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한의 투옥과 죽음 (1)

by 청지기 posted Jun 26,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해지는 시간: 오후 7시 57분


제1과


요한의 투옥과 죽음(1)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214-216; 살아남는 이들, 197-198; 누가복음 3:19-20


기억절 :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든 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막 6:17)


서론 :  구주의 제자들처럼 침례 요한도 그리스도의 왕국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예수께서 다윗의 보좌를 취하시리라고 예기하였다. … 그러나 침례 요한은 그리스도에 대한 자기의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하늘에서 들린 음성, 성령의 비둘기 같은 강림, 예수의 흠 없는 순결성, 그리고 요한이 구주 앞에 나갔을 때에 그에게 임하였던 성령의 능력, 성경의 예언들의 증언 등 이러한 모든 기억이 나사렛 예수가 약속된 분이심을 증거하는 것이었다.”(소망, 215-216)


요한의 투옥

1. 침례 요한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마 14:3)


침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나라를 전파한 첫째가는 사람이었으며, 또한 고난에도 으뜸가는 사람이었다. 광야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자기의 말에 귀를 기울이던 많은 무리에서 떠나서 요한은 이제 토굴 감방의 벽 속에 갇혀 있었다. 그는 헤롯 안디바의 성채 안에 있는 감옥에 수감되었다.”(소망, 214)

2. 누가 요한을 옥에 가두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는가?

분봉왕 헤롯은 그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그의 행한 모든 악한 일을 인하여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이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눅 3:19-20)


요한은 대부분의 봉사의 생애를 안디바가 지배하던 요단 동부 지역에서 보냈다. 헤롯 자신도 침례 요한의 전도에 귀를 기울였었다. 방탕하던 왕은 회개하라는 부름을 듣고 떨었다.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느끼면서도 달게 들음이러라.’ 요한은 헤롯이 그의 동생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죄악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을 책망하면서 그를 신실하게 대하였다. 헤롯은 얼마 동안은 자기를 속박한 정욕의 쇠사슬을 끊어버리려고 미미하게나마 노력하였다. 그러나 헤로디아는 그를 자기의 올가미에 더욱 단단히 묶어 놓고 헤롯을 부추겨 요한을 투옥시킴으로써 그에게 복수하였다.”(소망, 214)

옥중에서 낙담하고 근심함

3. 요한은 옥중 생활을 통해서 어떤 상태에 놓이게 되었으며, 그의 제자들로 인하여 어떤 시험에 들게 되었는가?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마 11:2)


요한의 생애는 적극적인 활동의 생활이었으므로, 그의 옥중 생활의 음침함과 무위(無爲)함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변함없는 여러 주일이 지나자 낙담과 의심의 그림자가 그를 덮었다.

요한의 제자들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감옥에 접근하도록 허용되었으므로, 예수의 사업에 대한 소식을 그에게 전하고 백성들이 어떻게 예수의 주위에 모여들고 있는지를 말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만일 이 새로운 교사가 메시야라면, 그가 왜 요한을 석방시키기 위하여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지를 의심하였다. 어떻게 그가 그의 충실한 선구자가 자유, 그리고 아마도 생명까지 빼앗기도록 버려둘 수가 있단 말인가?”(소망, 214-215)

4. 하나님의 사자로서 시험을 피할 수는 없지만, 요한이 낙담과 실망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며, 당시의 유대인들 또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눅 2:35)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 4:12-13)


구주의 제자들처럼 침례 요한도 그리스도의 왕국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예수께서 다윗의 보좌를 취하시리라고 예기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구주께서 왕으로서의 권위를 주장하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요한은 당황하여 근심하게 되었다. 그는 주 앞에 길이 예비되기 위해서는 산과 언덕이 낮아지며 험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지가 되리라는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어야 한다고 백성들에게 선언해 왔었다. 그는 버렸어야 할 인간적인 자만과 권력의 높은 지위들을 기대하였었다. 그는 메시야를 그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시고,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는 분으로 지적하였었다. 요한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이스라엘에게 왔다. 그는 엘리야와 같이 여호와께서 불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으로서 자신을 친히 드러내시기를 기대하였다.”(소망, 215)

“… 요한의 전도로 말미암아 현저하게 제시되었던 메시야의 강림이 흔히 대화의 주제가 되었다. 국가가 강대해진다는 소망은 흥분된 감격으로 강조되었다. 예수께서는 이 소망이 성경을 잘못 해석하는 데서 기인된 것이므로 실망을 겪게 될 것을 아셨다.”(소망, 154)

실망과 낙담의 원인

5. 그리스도의 사명의 본질을 오해함으로 요한의 기대는 그의 옥중 생활의 고통을 어떻게 가중시켰는가?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사 40:10)


침례 요한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죄악을 두려움 없이 책망하는 자로서 자기의 사명을 완수하였다. 그는 담대하게 헤롯왕을 대면하여 그의 죄를 솔직하게 책망하였다. 그가 자기의 생명을 초개처럼 여긴 것은 자기에게 맡겨진 사업을 성취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이제 요한은 자기가 갇힌 옥에서 유다 지파의 사자가 압제자의 교만심을 무너뜨리고 울부짖는 가난한 자들과 자기를 구원하여 주실 것을 고대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기 주위에 제자들을 모으시고 백성들을 고치시며 가르치시는 것으로 만족히 여기시는 것처럼 보였다. 날마다 로마의 멍에가 이스라엘을 더욱 무겁게 누르고 헤롯왕과 그의 사악한 간부(姦婦)가 그들의 목적을 수행하며 가난한 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의 외치는 소리가 하늘에 사무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는 세리들의 식탁에서 잡수시고 계셨다.”(소망, 215)

6. 재림운동 당시에 재림의 기별을 전하던 사자들이 낙담과 실망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목적은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 26:3)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고 한 다니엘서 8장 14절의 예언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라고 한 첫째 천사의 기별은 다 같이 지성소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봉사, 곧 조사 심판을 가리키는 것이지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속하시고 악인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재림하시는 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착오는 예언적 기간의 계산에 있었던 것이 아니고, 2,300주야의 끝에 일어날 사건에 대한 오해에 있었다. 그와 같은 오해 때문에 신자들은 실망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쟁투, 423)

“기대했던 시간은 지나갔으나 그리도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하여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진실한 신앙과 사랑으로 구주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쓰디쓴 실망을 당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목적은 성취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소위 재림을 기다리노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시험하고 계셨다.”(쟁투, 374)

구약시대의 개혁사업과 비교됨

7. 요한은 자신의 사업을 구약시대의 어떤 사업과 연관 지어 생각하면서 실망을 느꼈는가?

제사장 에스라가 일어서서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가 범죄하여 이방 여자로 아내를 삼아 이스라엘의 죄를 더하게 하였으니 이제 너희 열조의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그 뜻대로 행하여 이 땅 족속들과 이방 여인을 끊어 버리라 회 무리가 큰 소리로 대답하여 가로되 당신의 말씀대로 우리가 마땅히 행할 것이니이다”(스 10:10-12)


광야의 선지자에게는 이런 모든 것이 측량할 수 없는 한 신비처럼 보였다. 때때로 여러 시간 동안 마귀의 속삭임이 그의 정신을 괴롭게 하였으며, 심한 공포의 그림자가 그를 덮었다. 오랫동안 고대해 오던 구주가 아직도 나타나지 않았단 말인가? 그렇다면 자기 자신이 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그 기별은 무슨 의미가 있었던가? 요한은 자기가 전도한 결과에 쓰디쓴 실망을 느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그 기별이요, 요시야와 에스라 시대에 율법을 낭독함으로 끼쳤던 것과 같은 결과가 있을 것이며(대하 34장; 느 8, 9장), 회개하여 여호와께 돌아오는 심층(深層)적인 사업이 잇따를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의 온 생애는 이 전도 사업의 성공을 위하여 희생되어 왔다. 그 일은 헛된 일이었던가?”(소망, 215-216)

8. 요시야와 에스라 시대에 어떤 심층(深層)적인 개혁사업이 있었는가?

엘람 자손 중 여히엘의 아들 스가냐가 에스라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여 이 땅 이방 여자를 취하여 아내를 삼았으나 이스라엘에게 오히려 소망이 있나니 곧 내 주의 교훈을 좇으며 우리 하나님의 명령을 떨며 준행하는 자의 의논을 좇아 이 모든 아내와 그 소생을 다 내어 보내기로 우리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고 율법대로 행할 것이라 이는 당신의 주장할 일이니 일어나소서 우리가 도우리니 힘써 행하소서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맹세하는지라”(스 10:2-5)


이 일은 놀라운 개혁의 시작이었다. 에스라와 그의 동료들은 무한한 인내와 재치를 가지고 관련된 모든 개인들의 권리와 행복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회개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고자 노력하였다. 무엇보다도 에스라는 율법 선생이었으므로, 모든 경우에 대한 조사에 개인적으로 주목하면서 그는 이 율법의 신성성과 순종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축복으로 백성에게 감명을 주고자 노력하였다.

에스라가 일하는 곳에서는 어디에나 성경 연구의 부흥이 일어났다. 백성을 가르칠 교사들이 임명되었고, 여호와의 율법은 높임과 명예를 얻었다. 예언서들을 연구하였고, 메시야의 오심에 대해 예언한 구절들이 마음이 슬프고 피로한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안위를 주었다.”(선지, 622-623)

“스룹바벨과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지도하에 돌아온 방랑자들이 수행한 복구 사업과 개혁사업은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 시대에 이루어져야 할 영적 회복 사업을 묘사한다. 이스라엘의 남은 사람들은 원수의 파괴 행위에 노출된 연약한 백성들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당신과 당신의 율법의 지식을 세상에 보존하시고자 목적하셨다. 그들은 참 예배의 수호자들이요 거룩한 말씀의 보존자들이었다. 성전과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때에 그들은 여러 가지 경험들을 겪었고 강한 반대를 당하였다. 이 사업의 지도자들이 진 부담은 무거웠으나, 이 사람들은 확고부동한 신념과 겸손한 정신과 하나님께 대한 굳은 신뢰심을 가지고 전진했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진리를 승리로 이끄실 줄을 믿었다. 히스기야 왕처럼 느헤미야는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 계명을 지켰’고,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왕하 18:6, 7)셨다.”(선지, 676)

그리스도에 대한 요한의 믿음

9. 옥중에서 요한은 극심한 시험을 당했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이 시대의 하나님의 사업의 조력자들도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침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침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하니라”(요 1:33-34)


그러나 침례 요한은 그리스도에 대한 자기의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하늘에서 들린 음성, 성령의 비둘기 같은 강림, 예수의 흠 없는 순결성, 그리고 요한이 구주 앞에 나갔을 때에 그에게 임하였던 성령의 능력, 성경의 예언들의 증언 등 이러한 모든 기억이 나사렛 예수가 약속된 분이심을 증거하는 것이었다.”(소망, 216)

“우리가 현 위치에 이르기까지 한 걸음 한 걸음씩 전진하며 여행한 우리의 과거 역사를 회고해 볼 때, 나는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말할 수 있다. 주님께서 행하신 역사를 바라볼 때, 나는 경탄과 우리의 인도자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확신으로 충만해진다.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해오신 길과 우리의 과거 역사를 통하여 주신 그분의 가르침을 잊어버리는 것 외에는 미래를 위하여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자서, 196)

10. 요한은 자신의 의심과 염려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떤 조치를 취하기로 결심했는가? 뿐만 아니라, 이것은 누구를 위한 일이기도 한가?

요한이 옥에서 그리스도의 하신 일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마 11:2)


요한은 자기의 제자들이 자기를 위한 사랑 때문에, 예수에 대한 불신을 마음에 품고 있는 것을 보고 염려하였다. 그들을 위한 자기의 사업은 열매를 맺지 못하였던가? …

요한은 자기의 의심과 염려를 자기 동료들과 함께 토론하지 않았다. 그는 예수에게 물어보는 기별을 보내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이 일을 자기 제자 중 두 명에게 위탁하였다. 그리고 구주와의 회견이 그들의 믿음을 확고하게 해주고, 그들의 형제들에게 확신을 가져다주게 되기를 바랐다. 또한 그는 자신에게 직접 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기를 갈망하였다.”(소망, 216)

침례 요한의 질문

11. 요한은 예수님께 어떤 질문을 했는가?

저희가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침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말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눅 7:20)


제자들은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까’라는 그들의 기별을 가지고 예수에게로 나왔다.”(소망, 216)

12. 그 질문은 예수님께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가?

…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막 9:24)


침례 요한이 예수를 가리켜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요 1:29, 27)고 선포한 지가 과연 얼마나 되었는가. 그런데 이제 ‘오실 그이가 당신이 오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성정으로는 너무나 심한 괴로움이요 실망이었다. 충실한 선구자 요한도 그리스도의 사명을 식별하지 못하였거늘, 하물며 자기만을 위하는 무리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가 있었겠는가?”(소망, 216)


[상고할 말씀]

만일 그들이 성경에 의하여 인정할 수 없는 것을 기대한다면, 그들의 행동은 그릇된 데로 이끌려가게 되고, 실망으로 불신자들의 조소를 사게 되고 낙담하는 위험에 빠져, 결국에는 그들의 구원에 필수적인 진리까지도 의심하도록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쟁투, 456)

“사단이 가장 맹렬한 시험을 가지고 영혼을 공격할 때는 그 영혼이 가장 약할 때이다. …

오늘날도 그러하다. 우리가 의심에 싸이고 고통스러운 환경에 처하거나 빈곤이나 곤궁으로 괴로움을 당할 때에 사단은 여호와께 대한 우리의 신뢰심을 흔들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우리들의 과오를 나열하고 하나님을 불신하고 그분의 사랑을 의심하도록 우리를 유혹한다. 그는 영혼을 낙심하도록 하고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을 깨뜨리려고 한다.

… 낙담은 가장 영웅적인 믿음도 흔들 수 있고 가장 확고한 의지도 약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이해하시고 여전히 동정하시고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동기와 마음의 의도를 훤히 아신다. 모든 것이 어둡게 보일 때에 끈기 있게 기다리고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업을 지도하는 자들이 배워야 할 교훈이다. 하늘은 역경의 날에 그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무력한 것 같으나, 자신의 무가치함을 느끼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영혼만큼 참으로 강한 것은 없다.”(선지, 173-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