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요한의 투옥과 죽음 (2)

by 청지기 posted Jul 0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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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7시 56분


제2과


요한의 투옥과 죽음(2)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216-225; 마태복음 11:4-14; 마가복음 6:19-28; 누가복음 7:21-28


기억절 :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7)


서론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만일 처음부터 종말까지를 볼 수 있고 하나님의 동역자로서 그들이 성취하고 있는 그 목적의 영광을 식별할 수 있다면, 그들이 인도받기를 선택하였을 그 길 이외의 어떤 다른 길로는 결코 그들을 인도하지 않으신다. 하늘로 승천한 에녹이나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승천한 엘리야일지라도, 결코 옥중에서 외롭게 죽은 침례 요한보다 더 위대하거나 영예를 더 많이 받지는 않았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 1:29). 그리고 하늘이 사람에게 주실 수 있는 모든 선물 중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는 신임이요 가장 높은 영예인 것이다.”(소망, 224-225)


마침내 메시야의 사명의 본질을 이해함

1. 요한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셨는가?

“마침 그 시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소경을 보게 하신지라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눅 7:21-22)


구주께서는 제자들의 질문에 즉시로 대답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 침묵을 지키시는 것을 그들이 궁금히 여겨 서 있을 때에 병자와 고통당하는 자들이 치유함을 받기 위하여 예수께로 나왔다. … 예수께서는 그들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한편 백성들을 가르치셨다. 부정하다는 이유로 랍비들이 멀리하던 가난한 농부들과 노동자들이 예수의 주위에 가깝게 모였으며,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하셨다.

이와 같이 요한의 제자들이 모든 것을 보고 듣는 동안에 그날은 저물어 갔다. 드디어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고, 그들이 목격한 것을 가서 전하라고 명하시고 … 그의 신성의 증거가 고통당하는 인류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가운데 나타났다. 그의 영광은 우리와 같은 낮은 처지에까지 내려오신 그의 겸비에서 나타났다.”(소망, 216-217)

2. 그리고 어떤 말씀을 덧붙이셨는가? 그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치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눅 7:23)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고 하신 구주의 말씀은 요한에 대한 은근한 책망이었다. 요한은 이 말씀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그리스도의 사명의 본질에 대하여 더욱 명백히 깨달았으므로 그가 사랑하던 사업의 최선의 유익을 위하여 살든지 죽든지 자신을 하나님께 굴복시켰다.”(소망, 218)

메시야의 왕국의 원칙이 계시됨

3. 요한은 예수님의 대답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았는가?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눅 4:18-21)


제자들은 그 기별을 전하였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요한은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 전파하여’(사 61:1, 2) 라는 메시야에 관한 예언을 상기하였다.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은 자기가 메시야임을 선언하였을 뿐 아니라, 어떤 모양으로 그의 나라가 세워질 것인지를 보여주었다. 광야에서 엘리야에게 이르렀던 그 같은 진리가 요한에게도 공개되었다. 곧 이 때에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하나님께서 ‘세미한 소리’로 선지자에게 말씀하셨다(왕상 19:11, 12). 예수께서도 당신의 사업을 이와 같이 군대의 충돌과 또는 보좌와 왕국들을 뒤집어엎으시는 것을 통해서가 아닌, 자비와 자아 희생의 생애로 사람들의 마음에 말씀하심으로 하실 것이었다.”(소망, 217)

4. 마침내 요한은 메시야의 왕국의 원칙이 무엇임을 깨달았는가?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7)


침례 요한 자신의 극기의 생애의 원칙은 메시야의 왕국의 원칙이었다. 요한은 이런 모든 것이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원칙과 소망에 얼마나 어긋나는 것인가를 잘 알았다. 요한에게 그리스도의 신성을 확신시킨 증거가 그들에게는 아무런 증거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약속되지 않은 그런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요한은 구주의 전도가 그들에게서 단지 증오와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선구자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남김없이 마셔야 했던 그 잔을 마시고 있는 것에 불과하였다.”(소망, 217-218)

예수님께서 요한의 사명을 확증하심

5. 침례 요한이 외칠 당시의 유대 지도자들의 상태에 비하여 요한의 생애는 얼마나 대조적이었는가?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자들은 왕궁에 있느니라”(마 11:8)


요단 강변에 자라서 산들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거리는 키가 큰 갈대는 침례 요한의 전도를 비평하며 판단하는 자로서 서 있었던 랍비들을 상징하기에 알맞았다. 그들은 여론의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렸다. … 그는[요한] 결코 인간의 칭송이나 편견의 바람에 휩쓸리는 흔들리는 갈대가 아니었다. 감옥에서도 광야에서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던 때와 같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의에 대한 그의 열성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원칙에 충실함으로 바위처럼 견고하였다. … 요한은 그 당시의 죄와 방종을 견책하도록 부르심을 입었으며, 그의 간소한 의복과 극기의 생애는 그의 사명의 성질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 예수께서는 요한의 의복과 제사장들과 관원들이 입은 옷 사이의 대조에 주의를 돌리기를 원하셨다. 이런 성직에 있는 자들은 사치한 두루마기와 값진 장식품으로 차려 입었다. 그들은 허식을 사랑하였으며, 백성들을 현혹하여 더욱 큰 관심을 모으기를 바랐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받을 마음의 순결함을 얻기보다는 사람의 칭찬 얻기를 더욱 갈망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그들의 충성이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왕국에 바쳐진 것임을 드러내었다.”(소망, 218-219)

“그리스도께서는 침례 요한이 가장 위대한 선지자들 중에 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청중들에게 요한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자라는 충분한 증거를 그들이 갖고 있음을 보여주셨다.”(실물, 278)

6. 예수님께서는 침례 요한을 “큰 자”라고 인정하셨는데, 하나님께서 높이 평가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눅 1:15)

마 11:11


하늘이 위대하게 평가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에서 크다고 여기는 것 곧 그들이 가치 있게 생각하는 부나, 지위나, 훌륭한 가문이나, 지적 선물이 아니다. 만일 보다 더 고상한 어떤 것들을 고려함 없이 지적 위대함이 영예를 받을 만한 것이라면, 우리의 경의는 그 누구도 그에 필적할 만한 지능을 갖지 못했던 사단에게 돌려야 한다. 그러나 자기를 섬기는 데 악용될 때에 그 선물이 크면 클수록 그 저주도 크게 된다. 하나님께서 높이 평가하시는 것은 도덕적인 가치이다. 사랑과 순결이 하나님께서 가장 귀중히 여기시는 속성이다. 요한이, 산헤드린이 파견한 사자들 앞에서나 백성들 앞에서나, 자신의 제자들 앞에서 자신의 영예를 구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예수를 약속하신 분으로서 가리켰을 때,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위대하였다. 그리스도의 봉사를 보고 느낀 그의 이기심 없는 기쁨은 일찍이 사람이 나타낸 것 중에서 가장 숭고한 형태의 기쁨을 보여준다.”(소망, 219)

“명예에 앞서 겸비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침례 요한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천한 지위를 차지하는 교역자를 사람들 앞에서 높은 자리에 채우기 위하여 선택하신다.”(소망, 436)

큰 빛으로 인도하는 작은 빛으로서의 사명

7. 메시야의 선구자, 요한은 어떤 의미에서 “선지자보다 나은 자”였는가? 반면에, 그가 “작은 자”로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나은 자니라”(눅 7:26)


요한은 메시야의 선구자로서 ‘선지자보다 나은 자’였다. 그 이유는 선지자들이 그리스도의 강림을 멀리서 바라보았던 반면에, 요한은 예수를 보았으며 그가 메시야가 되신다는 하늘의 증언을 들었으며 그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로서 이스라엘에게 소개하였기 때문이다. …

요한이 그의 사명 가운데서 발견하였던 기쁨을 뺀다면, 그의 생애는 슬픔의 생애였다. 그의 음성은 광야 이외의 곳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었다. 그의 생활은 고독하였다. 더구나 그는 자신의 활동의 결과를 보도록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보다 큰 빛에 따르는 하늘의 능력의 나타남을 목격하는 것은 그의 특권이 아니었다. 눈먼 자가 시력을 회복하고 앓는 자가 나음을 입고 죽은 자가 살아서 일어나는 것을 그는 볼 수 없을 것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모든 말씀을 통하여 비췬 빛이 예언의 약속 위에 영광을 발산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리스도의 능력 있으신 이적을 보고 그 말씀을 듣던 가장 작은 제자라도 이런 의미에서 침례 요한보다 더욱 훌륭한 특권을 받은 것이므로, 그보다 더 크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소망, 220)

8. 선지자 요한은 신구약 시대를 통해서 어떤 역할을 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무엇인가?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마 11:13-14)


선지자 요한은 두 시대를 연결시키는 고리였다. 그는 하나님의 대표자로서 율법과 선지자가 그리스도교의 시대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보이기 위하여 섰었다. 그는 더욱 큰 빛으로 인도하는 작은 빛이었다. 요한의 마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밝아진 것은 그 당시의 백성들에게 빛을 비추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다른 어떤 빛도 예수의 교훈과 모본에서 비춰나오는 것만큼 타락한 인류에게 그렇게 명백히 비춰주었거나 비추일 빛은 없다. 그리스도와 그의 사명은 예표된 희생 제물로써 표상되어 희미하게 이해되어 왔을 뿐이었다. 심지어 요한까지도 구주로 말미암은 미래의 영원한 생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소망, 220)

요한의 죽음

9. 헤로디아는 복수심을 가지고 요한을 죽이려 했으나, 헤롯의 동의를 받지 못할 것을 알고, 어떤 술책을 통하여 그를 죽이고자 했는가?

마침 헤롯의 생일을 당하여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다 허락하거늘 그가 제 어미의 시킴을 듣고 가로되 침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마 14:6-8)

막 6:19-28


헤로디아는 직접적인 방법으로는 요한을 죽이게 하는 일에 헤롯의 동의를 얻을 수 없을 것을 알고 술책으로 자기의 목적을 수행하기로 결심하였다. 왕의 생일에 국가의 관원들과 왕궁의 고관들에게 연회가 베풀어질 예정이었다. 이곳에서는 잔치와 술취함이 있을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헤롯이 경계하는 마음을 버리고 자기의 뜻대로 좌우될지도 모를 것이었다. …

왕은 술에 취하여 정신이 나가 있었다. 정욕에 완전히 사로잡혀서 이성은 착란되었다. 그는 단지 연회석상의 쾌락, 곧 술에 취한 손들과 연회 식탁과 거품이 이는 포도주와 번쩍이는 불빛과 그리고 자기 앞에서 춤을 추는 젊은 여자만을 보았다. 잠시 동안 그는 전후의 생각 없이 자기 나라의 위인들 앞에서 자기를 높여줄 어떤 과시를 하고 싶은 생각이 났다. 그는 헤로디아의 딸이 무엇을 원하든지, 심지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맹세하고 약속하였다.

살로메는 무엇을 구해야 할지를 알기 위하여 급히 자기 어머니에게로 달려 갔다. 대답은 준비되었다. 그것은 곧 침례 요한의 머리였다. 살로메는 그의 어머니의 마음속에 간절한 복수심이 있는 것을 알지 못했으며, 그 요구를 제출하기를 꺼렸다. 그러나 헤로디아의 결심이 이기고야 말았다. 그 소녀는 돌아와서 ‘침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막 6:25)라는 끔찍스러운 청원을 하였다.

헤롯은 놀라서 당황하였다. 광적인 환락은 그치고 불길한 침묵이 환락의 장소에 내려 앉았다. 왕은 요한의 목숨을 앗는다는 생각을 하고 공포에 질려버렸다. 그러나 그는 이미 언약했으므로 변덕을 부리거나 경솔하게 보이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는 손님들의 명예에 걸어 맹세는 하였지만, 만일 그들 중에 하나라도 그가 약속을 이행하는 것을 반대하는 말을 하였다면 즐거이 요한을 살려 주었을 것이다. 그는 그들에게 그 죄수를 위하여 말할 기회를 주었다. 그들은 요한의 전도를 듣기 위하여 먼 거리를 여행하였었으므로 그가 죄 없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종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소녀의 요구에 충격은 받았지만 간언(諫言)으로 중재하기에는 너무나 취하여 있었다. 하늘의 사자의 생명을 살리라는 음성은 나오지 않았다.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국내의 신뢰할만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중대한 책임이 그들에게 맡겨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감각이 마비되기까지 환락과 술 취함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머리는 음악과 춤의 어지러운 장면 때문에 돌아 버리고 양심은 잠자는 상태에 빠져 버렸다. 그들은 침묵함으로써 한 파렴치한 여인의 복수심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사형 선고를 선포한 것이다.”(소망, 221-222)

10. 예수님께서 당신의 종, 요한을 구해 내시려고 개입하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인가? 요한이 자신의 죽음을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 1:29)


침례 요한의 운명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깊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왜 요한이 감방에서 신음하다가 죽도록 버림을 받아야 했던가 하고 그들은 묻는다. 우리 인간적인 통찰력으로는 이 어두운 섭리의 신비를 투시할 수 없다. 그러나 요한이 그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할 때에 그것이 우리의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결코 흔들 수 없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자들은 희생의 면류관을 쓸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이기적인 사람들의 오해를 받을 것이며, 사단의 맹렬한 공격 목표가 될 것이다. 사단의 왕국은 이 자기희생의 원칙을 파괴시키기 위하여 세워졌으며, 그는 어디에서 이 정신이 나타나든지 그것에 대항하여 싸울 것이다.

요한의 유년 시대와 청년 및 장년 시대는 견고함과 도덕적 능력이 그 특징을 이루었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마 3:3)는 그의 음성이 광야에 들리자, 사단은 자기의 왕국의 안전을 인하여 두려워하였다. 죄의 죄악됨이 사람들을 무서워 떨게 하는 그러한 방법으로 나타내졌다. 많은 사람들을 자기의 지배 아래 두었던 사단의 권세는 파괴되었다. 사단은 하나님께 송두리째 바친 그의 생애에서 침례 요한을 돌이키게 하려고 집요하게 노력해 왔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또한 예수를 정복하는 일도 실패하였다. 사단은 광야의 시험에서 패배하였으므로 그의 분노는 극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요한을 침으로 그리스도를 슬픔에 빠지게 하려고 결심했다. 사단은 자기가 범죄하도록 꾈 수 없었던 그분에게 고통을 안겨 주려 했다.”(소망, 223-224)

“요한에게 기적적인 구출은 허락되지 않았을지라도 그는 버림을 당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항상 하늘의 천사들이 동무가 되어 주었다. 그들은 그에게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들과 성경 말씀의 귀중한 허락들을 공개하여 주었다. 이것이 그의 지주(支柱)였으며, 이것은 또한 미래의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의지할 지주가 될 것이었다.”(소망, 224)


[상고할 말씀]

그리스도께서는 장래에 관한 진리를 말씀하셨으며 시련이 왔을 때 그들은 낙담하거나 의심하지 말아야 했다. 침례 요한이 목베임을 당하고 그의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종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적을 행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분을 책망할 경향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이적을 행하시지 않으시고, 우리의 원수들을 굴복시키지 않으시기 때문에 불만을 나타낼 위험이 있다.-리뷰 앤드 헤럴드, 1898.4.19.”(적은 무리, 30)

“사단은 하나님의 사자의 지상 생애를 단축시키도록 허용은 받았지만, 그 파괴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골 3:3)어진 저 생명은 어찌할 수 없었다. 사단은 자기가 그리스도에게 슬픔을 가져다 준 것을 매우 기뻐하였으나, 요한을 정복하는 일에는 실패하였다. 죽음 그 자체는 다만 요한을 영원히 시험의 권세의 피안(彼岸)에 두게 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사단은 이 전쟁에서 자신의 성품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는 목격하고 있는 우주 앞에서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그의 적개심을 드러내고 말았다.”(소망, 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