 관련됨으로써 진리는 하나님과 사람의 원수의 사업을 도와 왔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리에 진리를 두시고 인류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오셨다.”(소망, 287-288)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시험을 당한 것처럼 사람이면 누구나 다 시험을 받는다. 선악과가 에덴 동산 중앙에 위치해 있었던 것과 꼭 같이 안식일 계명은 십계명의 중앙에 있다. 선악과 열매에 대하여 ‘그것을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을까 하노라’(창 3:3)는 제한을 하셨다. 안식일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그것을 더럽히지 말고 거룩하게 지키라 … 고 말씀하셨다. 그 지식의 나무가 아담의 충성의 시금석이었던 것과 꼭 같이 네째 계명은 하나님께서 그의 모든 백성의 충성을 증명하도록 하시려고 주신 시금석이다. 시간이 지속되는 동안까지는 아담의 경험이 우리들에게 하나의 경고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나 혹은 천사들의 입으로 보증한다 할찌라도 여호와의 거룩한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헐뜯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우리에게 주고 있다(리뷰 1898. 8. 30).”(화잇주석, 출 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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