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감

by 청지기 posted Jun 27,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해지는 시간: 오후 7시 57분


제1과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감


[연구범위]

선지자와 왕, 452-463; 열왕기하 25:1-21; 역대하 36:11-21; 예레미야 37-40장, 52:1-27; 에스겔 21-24장; 살아남는 이들, 195


기억절 :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세세에 미치나이다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애 5:19-21)


서론 :  시드기야의 치세 제 9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와서’(왕하 25:1) 그 성읍을 포위하였다. 유다의 전망은 절망적이었다. …

애굽인들이 포위된 성읍을 구하기 위하여 올라오려고 하였으므로 갈대아 사람들은 이를 막기 위하여 한동안 유다의 수도의 포위를 풀었다. 시드기야의 심중에는 희망이 솟아올랐고 그는 예레미야에게 사자를 보내어 히브리 국가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요청하였다.

선지자의 무서운 대답은, 갈대아 사람이 돌아와 성읍을 멸하리라는 것이었다. 명령은 내렸고 회개하지 않은 나라는 그 이상 하나님의 형벌을 피할 수가 없었다. … 유다의 남은 사람들은 사로잡혀 가서 저희가 더 좋은 환경에서 배우기를 거절한 교훈들을 역경을 통하여 배워야 하였다. 이 거룩한 파수꾼의 명령에는 어떤 항소(抗訴)도 있을 수 없었다.”(선지, 452-453)


법궤가 성전으로부터 분리됨

1. 예루살렘과 성전이 파멸될 운명이 어떤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며, 그들에게 어떤 거룩한 사명이 맡겨져 있었는가? 언약궤가 성전을 떠나 백성들로부터 숨겨졌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하라”(사 8:16)


하나님의 목적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아직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의인들 중에 어떤 이들은, 십계명이 기록된 돌비가 들어 있는 법궤를 무자비한 자들의 손이 닿지 못하는 곳에 갖다 두기로 결심하고 그 일을 시도하였다. 그들은 슬프고 비통한 마음으로 법궤를 굴속에 감추었다.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의 죄로 인하여 그것은 그들에게서 숨겨졌으며 다시 그들이 찾을 수 없었다. 그 법궤는 아직도 숨겨져 있다. 이것은 감춰진 이래 결코 침해를 당하지 아니하였다.”(선지, 453)

“성전이 멸망 당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몇 신실한 종에게 성전, 즉 이스라엘의 자랑이었으며, 하나님께 범죄하면서도 우상처럼 섬겼던 성전의 운명을 알게 하셨다.”(살아, 195)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갔다.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열국들의 생활 방식과 관습들을 따르지 않도록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 주어진 그 원칙들을 그들은 더 이상 보존하지 않았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시고 열심히 간직하라고 하신 그 원칙들에 충실하지 않는 동안에는 주께서 그들을 번영케 하실 수 없었고 그들과 맺은 언약을 지키실 수가 없었다. 그들의 정신과 그들의 행동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품성을 잘못 나타내었다. 그래서 그분은 그들이 포로로 잡혀가도록 허락하셨다(리뷰 1899. 5. 2).”(화잇주석, 왕하 24:10-16)

2.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의 파멸이 눈앞에 닥침을 보고, 그의 사명이 끝난 것으로 생각하고 고향으로 떠나려 하였으나 어떤 오해를 받았는가

갈대아인의 군대가 바로의 군대를 두려워하여 예루살렘에서 떠나매 예레미야가 베냐민 땅에서 백성 중 분깃을 받으려고 예루살렘을 떠나 그리로 가려 하여 베냐민 문에 이른즉 하나냐의 손자요 셀레먀의 아들인 이리야라 이름하는 문지기의 두목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붙잡아 가로되 네가 갈대아인에게 항복하려 하는도다”(렘 37:11-13)

렘 37:14-15 참조


여러 해 동안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증인으로서 백성 앞에 섰었으나 이제 운명 지워진 성읍이 이방인의 수중에 들어가려고 하는 것을 보고 그는 자기의 사업이 끝난 것으로 생각하고 떠나고자 하였다. 그러나 한 거짓 선지자의 아들 때문에 방해를 받았는데 그는 예레미야가 유다 사람들에게 복종하도록 거듭거듭 간청한 바벨론 사람들과 한패가 되려 한다고 보고하였다. 선지자가 그 같은 거짓 비난을 일축했음에도 불구하고 ‘방백들이 노하여 예레미야를 때려서’, 옥에 ‘가두었다’(렘 37:15).”(선지, 453-454)

“마침내, 그들이 세운 저항 정책과 상충되는 예레미야의 반복된 권고에 분노한 방백들은 왕 앞에 적극적으로 항의를 제기하고 선지자는 민족의 원수요 그의 말은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고 그들에게 불행을 가져오게 하였으므로 그를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선지, 455-456)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하도록 주신 말씀을 전하는 것을 단념할 수 없었으며 그의 증언은 왕과 귀족들을 매우 격노하게 하였으므로 그는 무시무시한 굴에 던짐을 받았다.”(행적, 575)

돌이킬 수 있는 최후의 기회

3. 왕(시드기야)이 이제라도 그 나라에 내리는 형벌을 돌이키고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은 무엇이었는가?

시드기야 왕이 보내어 선지자 예레미야를 여호와의 집 제 삼문으로 데려오게 하고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내가 네게 한 일을 물으리니 일호도 내게 숨기지 말라 예레미야가 시드기야에게 이르되 … 가령 내가 왕을 권한다 할지라도 왕이 듣지 아니하시리이다”(렘 38:14, 15)


이제라도 여호와의 경고를 즐겨 들음으로 그 성읍과 나라에 내리는 형벌을 경감시킬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네가 만일 바벨론 왕의 방백들에게 항복하면 네 생명이 살겠고 이 성이 불사름을 입지 아니하겠고 너와 네 가족이 살려니와 네가 만일 나가서 바벨론 왕의 방백들에게 항복하지 아니하면 이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붙이우리니 그들이 이 성을 불사를 것이며 너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기별이 왕에게 주어졌다.”(선지, 456-457)

4. 시드기야 왕은 왜 기별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는가? 그는 무엇을 더 두려워했는가?

시드기야 왕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한 유다인을 두려워하노라 염려컨대 갈대아인이 나를 그들의 손에 붙이면 그들이 나를 조롱할까 하노라”(렘 38:19)


왕은 대답하기를 ‘나는 갈대아인에게 항복한 유다인을 두려워하노라 염려컨대 갈대아인이 나를 그들의 손에 붙이면 그들이 나를 조롱할까 하노라’고 하였다. 그러나 선지자는 ‘그 무리가 왕을 그들에게 붙이지 아니하리라’고 약속하였다. 선지자는 애원하며 말하기를 ‘원하옵나니 내가 왕에게 고한 바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소서 그리하면 왕이 복을 받아 생명을 보존하시리이다’(렘 38:17-20)고 하였다.

이와 같이 마지막 시간까지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정당한 요구에 복종하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긍휼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밝히셨다. 만일 왕이 순종하기로 선택하였더라면 백성들의 생명을 건졌을 것이요 성읍은 대 재화를 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발걸음을 돌이키기에는 너무나 멀리 떠났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유대인을 두려워하였고, 조소를 두려워하였고 그의 생명을 잃을까 두려워하였다. 여러 해 동안 하나님을 배반해 온 시드기야는 이제와서 그의 백성에게 ‘나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들인다 나는 감히 이 모든 경고 앞에서 원수에 대하여 전쟁을 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비굴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선지, 457)

눈물의 호소마저 거절됨

5. 예레미야 선지자가 눈물을 흘리면서 간청했으나, 시드기야 왕은 어떤 길을 끝까지 고집했는가?

그러나 만일 항복하기를 거절하시면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말씀대로 되리이다”(렘 38:21)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일러도 그의 앞에서 겸비치 아니하였으며”(대하 36:12)


예레미야는 눈물을 흘리면서 시드기야에게 자신과 그 백성을 구하도록 간청하였다. 예레미야는 괴로운 마음으로 시드기야에게 그가 하나님의 권고를 듣지 않으면 생명을 건질 수 없고 그의 모든 소유는 바벨론 사람의 수중에 들어가리라고 확실히 말하였다. 그러나 왕은 계속해서 그릇된 길을 갔고 그의 발걸음을 돌이키려 하지 아니하였다. 그는 거짓 선지자들과 그가 참으로 멸시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요구를 그처럼 쉽게 들어주는 자기의 우유부단함을 조롱한 사람들의 권고를 따르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자신의 성년(成年)으로서의 고귀한 자유를 희생하고 굽실거리는 여론의 노예가 되었다. 그는 악을 행할 확고한 목적도 없었고 또한 의를 위하여 담대히 설 수 있는 결심도 없었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주어진 권고의 가치를 깨달았으나 순종할 도덕적 정력을 갖지 못하여 그 결과로 그는 점점 그릇된 방향으로 나아갔다.”(선지, 457-458)

6. 시드기야 왕의 품성의 특징은 무엇이며, 믿지 아니함으로 변화되지 못한 그 악은 어떤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는가?

갈대아 군사가 왕을 쫓아가서 여리고 평지에 미치매 왕의 모든 군사가 저를 떠나 흩어진지라”(왕하 25:5)

왕하 25:6, 7 참조


시드기야의 우유부단함은 일종의 죄악이었는데 그것 때문에 그는 무서운 죗값을 지불하였다.”(선지, 458)

“그러나 시드기야의 유약성은 일종의 죄악이었다. 그는 그것으로 인하여 두려운 형벌을 받았다. 원수들은 저항할 수 없는 산사태처럼 휩쓸고 내려와서 그 성을 초토화시켰다. 히브리 군대들은 혼란 중에 격퇴당했다. 그 국가는 정복당했다. 시드기야는 포로로 잡혔고, 그의 아들들은 그가 보는 데서 죽임을 당했다. 그 후에 그는 그의 비참한 백성들의 비명소리와 그들의 집들을 태우고 있었던 화염의 포효 소리를 들으면서 예루살렘에서 포로로 잡혀갔다. 그의 눈은 눈두덩에서 빼내짐을 당했으며, 그는 바벨론에 도착해서 비참하게 죽었다. 이것이 불신과 불경건한 권면을 따른 데 대한 형벌이었다.”(4증언, 184-185)

애굽으로 도망함에 대한 경고

7. 유다의 황폐된 땅에는 어떤 자들이 남겨진 바 되었으며, 그들은 바벨론 왕이 세운 총독이 살해당하자 어디로 도망하려고 했는가? 그들은 선지자의 권고를 받아들이는 대신에 어떤 완고한 정신을 나타내었는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하는 모든 군대 장관이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죽이고 미스바에서 잡아간 모든 남은 백성 곧 군사와 여인과 유아와 환관을 기브온에서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서 애굽으로 가려 하여 떠나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게롯김함에 머물렀으니”(렘 41:16-17)

렘 42:1-43:7 참조


바벨론 관원들에 의하여 옥에서 놓인 선지자는 갈대아 사람이 ‘포도원을 다스리는 자와 농부가’ 되라고 남겨둔 빈천한 국민과 운명을 같이 하기로 하였다. 바벨론 사람들은 그달랴를 세워 그들을 다스릴 총독을 삼았다. 그러나 몇 달이 되지 아니하여 새로 임명된 총독은 배신당하여 죽임을 당하였다. 가난한 백성들은 많은 시련을 겪은 후 마침내 애굽 땅에서 피난처를 찾자는 저희 지도자들의 권유를 받았다. 예레미야는 이 움직임에 대하여 음성을 높여 탄원하였다. ‘너희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영감의 권고를 듣지 아니하고 ‘유다의 남은 자 … 남자와 여자와 유아’가 모두 애굽으로 도망하였다. 그들이 ‘다바네스에 이르렀으니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이러하였더라’(렘 43:5-7).”(선지, 460)

8.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도망한 유다인들에 대하여 어떤 운명을 예언하셨으며, 그 운명을 피할 자들은 얼마나 될 것이었는가?

내가 예루살렘을 벌한 것같이 애굽 땅에 거하는 자들을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벌하리니 애굽 땅에 들어가서 거기 우거하는 유다의 남은 자 중에 피하거나 남아서 그 사모하여 돌아와서 거하려는 유다 땅에 돌아올 자가 없을 것이라 도피하는 자들 외에는 돌아올 자가 없으리라 하셨느니라”(렘 44:13-14)

“그런즉 칼을 피한 소수의 사람이 애굽 땅에서 나와 유다 땅으로 돌아오리니”(렘 44:28)

렘 44:1-30 참조


애굽으로 도망함으로 느부갓네살에게 반역을 일으킨 남은 무리에게 예레미야가 선언한 운명의 예언들에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즉시 되돌아올 사람들에게 용서해 주신다는 약속이 섞여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권고를 버리고 애굽인의 우상숭배의 유혹적인 감화 아래로 돌아간 사람들을 아끼시지 않으시는 반면에 충성과 진실을 나타낼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칼을 피한 소수의 사람이 애굽 땅에서 나와 유다 땅으로 돌아오리니 애굽 땅에 들어가서 거기 우거하는 유다의 모든 남은 자가 내 말이 성립되었는지 자기들의 말이 성립되었는지 알리라’(렘 44:28)고 말씀하셨다.”(선지, 460-461)

파멸과 사로잡힘을 통하여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됨

9. 하나님께서는 백성과 나라를 파멸하시는 중에서도 충성스러운 열매들을 성숙시키기 위하여 어떤 방법으로 역사하시는가?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저를 바라리라 하도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 3:21-26)


세상에 영적 빛이 되었어야 했을 사람들의 완고한 죄에 대한 선지자의 슬픔 곧 시온의 운명과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백성의 운명에 대한 그의 슬픔이 여호와의 권고를 버리고 인간의 지혜로 돌아가는 어리석음의 기념비로써 쓴 글 애가서(哀歌書)에 나타나 있다. 파멸이 이루어진 중에서도 예레미야는 여전히 ‘여호와의 자비 … 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며 그는 끊임없이 기도하기를 ‘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고 하였다(애 3:22, 40). 유다가 아직 열국 중에 나라를 유지하고 있을 때에 예레미야는 그의 하나님께 문의하기를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라고 하였고 그는 담대히 간청하기를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라고 하였다(렘 14:19, 21). 혼란 중에서 질서를 잡고, 세상 열국과 온 우주에 당신의 공의와 사랑의 특성을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에 대한 선지자의 절대적인 신앙은 그로 하여금 악에서 의로 돌이킬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확신을 가지고 간청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제 시온은 완전히 멸망 당하였고 하나님의 백성은 속박 중에 있었다.”(선지, 461)

“비록 택함을 받은 어떤 사람들이 느부갓네살처럼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주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뜻을 이루는 종으로 삼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역사에 자신을 바칠 당신의 백성 중에서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메시야와 그분의 나라의 성공을 위하여 그분의 영광을 담보로 잡힌다. …

빛과 지식을 가진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상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9증언, 138-139)

10. 하나님께서 소수의 충실한 백성들이 포로가 되게 하심으로 그들에게 고난과 시련을 허락하셨지만, 이것을 통하여 어떤 목적을 성취시키고자 하셨는가?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하였으며 성소의 돌이 각 거리 머리에 쏟아졌는고 시온의 아들들이 보배로와 정금에 비할러니 어찌 그리 토기장이의 만든 질항아리같이 여김이 되었는고”(애 4:1-2)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계시오며 주의 보좌는 세세에 미치나이다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잊으시오며 우리를 이같이 오래 버리시나이까 여호와여 우리를 주께로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겠사오니 우리의 날을 다시 새롭게 하사 옛적 같게 하옵소서”(애 5:19-21)


예루살렘이 첫 번째로 불에 소실되도록 왜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는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원수들에게 정복을 당하고 이방 나라로 끌리어 가도록 왜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는가?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선교사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 사이를 막는 분리의 장벽을 쌓았다. 하나님은 그의 진리의 지식이 세상에 전해지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을 흩으셨다. 그들이 만일 충성되고, 진실하며, 순종하면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본국으로 데려가실 것이었다(대총회 회보 1903. 4. 7).”(화잇주석, 왕하 25:9)


[상고할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들은 어느 누구도 고난과 시험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환난이 올 때에 참된 그리스도인은 불안해하거나 불신하거나 낙망하지 않는다. 비록 우리가 사건의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없고 그 일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분간할 수 없지만 우리의 담대함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그윽한 자비를 기억하고 우리의 염려를 그분에게 맡기는 동시에 인내로써 그분의 구원을 기다려야 한다.

투쟁을 통하여 영적 생애는 힘을 얻게 된다. 시련을 잘 견디게 되면 그것이 견실한 품성과 보배로운 영적 미덕을 계발시켜 줄 것이다. 믿음과 온유와 사랑의 완전한 열매는 흔히 풍파와 역경 속에서 가장 잘 성숙된다.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약 5:7).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도 길이 참아 그의 생애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이 결실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때때로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간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이 열매가 가장 잘 발육될 수 있는 환경에 처하게 하심으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상히 생각하며 낙심한다. 그러나 성장하고 결실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아무도 이러한 미덕을 계발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굳게 붙잡고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그 말씀에 굴복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될 것이다.”(실물, 6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