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구주의 오심 (1)

by 청지기 posted Nov 20,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해지는 시간: 오후 5시 15분


제9과


구주의 오심 (1)


[연구범위]

선지자와 왕, 681-693; 창세기 3:15; 이사야 9:1-7; 42:1-7; 49:1-7; 53:1-12; 초기문집, 149-158


기억절 :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이스라엘의 바위가 내게 이르시기를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다스리는 자여 저는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삼하 23:3-4)


서론 :  하나님의 목적이 수행되는 데 가장 결정적인 반대가 없지 아니하였다. 진리와 의의 원수는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아브라함의 후손들로 하여금 그들의 높고 거룩한 부르심을 잊어버리고 거짓 신을 예배하도록 하려고 노력하였다. 때때로 그의 노력은 거의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스도의 초림 전의 여러 세기 동안 어두움이 세상을 덮고 캄캄함이 백성들을 덮었다. 사단은 사람들을 막아 하나님과 내세에 관한 지식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그들의 길에 흉악한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군중들은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었다. 그들의 유일한 소망은 어두움이 걷히고 하나님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선지, 687-688)


태초 이래로 가장 놀라운 기별

1. 아담이 범죄하므로 에덴의 주권을 잃어버린 이래로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시기까지 온 인류가 고대하고 기다리던 소망은 무엇이며 이 희망의 기별은 언제 어떻게 선포되었는가?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범죄한 부부는 이 말을 들었을 때에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 이유는 사단의 능력을 깨뜨리시겠다는 예언에서 범죄로 인해 생긴 멸망에서의 구원에 대한 약속을 분별했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들이 대적의 유혹의 감화로 타락하고 여호와의 분명한 명령을 불순종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원수의 지배하에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렇다고 완전히 절망에 빠질 필요는 없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의 생명의 피로 그들의 범죄를 속하겠다는 제의를 하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은혜의 기간이 허락되어야 하였고 그 동안에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한 신앙을 통하여 그들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다.”(선지, 681-682)

2. 인류를 구속하시기 위해 오실 메시야에 관한 구원의 지식은 세대를 통하여 어떻게 보전되어 왔으며 이 복음의 전수자들의 믿음의 경험은 어떠했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


하나님의 아들이 구주와 왕으로서 강림하심으로 이루어질 구원의 소망이 사람들의 마음에서 결코 소멸되지 아니하였다. 창세로부터 그들의 믿음이 현재의 그늘을 넘어 미래의 실재에 도달한 사람들이 있었다. 아담, 셋, 이삭, 야곱, 이들과 다른 훌륭한 사람들을 통하여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뜻에 대한 귀중한 계시를 보존하셨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메시야를 세상에 보내 주시기로 한 선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당신의 율법의 요구와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의 속죄의 희생을 통하여 성취될 구원에 관한 지식을 나누어 주셨다.”(선지, 682-683)

구체화 된 복음 - (아브라함과 모세)

3. 이 복음은 언제부터 구체화되고 조직적으로 전수되기 시작했는가? 왜 복음은 구체적이고 조직적으로 보존될 필요가 있었으며 그 준비와 완성은 언제 이루어졌는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 6: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 12:1-2)

창 25:7; 신 34:7


이스라엘의 소망은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에 하신 약속에서 구체화 되고 후에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3)는 말로 그의 후손에게 거듭거듭 반복되었다. 인류의 구속에 관한 하나님의 목적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났을 때에 의의 태양이 그의 마음을 비추어 어두움은 사라졌다. 마침내 친히 구주께서 사람의 자녀들 중에 거니시고 담화하실 때에 그분은 구속자의 오심을 통해 이루어질 구원에 대한 아브라함의 빛나는 소망을 유대인들에게 증거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고 선언하셨다.

이 동일한 복된 소망이 임종하는 부조(父祖) 야곱이 그의 아들 유다에게 한 축복에서 예표되었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창 49:8-10)”(선지, 683)

4. 메시야에 대한 복음은 구속의 청사진으로써 언제 가장 구체적이고 완전하게 계시되었는가? 왜 이전에는 이렇게 공개될 수 없었는가?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출 25:8)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모세는 오실 메시야의 사업에 관해 이스라엘을 위하여 분명히 가르침을 받았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 하심은 당신의 종에게 하신 여호와의 말씀이었다(신 18:15, 18).

부조들의 시대에 있어서의 거룩한 예배와 관련된 희생 제물들은 구주의 오심을 영원히 생각나게 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는데 온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행해진 성소 봉사의 모든 의식이 그러하였다. 성막과 후에 그것을 대신한 성전 봉사에서 백성들은 날마다 예표와 그림자라는 방법으로 구주시요 제사장이요 왕이신 그리스도의 오심과 관계된 큰 진리를 배웠고 매년 한 번씩 그들의 마음은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의 마지막 사건들과 우주가 죄와 죄인들로부터 정결함을 입을 최후의 사건으로 이끌려 갔다. 모세의 의문의 희생과 제물도 언제나 더 나은 예배 즉 하늘의 것을 지적하였다.”(선지, 684-685)

“태초부터 하나님은 당신의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충만과 풍족을 온 세상에 나타내시려고 계획하셨다.”(행적, 9)

가장 열심 있는 연구자 사단

5. 사단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선고한 말씀으로부터 자신의 운명과 복음을 통한 인류의 회복에 대하여 어떻게 분명히 깨달았으며 그는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자기들의 가증한 물건들을 세워서 그 집을 더럽게 하며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바알의 산당을 건축하였으며 자기들의 자녀를 몰렉의 불에 지나가게 하였느니라 그들이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하여 유다로 범죄케 한 것은 나의 명한 것도 아니요 내 마음에 둔 것도 아니니라”(렘 32:34-35)


여호와께서 에덴동산에서 뱀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창 3:15)라고 선언하신 그날부터 사단은 결코 자기가 이 세상 거민들을 완전히 장악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담과 그 자손들이 오실 구주의 예표로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의식적인 희생 제물을 드리기 시작할 때에 사단은 그 가운데서 하늘과 땅 사이의 교통의 상징을 분간할 수 있었다. 그 뒤를 따른 오랜 세기 동안에 사단은 이러한 교통을 방해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그는 하나님을 그릇 선전하고 구주를 지적하는 의식들을 곡해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여 압도적인 대다수의 인간 가족들에게서 성공을 거두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너무나 사랑하심으로 그들을 당신과 화해시킬 수 있는 선물을 주신다는 사실을 가르치시고자 하시는 반면에, 인류의 대적 사단은 하나님을 그들의 멸망을 기뻐하시는 분으로 나타내고자 애썼다.”(선지, 685)

6. 사단은 메시야에 관하여 예언된 모든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한 목적은 무엇인가?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당하실 고난과 사명을 깨닫고 두려워 떨었으나 그는 어떤 결심으로 더욱 확고히 했는가?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사 53:1)

사 53:2-9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마 13:55)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요 19:21)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 히브리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어졌을 때에 사단은 메시야에 관한 기별들을 부지런히 연구하였다. 사단은 고통당하는 희생 제물로서, 정복당하는 왕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사람들 가운데서 역사하실 그의 사업의 윤곽을 분명하게 묘사한 말씀을 주의 깊게 조사하였다. 구약 성경의 양피지 두루마리에서 그는 나타나실 그분은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되시겠고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실 것임을 읽었다(사 53:7, 52:14). 인성을 쓰신 약속된 구주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하여야 하였으나 그는 ‘백성의 가난한 자를 신원하’기 위하여 당신의 강한 능력을 행사하셔야 하였다. 그는 ‘궁핍한 자의 자손을 구원하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셔야 하였다(사 53:3, 4; 시 72:4). 사단은 이 예언들을 보고 두려워 떨었으나 잃어버린 인류에 대한 여호와의 자비스러운 구속의 섭리를 할 수 있는 대로 좌절시키려는 그의 목적을 버리지 아니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를 거절할 수 있는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대로 메시야에 대한 예언들의 진정한 의미를 알지 못하도록 백성들의 눈을 멀게 하기로 결심하였다.”(선지, 686-687)

메시야의 오심과 사명이 묘사됨

7. 메시야의 오심과 사명에 대하여 선지자들은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오히려 경한 일이라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사 49:6)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 다윗은 예언적 계시로 그리스도의 오심이 ‘돋는 해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삼하 23:4)을 것임을 미리 알았다. 호세아는 ‘그의 나오심은 새벽빛같이 일정하’(호 6:3)다고 증언하였다. 새벽은 조용하고 천천히 지상에 이르러 어두움의 그늘을 흩어 버리고 세상에 활력을 일깨워 준다. 그처럼 의의 태양이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말 4:2)할 것이었다.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는 군중들이 ‘큰 빛을’(사 9:2) 보아야 하였다. …

다음에 주어진 예언적 약속은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구속자, 이스라엘의 거룩자이신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 에게 이같이 이르시되 …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 하며 흑암에 있는 자에게 나타나라 하리라 …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사 49:7-10).”(선지, 688-689)

8. 선지자의 글을 통하여 메시야의 오심을 기쁨으로 고대한 사람들은 그분의 사명을 생각할 때 무엇 때문에 슬픔으로 가득 찼는가?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사 53:1-4)

사 53:5-9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보존된 거룩한 가문의 후손들인 유다 민족 중의 확고한 사람들은 이 예언들과 그와 비슷한 절들을 유의함으로 그들의 믿음을 굳게 하였다. 그들은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어떻게 여호와께서 그에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시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사 61:1, 2)를 선포하게 하실 것을 읽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하여 견디어야 할 고통을 생각할 때에 그들의 마음은 슬픔으로 가득 찼다. 그들은 지극히 겸비한 마음으로 예언의 두루마리에서 다음의 말씀을 연구하였다. (사 53:1-9 인용)”(선지, 689-690)

뼈를 세는 고통을 참으신 사랑

9. 구속의 경륜을 성취하시는 메시야의 사명과 당하실 고통에 대하여 어떻게 묘사되었으며 그분의 고통의 원인은 무엇이며 그 잔은 왜 감해질 수 없는가? 어떤 보증으로 고통을 견디셨는가?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안위할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시 69:20-21)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시 22:16-17)


여호와께서는 고통당하시는 구주에 대하여 스가랴를 통해 친히 선언하셨다.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슥 13:7). 그리스도께서는 죄 많은 인간의 대리자와 보증인으로서 하나님의 형벌로 고통을 당하셔야 하였다. 그분은 공의가 의미하는 바를 깨달으셔야 하였다. 그분은 죄인들이 중보자 없이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셔야 하였다.

이 약속된 구주가 겪을 쓰라린 고통과 잔인한 죽음에 대한 묘사가 비록 슬프기는 하나 약속으로 충만하였으니 이는 그로 하여금 ‘속건 제물’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고 슬픔에 처하게 ‘하시기를 원하’신 그에 대하여 여호와께서는 선언하셨기 때문이다.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사 53:10-12).”(선지, 691-692)

10. 그리스도께서 그토록 큰 희생과 고통으로 구속의 값을 치르신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분께서는 구속의 댓가를 어떤 방법으로만 치르셔야 하셨는가? 

가라사대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눅 22:42)


그리스도께서 구속의 대가를 치르신 것은 죄인들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가 없’고 아무도 남녀들을 원수의 세력에서 속량할 수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59:16)셨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 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사 42:1).

그분의 생애에서 자신의 주장이 섞이지 말아야 하였다. 이 세상이 지위나 부나 재능에 부여하는 그같은 경의가 하나님의 아들에게는 이질(異質)적인 것이 되어야 하였다. 사람들이 충성심을 얻거나 존경을 받으려고 사용하는 방법을 메시야는 아무것도 사용하지 아니하셨다. 그분께서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신 것은 다음의 말로 예표되었다.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직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리라.

  (사 42:2, 3)”(선지, 692-693)


[상고할 말씀]

구주께서 사람들 중에 처하신 사실이 당신의 시대의 교사들과 현저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분의 생애에서 시끄러운 논쟁, 허식적인 예배, 칭찬을 받으려는 행위는 어느 때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메시야는 하나님 안에 감추어지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의 품성 가운데 나타나야 하였다. 하나님께 대한 지식이 없으면 인류는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될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남녀들은 점점 타락할 것이다. 생명과 능력은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로부터 나누어 받아야 한다. 인간의 필요를 다른 방법으로는 채울 수 없었다.”(선지, 6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