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구주의 오심 (2)

by 청지기 posted Nov 27,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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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5시 14분


제10과


구주의 오심 (2)


[연구범위]

선지자와 왕, 693-702


기억절 :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말이 하나도 다시 더디지 않을지니 나의 한 말이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겔 12:28)


서론 :  메시야는 당신의 지상 봉사의 기간에 말씀과 행위로써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인류에게 나타내셔야 하였다. 당신의 생애의 모든 행동, 말씀하신 모든 말씀, 행하신 모든 이적은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알게 해야 하였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릴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같이 양 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사 40:9-11).”(선지, 696-697)


공의와 자비의 사명

1. 메시야의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이중적 사명은 무엇인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시 40:8)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시 19:7)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사 42:6-8)


메시야에 관하여 더 많이 예언되었다.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율법(영문 성경 참조)을 앙망하리라.’ 하나님의 아들은 ‘그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사 42:4, 21)여야 하셨다. 그분은 율법의 중요성과 의무적인 요구를 작게하지 말아야 하며 오히려 그것을 높이셔야 하였다. 동시에 그분은 인간이 만든 가혹한 요구들로부터 하나님의 계명들을 자유롭게 하여야 했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이 하나님을 가납하실 수 있게 섬기려고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선지, 693)

“이 세상 사람들은 거짓 신을 숭배하고 있다. 그들에게 우상에 대한 비난을 들려줌으로써가 아니라 그 우상보다 더 좋은 것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거짓된 우상숭배에서 돌아서게 해야 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사 43:12).”(실물, 299)

2. 메시야의 율법에 대한 사명과 인류의 구원을 위한 복음의 초청은 궁극적으로 그분의 공생애를 통하여 무엇이 증거됨으로 성취되어야 하는가?

내가 나의 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상거가 멀지 아니하니 나의 구원이 지체치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사 46:13)


‘죄와 더러움을 씻는’ 한 샘이 열리겠고 사람의 아들들은 복된 초청을 들을 것이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포도주와 젖을 사라.’ … (사 55:1-3).

이스라엘에게 다음의 언약이 주어졌다.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사 55:4, 5). …

메시야는 당신의 지상 봉사의 기간에 말씀과 행위로써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인류에게 나타내셔야 하였다. 당신의 생애의 모든 행동, 말씀하신 모든 말씀, 행하신 모든 이적은 타락한 인간에게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알게 해야 하였다.”(선지, 695-696)

그분의 이름과 오시는 길과 장소

3. 약속된 메시야는 어떤 이름이 주어졌으며 왕의 혈통으로서 누구의 호적을 따라 나실 것이 예언되었는가? 그분의 왕으로서의 사명이 어떻게 묘사되었는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 1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렘 23:5)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치 아니하며 공의로 빈핍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그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사 11:2-5, 10).”(선지, 695)

4. 메시야의 오시는 장소에 대하여는 어떻게 예언되었는가?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 5:2)

요 7:42


이와 같이 예표와 상징은 물론 부조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죄로부터 구원하실 자가 오실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영감으로 예언된 긴 구절들이 ‘만국의 보배’의 강림을 지적하였다. 그분의 탄생지와 나타나실 시간까지도 자세히 열거하였다.

다윗의 자손은 다윗성에서 탄생하셔야 하였다. 선지자는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고 말하였다.

 ‘또 유다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릴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마 2:6).”(선지, 697)

오시는 때와 기산점

5. 메시야의 강림하실 때와 기산점에 관하여 어떻게 상세히 예언되었는가? 아닥사스다의 조서(B.C 457년)가 기산점이 되는 증거는 무엇이며 이전 조서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에스라여 너는 네 손에 있는 네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네 하나님의 율법을 아는 자로 유사와 재판관을 삼아 강 서편 모든 백성을 재판하게 하고 그 알지 못하는 자는 너희가 가르치라 무릇 네 하나님의 명령과 왕의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는 자는 속히 그 죄를 정하여 혹 죽이거나 정배하거나 가산을 적몰하거나 옥에 가둘지니라 하였더라”(스 7:25-26)


초림의 시기와 구주의 필생의 사업과 관련해서 일어난 중요한 사건들을 가브리엘 천사가 다니엘에게 알려주었다. 천사는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단 9:24)고 말했다. 예언상 하루는 일 년에 해당한다(민 14:34; 겔 4:8 참조). 70주일 혹은 4백90일은 4백90년을 나타낸다. 이 기간의 기산점(起算點)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이레와 육십이 이레’ 즉 69주일 혹은 483년이 ‘지날 것이요’(단 9:25). 아닥사스다 롱기마누스(Artaxerxes Longimanus)의 조서에 의하여 완성된 예루살렘의 재건령(再建令)은 기원전 457년 가을에 내렸다. 이때부터 483년은 서기 27년에 해당된다. 예언에 따라 이 때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메시야가 나타나야 하였다. 서기 27년 예수께서는 당신의 침례로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으시고 그 후에 곧 당신의 봉사를 시작하셨다. 그리고는 ‘때가 찼’다는 기별이 선포되었다.”(선지, 697-698)

6. 세 번째 조서(아닥사스다 7년, B.C 457년)가 기산점일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증거 즉 검증은 무엇인가?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단 9:27)

마 26:1-2; 27:50-51


그 후에 천사는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칠 년)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다고 말하였다. 구주께서 당신의 봉사에 들어가신 후 7년 동안 복음은 특별히 유대인에게 전파되어야 하였으니 3년 반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시고 나머지는 구별 받은 사도들이 전하여야 하였다.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단 9:27)다. 서기 31년 봄에 참 희생 제물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갈바리에서 제물이 되셨다. 그때 성전 휘장이 둘로 찢어져서 제사 예식의 신성성과 그 중요성이 없어졌음을 보여 주었다. 지상의 제사와 제물을 그만 드려야 할 때가 왔다.

한 주일 즉 7년은 서기 34년에 끝났다. 그 때에 스데반을 돌로 쳐 죽임으로 유대인들은 마침내 그들이 복음을 거절한다는 최후통첩에 도장을 찍었다. 박해로 인하여 널리 흩어진 제자들은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하’였으며 얼마 후에 박해자 사울이 회개하여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이 되었다.”(선지, 699)

빛을 잃어버림

7.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에게는 메시야의 오심이 부지런히 예언을 살피며 고대하던 바였으나 정작 그분이 오시는 때와 장소가 알려진 이후로 그분이 오심이 가까웠을 당시에는 왜 그토록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적었는가?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얻으실 영광을 미리 증거하여 어느 시,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벧전 1:10-11)

“인자야 이스라엘 땅에서 이르기를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응험이 없다 하는 너희의 속담이 어찜이뇨 …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말이 그의 보는 묵시는 여러 날 후의 일이라 그가 먼 때에 대하여 예언하는도다 하나니”(겔 12:22, 27)

(겔 12:22-28; 사 7:10-16 참조 -“이스라엘 땅”과 “다윗의 집”은 평행적 구조임)


구주의 강림에 관한 많은 예언들은 히브리인들로 하여금 항상 기다리는 태도로 생활하게 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믿음 안에서 죽었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그 약속들을 멀리 바라보고 그들은 저희가 땅에서 나그네와 순례자라는 사실을 믿고 또 그렇게 고백하였다. 에녹의 시대로부터 부조들과 선지자들을 통하여 반복된 약속들이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것이라는 소망을 생생하게 간직해 내려왔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초림의 정확한 때를 나타내시지 아니하셨다. 또 다니엘의 예언이 이것을 알려주기까지는 그 기별을 바로 해석하지 못했다.

여러 세기가 흘러 마침내 선지자들의 음성이 그쳤다. 압박자들은 이스라엘을 억압적으로 지배하였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떠날 때에 신앙심은 어두워지고 장래에 대한 희망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많은 사람들은 선지자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들의 믿음을 굳게 지속했어야 할 사람들도 바로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응험이 없다’(겔 12:22)고 부르짖게 되었다. 그러나 하늘의 회의에서는 그리스도의 오실 시간이 결정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갈 4:4, 5)셨다.”(선지, 699-700)

구속의 경륜과 예언이 성취됨

8. 창 3:15에 선포된 구속의 경륜은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어떻게 성취되어야 했는가?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 13:1)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저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요 13:30-31)

롬 12:19-21


인간의 언어로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어야만 하였다. 언약의 사자께서 말씀하셔야 했다. 그분의 음성이 그의 성전에서 들려야 하였다. 진리의 창시자이신 그분은 진리를 무효로 만든 인간의 말의 찌꺼기로부터 진리를 분리시켜야 하였다. 하나님의 정부의 원칙들과 구속의 경륜이 분명하게 밝혀져야 하고 구약 성경의 교훈들이 사람들 앞에 충분히 제시되어야 한다.

구세주께서 마침내 ‘사람들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의 은혜의 봉사를 시작하실 때에 사단은 그 발꿈치만을 상하게 할 수밖에 없었으나 반면에 그리스도께서는 굴욕이나 고통의 모든 행위로 당신의 대적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계셨다. 무죄하신 그분의 가슴은 죄가 가져온 고민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에게 대한 죄인들의 반발을 참으시는 반면에 죄인을 위하여 빚을 갚으시고 인간을 누르고 있는 속박을 깨뜨리고 계셨다. 모든 고민으로 인해 겪은 고통과 모든 모욕은 인류의 구원을 이룩하고 있었다.”(선지, 700-701)

그리스도의 승리와 사단의 패배

9.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승리는 얼마나 완전한 승리였는가?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요 14:30)


사단이 그리스도를 단 한 가지 유혹에라도 굴복하게 할 수 있었다면, 단 한 번의 행동이나 생각만으로라도 당신의 완전한 순결을 더럽히도록 할 수 있었다면 흑암의 왕은 인류의 보증인이 되신 그리스도로부터 승리를 빼앗아 전 인간 가족을 자기 자신에게로 이끌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단은 그리스도를 괴롭힐 수는 있었으나 더럽힐 수는 없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긴 투쟁과 시련의 장면이 되게 하였으나 그의 모든 공격으로 인해 오히려 인류에 대한 그의 지배력을 상실하고 있었다.”(선지, 701)

“우리들이 그 말씀 곧 그리스도께서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다는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가 있다면 좋으련만! 그는 죄의 오점이 없었지만 그의 거룩한 본성에서 우러나온 우아한 감정이 그분에게는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죄악과 맞부딪치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인성을 가지고 그 반역의 괴수를 대면하였다. 그리고 그는 맨손으로 그의 보좌의 원수를 저지하였다. 그리스도는 단 하나의 생각으로라도 유혹에 굴복치 않았다(리뷰 1887. 11. 8).”(화잇주석, 히 2:18)

10. 사단은 어떻게 패배했으며 그가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 그것이 그에게는 어떻게 치명적인 운명을 선고한 것이 되었는가?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히 2:14)


광야의 시험에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구주께서는 흑암의 왕 사단과 싸우셨다. 당신의 상처는 인류를 위한 당신의 승리의 트로피가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고통 중에 신음하시고 악의 영들이 기뻐하며 악인들이 욕을 퍼붓던 그 때에 과연 사단은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상하게 하였다. 그러나 바로 그 행위는 뱀의 머리를 부수고 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셨다. 이 행위는 반역의 두목의 운명을 결정하였고 구속의 경륜을 영원히 확실하게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그 죽음의 권세를 이기셨고 부활하심으로 당신의 모든 추종자들에게 무덤의 문을 여셨다. 그 최후의 대투쟁에서 우리는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는 예언이 성취된 것을 본다.”(선지, 701-702)


[상고할 말씀]

예수께서는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요 14:30)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 안에는 사단의 궤변에 반응한 것이 조금도 없었다. 그는 죄를 짓기로 동의하지 않으셨다. 그는 생각으로라도 시험에 굴복하지 않으셨다. 우리도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과 연합되었다. 그는 성령의 내재하심으로 투쟁할 태세가 갖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는 우리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오셨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와 연합하고 있는 한 죄는 더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의 손을 인도하여 그리스도의 신성을 굳게 붙잡게 함으로 우리로 완전한 품성을 얻게 하시려고 하신다.”(소망, 123)

“인성의 연약함을 지니신 그리스도께서 그보다 더 높은 본성, 곧 하나님이 천사의 가족들에게 주신 본성을 갖고 있는 자의 시험을 당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인성은 신성과 연합되어 있었고, 이 능력 안에서 그는 사단이 그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모든 시험을 당하셨지만 그의 영혼은 조금도 죄로 더럽힘을 받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바로 이 능력을 믿음으로 그분의 의로운 품성을 받아 들이는 모든 아담의 아들과 딸들에게 주신다(리뷰 1909. 1. 28).”(화잇주석, 히 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