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참된 위대함

by 청지기 posted Aug 01,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해지는 시간: 오후 7시 34분


제6과


참된 위대함


[연구범위]

선지자와 왕, 514-521; 다니엘 4장; 교회증언 8권, 126-127; 가려뽑은 기별 1권, 297-299; 교육, 173-176


기억절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하노라 크도다 그 이적이여, 능하도다 그 기사여,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 권병은 대대에 이르리로다”(단 4:2-3)


서론 :  바벨론 나라의 보좌 위에 있는 왕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은혜를 따뜻하고 감동시키는 힘이 있는 말로 간증하는 하나님의 증인이 되었다. 그의 간증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의와 평강을 경험하고 있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었다(청년 지도자 1904. 12. 13).”(화잇주석, 단 4:37)


“열왕의 왕” 느부갓네살

1. 느부갓네살은 열국의 교만을 꺾은 권세와 영광의 공덕을 누구에게 돌렸는가?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위한 축복의 통로로써 실패한 유다를 심판하는 일과 당신의 목적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왜 이방인이요 우상숭배자였던 그를 선택하셨는가?

느부갓네살 왕은 천하에 거하는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에게 조서하노라 원하노니 너희에게 많은 평강이 있을지어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하노라 크도다 그 이적이여, 능하도다 그 기사여,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 권병은 대대에 이르리로다”(단 4:1-3)


세상 영광의 절정에 오르고 영감의 글에서까지 ‘열왕의 왕’(겔 26:7)으로 인정을 받았던 느부갓네살이었지만 그도 가끔은 그의 나라의 영광과 그의 통치의 혁혁함을 여호와의 은총에 돌렸다. 이 같은 일은 그가 큰 우상의 꿈을 본 후의 일이었다. …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에 관하여 느부갓네살왕이 가졌던 고상한 개념은 그 후에 그의 경험에서 잊어버린 바 되었으나 두라 평지에 모인 군중 앞에서 그의 거만한 정신이 겸손하여졌을 때에 그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 권병(權炳)은 대대에 이르리로다’라고 고백하였다. 느부갓네살은 모태로부터 우상 숭배자요, 우상숭배에 대한 교육을 받은 자인 동시에 우상숭배하는 백성의 수령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천부의 공의감(公義感)을 갖고 있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반역자들을 형벌하고 당신의 목적을 성취시키는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으셨다.”(선지, 514-515)

2. 하나님께서 그(느부갓네살)에게 유다와 유다의 원수들 뿐만 아니라, 강대국이었던 어느 나라까지도 정복할 권세를 허락하셨는가? 그의 수도는 금머리답게 ‘만국의 찬양’이 되었으나, 그것은 그에게 어떤 유혹에 빠질 위험이 되었는가?

인자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 군대로 두로를 치게 할 때에 크게 수고하여 각 머리털이 무지러졌고 각 어깨가 벗어졌으나 그와 군대가 그 수고한 보수를 두로에서 얻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애굽 땅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붙이리니 그가 그 무리를 옮겨 가며 물건을 노략하며 빼앗아 갈 것이라 이것이 그 군대의 보수가 되리라 그들의 수고는 나를 위하여 함인즉 그 보수로 내가 애굽 땅을 그에게 주었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 29:18-20)

겔 26:2-7 참조


느부갓네살에게 ‘열국의 강포한 자’(겔 28:7)란 이름이 주어졌으며 여러 해 동안의 끈기 있고 고된 노력 끝에 두로를 정복하였고 애굽도 역시 그의 승승장구하는 군대에게 패하였다. 그가 이 나라 저 나라를 바벨론에 병합시킴으로써 그 시대의 최대의 통치자로서 그의 명성은 더욱더 빛났다.

그처럼 야심많고 교만하고 성공한 군주가 참된 위대함으로 인도하는 겸손의 길에서 돌아서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된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는 정복을 위한 전쟁 중에서도 틈틈이 그 수도(首都)를 견고히 하고 미화하는 일에 치중하였고 드디어 바벨론 성읍은 그 나라의 최고의 영광 즉 ‘금도성’, ‘만국의 찬양’이 되었다. 건설자로서의 그의 열성과 바벨론을 세계의 경이(驚異) 중의 하나로 만든 그의 주목할 만한 성공은 그의 허영심을 채워서 마침내 그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목적을 성취시키시는 데 사용하실 수 있는 현명한 통치자로서의 그의 기록을 훼손할 중대한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선지, 515)

무한히 자비로운 경고

3.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에게 임할 위험으로부터 구원하시고 보호하시기 위하여 어떤 경고의 꿈을 주셨는가?

나 느부갓네살이 내 집에 편히 있으며 내 궁에서 평강할 때에 한 꿈을 꾸고 그로 인하여 두려워하였으되 곧 내 침상에서 생각하는 것과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을 인하여 번민하였었노라”(단 4:4-5)

단 4:10-17 참조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베푸사 왕에게 그의 위험과 그를 멸하기 위하여 놓여진 함정에 대하여 경고하시려고 다른 꿈을 주셨다. 밤의 계시중에 느부갓네살은 땅 한가운데서 자라는 한 큰 나무를 보았는데 그 꼭대기는 하늘에 우뚝 솟았고 그 가지들은 땅끝에까지 뻗어 있었다. 산과 들의 양떼와 소떼들이 그 그늘 아래서 쉬었고 공중의 새들은 그 가지에 보금자리를 쳤다.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식물이 될 만하고 … 무릇 혈기 있는 자가 거기서 식물을 얻’었다.

왕이 그 큰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데 ‘한 순찰자’ 곧 ‘한 거룩한 자’를 보았으며 그는 나무에 가까이 나아와 큰 음성으로 부르짖었다.”(선지, 515-516)

4. 이번에도 바벨론 모든 박사들을 불렀고 이번에는 꿈의 내용을 거듭거듭 알려 주었으나, 아무도 그 꿈을 해석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니엘은 왕으로부터 어떤 존귀를 받는 인물이었는가?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가 들어왔기로 내가 그 꿈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나 그들이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지 못하였느니라 그 후에 다니엘이 내 앞에 들어왔으니 그는 내 신의 이름을 좇아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자요 그의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자라 내가 그에게 꿈을 고하여 가로되 박수장 벨드사살아 네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은즉 아무 은밀한 것이라도 네게는 어려울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아노니 내 꿈에 본 이상의 해석을 내게 고하라”(단 4:7-9)


분명히 불운을 예고하는 그 꿈으로 인하여 크게 번민한 왕은 그것을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에게 거듭 말하였으나 비록 그 꿈이 매우 분명하였을지라도 박사들 중 아무도 그것을 해석할 수 없었다.

다시 한번 이 우상숭배의 나라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사람들만이 하늘나라의 비밀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거해야 하였다. 왕은 고통 중에 그의 성실과 지조와 비할 데 없는 지혜로 인하여 존경을 받고 있는 다니엘을 부르러 보냈다.”(선지, 516)

“산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은 하나님과 생명적 관계를 갖는다. 그것이 바로 존귀로 통하는 길이다. 그는 하늘의 분위기를 지니고 다닌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세상이 돈으로 살 수 없는 보화이다. 하나님과 이런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은 비록 낮은 자리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그의 도덕적 가치는 이방 나라의 왕들이 하나님의 신이 함께 하는 사람이라고 알아 주었던 요셉과 다니엘의 그것처럼 귀중한 것이다(원고 54, 1894).”(화잇주석, 창 41:38)

충실한 해석과 간절한 탄원

5. 다니엘은 꿈의 내용을 듣자마자 왜 놀랐으며, 그러나 그는 어떻게 정확하고 충실하게 해석해 주었는가? 우리는 그의 마음이 왕에게 얼마나 진실한 동정과 연민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는가?

다니엘이 얼마 동안 놀라 벙벙하며 마음이 번민하여 하는지라 … 벨드사살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기를 원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 …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이는 왕이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하사 하늘에 닿으시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심이니이다”(단 4:19-22)

단 4:23-26 참조


다니엘에게는 그 꿈의 뜻이 쉬웠으나 그 의미하는 바는 그를 놀라게 하였다. 다니엘은 ‘얼마 동안 놀라 벙벙하며 마음이 번민하’ 였다. 다니엘이 주저하고 번민하는 것을 본 왕은 그의 종에게 동정을 나타내었다. 그는 ‘벨드사살아 너는 이 꿈과 그 해석을 인하여 번민할 것이 아니니라’고 말하였다.

다니엘은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기를 원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고 말하였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의 교만과 오만 때문에 그에게 내리려 하시는 형벌을 그에게 알려 주어야 할 엄숙한 의무를 자기에게 맡기셨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니엘은 그 꿈을 왕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해석해야 하였고 비록 그 무서운 의미로 인하여 놀라서 말을 못하고 주저하기는 하였으나 그는 자신에게 어떠한 결과가 이르러 오든지 간에 그 사실을 진술해야 하였다.”(선지, 517)

6. 다니엘은 꿈을 해석할 뿐만 아니라, 왕을 위하여 진심으로 어떻게 호소했는가? 선지자는 경고의 기별들을 지혜롭게 해석할 뿐만 아니라, 그의 통치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에 대하여 어떻게 다시 인식시켜 주었는가?

그런즉 왕이여 나의 간하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속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속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였느니라”(단 4:27)


다니엘은 그 꿈을 충실히 해석한 후에 교만한 군주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강권하였고 옳은 일을 행하여 임박한 재난을 피하라고 탄원하였다. 선지자는 ‘왕이여 나의 간하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속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속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고 호소하였다.”(선지, 518-519)


“지상의 모든 통치자들이 행사하는 권력은 다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며, 그 성공 여부는 받은 권력의 사용 방법 여하에 따라 좌우된다. …

하나님의 말씀에만 이 사실이 명백히 제시되어 있다. 거기에는 국민의 힘이란 개인의 경우와 같이 그들을 무적으로 만드는 것처럼 보이는 기회나 시설에 달린 것도 아니고, 그들이 자랑하는 거대함에 있는 것도 아님이 설명되어 있다. 국민의 힘이란 그들이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려는 충실함에 의하여 측정되는 것이다.

이 진리는 고대 바벨론의 역사에서 실증되었다. 큰 나무의 표상 아래 국가통치의 참 목적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보여졌다. 그 나무의 ‘고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식물이 될 만하고’(단 4:11, 12), 들짐승이 그 그늘에서 살며 공중에 나는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었다고 하였다. 이 묘사는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통치, 즉 국민을 보호하고 굳게 서게 하는 통치의 성격을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이 이 목적을 성취하도록 높이셨다. 그 나라는 번영하였고, 드디어 그 부와 권력이 후세에도 따를 나라가 없을 만큼 강대해졌는데, 그것은 영감에 의해 나타난 표상 즉 ‘금머리’(단 2:38)로 성경에 적절하게 표현되었다.”(교육, 174-175)

권고의 거절과 꿈의 성취

7. 그에게 주어진 특별한 경고의 효과는 왜 그토록 빨리 상실되고 말았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를 얼마나 오래 참으셨는가?

열 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궁 지붕에서 거닐새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이 말이 오히려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가로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단 4:29-31)


한동안 선지자의 경고와 권고가 느부갓네살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되지 아니한 그의 마음은 머지않아 성령의 감화를 잃었다. 방종과 야심이 왕의 마음에서 근절되지 아니하였으므로 후에 이 특성들이 다시 나타났다. 느부갓네살은 그처럼 은혜롭게 그에게 주신 교훈과 과거의 경험에 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다시 후에 일어날 나라들에 대한 질투심이 자기 자신을 지배하도록 놔두었다. 이제까지는 크게 공의롭고 자비스러웠던 그의 통치는 압정으로 변하였다. 마음을 완고하게 한 느부갓네살은 그의 천부의 재능을 자신을 영화롭게 하는 데 사용하였고, 그에게 생명과 능력을 주신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높였다.

여러 달 동안 하나님의 형벌은 지체하였다. 그러나 이 관용으로 회개하는 대신에 왕은 교만에 빠져서 마침내 그 꿈의 해석을 불신하고 전에 그가 두려워하던 것을 우습게 여겼다.

그가 그 경고를 받았었던 때로부터 1년 후에 느부갓네살은 그의 궁전을 거닐면서 교만한 마음으로 통치자로서의 그의 권세와 건설자로서의 그의 성공을 생각하면서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고 부르짖었다.

이러한 자만스러운 말이 아직 왕의 입술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한 음성이 나서 하나님의 정하신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을 고하였다.”(선지, 519)

8. 하늘의 놀라운 지식과 빛을 받고도 경고를 공공연하게 무시하게 될 때의 상태를 어떻게 보여주는가? 하나님의 영을 거절한 왕은 어떤 상태로 전락하게 되었는가?

그 동시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았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았었느니라”(단 4:33)


곧 하나님께서 왕에게 주셨던 이성은 사라지고 왕이 완전하다고 생각한 판단과 자신이 자랑하던 지혜는 제거되어 한때 강력하던 군주는 일개 광인(狂人)이 되었다. 그의 손은 그 이상 홀을 잡을 수 없었다. 경고의 기별을 듣지 아니하였던 느부갓네살은 이제 그의 창조주께서 그에게 주셨던 능력을 빼앗기고 사람들에게서 쫓겨나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았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다.”(선지, 520)

일곱 때의 마지막에 다시 회복된 왕권

9. 하나님의 정하신 기한이 찼을 때, 느부갓네살은 다시 어떤 지위와 권세를 회복했는가? 그의 인정과 고백은 온 우주의 구경거리였던 지구에서 속량함을 받은 자들의 경험을 어떻게 대변하고 있는가?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로 이르리로다”(단 4:34)

“다시 밤이 없겠고 …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 22:5)

계 15:3-4 참조


7년간 느부갓네살은 그의 모든 신하들에게 놀라움이 되었다. 7년 동안 그는 온 세상 앞에 천하게 되었다. 그 후에 그의 이성이 회복되었고 겸손히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자기를 징벌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인정하였다. 그는 그의 죄악을 인정했고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그가 회복된 것을 대중 앞에 선언하였다. 느부갓네살은 말하였다.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로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

‘그 동시에 내 총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내 나라 영광에 대하여도 내 위엄과 광명이 내게로 돌아왔고 또 나의 모사들과 관원들이 내게 조회하니 내가 내 나라에서 다시 세움을 입고 또 지극한 위세가 내게 더하였느니라.’”(선지, 520-521)

10. 느부갓네살은 처음부터 ‘우상숭배자의 태생’이요 이후에는 ‘열국의 강포한 자’라는 별명을 가지기까지 되었지만, 하나님의 대표자인 왕족이요 선지자인 다니엘(그리스도의 표상)의 가르침과 품성의 감화를 통하여 놀라운 구원을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기이한 섭리의 경륜을 볼 수 있는가?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단 4:37)


한때 교만하던 군주는 겸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압제적이요 거만하던 통치자가 현명하고 자비심이 많은 왕이 되었다. 하늘의 하나님을 멸시하고 모독하였던 그가 이제 지극히 높으신 이의 권세를 인정하였고 여호와께 대한 경외심과 그의 신하들의 행복을 증진시키고자 열렬히 노력하였다.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의 견책하에 느부갓네살은 마침내 모든 통치자들이 배울 필요가 있는 공과, 곧 참된 위대함은 참된 인자함에 있다는 공과를 배웠다. …

세상에서 가장 큰 나라로 하여금 당신을 찬양할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은 이제 성취되었다.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의 은혜와 인자와 권위를 공중 앞에서 인정한 그의 공적인 성명은 성사(聖史)에 기록된 그의 생애의 최후의 행위였다.”(선지, 521)

“다니엘의 생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그의 동기 중에 가장 강한 동기였다. 그는 위력있는 사람들 가운데 있을 때, 그의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을 나타내지 않으면 그가 하나님의 충실한 청지기가 되지 못할 것을 알았다. 왕과 왕자들, 방백들 앞에서 그의 끊임없는 하늘의 하나님은 그의 감화력을 하나도 손상시키지 않았다. 느부갓네살왕은 다니엘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렸고, 마지막에는 완전히 개심되었으며, 하늘의 왕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는 법을 배웠다(리뷰 1906. 1, 11).”(화잇주석, 단 4:37)


[상고할 말씀]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딤후 1:10)셨다. 아무도 주님을 떠나서는 독립적인 영적 생명을 가질 수 없다. 하나님께서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겔 18:4)고 말씀하셨으므로 죄인은 불멸의 생명을 갖지 못하였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 그대로 뜻은 분명하다. 이 죽음은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맞는 죽음보다도 더욱 완전한 죽음이다. 이 죽음은 곧 둘째 사망을 의미한다. 바로 이 점에서 사람들은 반박하기를 ‘그러면 인간이 짐승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다는 말인가?’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인간의 품위를 타락시키는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면 하나님의 목전에서 인간을 고상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인간이 돈을 축적하는 것일까? 결코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금도 내 것이요 은도 내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인간이 자신에게 위탁된 재물을 남용할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모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빨리 흩으실 수 있으시다. 인간이 총명한 지능을 가질 수 있으며 천부(天賦)의 재능을 풍부히 타고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들은 그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느부갓네살처럼 타락하여 들짐승의 수준에 이르게 될 때에 이성(理性)의 은사를 그에게서 떠나게 하실 수 있으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까닭은 인간이 마치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하나님과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얻은 것처럼 행동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예수님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자기 자신이 지혜롭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한 그 인간은 여전히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간은 지적 세계에서 놀라운 일들을 성취하였으나 저들에게 그러한 일들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분이 누구일까?-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만일 인간이 저들 자신의 능력과 저들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려는 목적으로 최고의 능력을 뽐내며 홍수 이전 세상의 모본을 따른다면 저들은 정녕 멸망할 것이다. 장수한 인간들의 상상력은 오직 악으로 가득 찬 것이었으며 그러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저들은 악을 행하기에 슬기로웠으며 그러한 주민들이 세상에 가득하였으므로 완전히 부패하여지고 말았다. 만일 저들이 지혜가 무한하신 하나님과 연합하였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냥쭝을 가지고 놀라운 일들을 성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들은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행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등지고 사단의 지도를 따르기로 선택하였으며 주님께서는 저들이 자랑하던 모든 지식과 함께 이 지상에서 저들을 쓸어버리셨다.

인류는 자기가 성취한 업적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존대를 받을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 정당히 사용할 경우 자신을 향상케 할 수 있는 위탁된 재능들을 그릇 적용하고 남용할 때에 하나님의 목전에서 급진적으로 자신을 타락시킬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며 아무도 멸망하기를 원치 아니하시는 반면에 결코 죄인을 죄 없다 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모두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자.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지게 하느냐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 2:29, 30).”(1기별, 297-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