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가나안의 아브라함

by 청지기 posted Jun 16,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해지는 시간: 오후 7시 57분


제12과


가나안의 아브라함


[연구범위]

부조와 선지자, 132~144; 교회증언 6권, 341~342.


기억절 :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 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창 18:32)


서론 :  우리는 죄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어야 하나 죄인에 대해서는 동정과 사랑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 아브라함의 정신은 그리스도의 정신이었다.”(부조, 140)


분쟁의 위험

1. 가나안으로 돌아온 아브라함에게 또다시 어떤 위험이 찾아왔는가?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 …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창 13:2, 5-6)


아브라함은 ‘육축과 은금이 풍부한’(창 13:1-9) 가운데 가나안으로 돌아왔다. 롯은 아직도 그와 함께 있었고 그들은 다시 벧엘로 가서 전에 세웠던 제단 곁에 그들의 장막을 쳤다. 그들은 재산이 증가됨에 따라 어려움이 증가되었음을 곧 발견하였다. 고난과 시련 가운데서는 그들이 서로 화합하고 같이 살았으나 번영 가운데서는 그들 사이에 분쟁의 위험이 있었다. 목초가 두 사람의 가축 떼와 양떼에게 충분하지 못하였으므로, 두 사람의 목자들 사이에 자주 분쟁이 일어났으며 그들의 주인들에게 와서 해결책을 구했다. 그들이 헤어져야 함이 분명하였다.”(부조, 132)

2. 아브라함은 롯과의 화목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떤 방법을 택했는가? 예수님께서친히 보여주신 가르침은 무엇인가?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 13:8-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롬 12:10)


아브라함은 나이로나, 친족간의 촌수로나, 재산으로나, 지위에서 롯보다 윗사람이었다. 그러나 화목을 유지하기 위한 계획을 그가 먼저 제안하였다. 비록 하나님께서 친히 온 땅을 그에게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공손히 이 권리를 양보하였다.”(부조, 132)

“아브라함은 롯에게 어디로 가야 할 지 선택권을 주었다. 그래서 이후에 롯이, 갈라져 나올 때 아브라함이 견해에서 이익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시험을 받지 않도록 했다. 롯은 소돔 근처에 아름다운 지역을 택했다. 그가 택한 땅은 모든 자연의 혜택을 지니고 있었다.”(1설교, 219)

“예수께서는 그들[제사장들과 랍비들]이 당신의 제자들과 요한의 제자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키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을 아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일찍이 세상에 파송된 선지자 중에서 가장 위대한 선지자 하나를 휩쓸어 갈 폭풍이 모여들고 있다는 것을 아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오해나 불화를 일으키는 모든 사태를 피하기를 원하셨으므로 조용히 당신의 사업을 중지하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 우리도 진리에 충성해야 하는 한편 불화와 오해로 이끌 수 있는 모든 것을 피하려고 힘써야 한다. 그 까닭은 언제든지 이러한 일이 일어나면 영혼들을 잃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분열을 일으킬 듯한 사태가 발생할 때는 언제고 우리는 예수님과 침례 요한의 모본을 따라야 한다.”(소망, 181)

이기적 선택의 결과

3. 롯은 아브라함의 양보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기적인 선택을 하였는가?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들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창 13:10-12)


롯이 번영한 것은 아브라함과 동거하였던 덕택이었으나 그는 자신의 은인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나타내지 않았다. 그가 아브라함에게 선택권을 양보하는 것이 예절이었으나 예절은커녕 그는 이기적으로 선택권의 이점을 다 차지하려고 노력하였다.”(부조, 133)

4. 롯은 이기적인 선택으로 말미암아 어떤 결과를 맞게 될 것인가?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창 13:13)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창 19:28)


세속적 이익에 대한 환상에 현혹되어 롯은 그 곳에서 당하게 될 도덕적·영적 불행을 간과하였다. 그 평야의 거민들은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것에 대하여 알지 못하였거나, 알았다 할지라도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그는 ‘요단 온 들을 택하고’,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창 13:10-13)다. 그는 이기적 선택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그렇게도 예측하지 못하였던가!”(부조, 133)

“그러나 그는 소돔 거민들의 도덕과 종교를 살피는데 실패했다. 우리는 그의 이후의 역사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가 더럽혀진 도시로부터 피해야 할 때가 왔을 때, 그것은 모든 종류와 유형의 죄악으로 어두웠다. 그는 자기 딸과 사위들에게 경고하라는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교훈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처럼 그의 경고를 귀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을 조롱했으며, 소돔의 멸망 중에 사라져 버렸다.”(1설교, 219)

“그[롯]는 마침내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슥 3:2)처럼 구원은 받았으나 재산은 없어지고 아내와 자녀들을 잃고 야수처럼 동굴에 살았으며, 노령에는 불명예스러운 일을 행하여 의로운 족속이 아니라 그들의 죄악의 잔이 차서 멸망할 운명에 처하게 될 때까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그분의 백성과 전쟁을 한, 두 무리의 우상숭배하는 족속을 세상에 남겨 놓았다. 현명하지 못한 발걸음 하나를 따른 결과는 얼마나 무서웠는가!”(부조, 168)

롯에 대한 아브라함의 사랑

5. 롯에 대한 아브라함의 사랑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당시 롯은 어떤 위경에 처하여 있었는가?

아브람이 그 조카의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삼백십팔 인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그 가신을 나누어 밤을 타서 그들을 쳐서 파하고 다메섹 좌편 호바까지 쫓아가서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 조카 롯과 그 재물과 또 부녀와 인민을 다 찾아왔더라”(창 14:14-16) 


가나안의 다섯 왕들은 그들의 군대를 연합하여 침입한 적과 싯딤 골짜기에서 교전하였으나 완전히 패배하였다. 군대의 대부분이 괴멸되었고 탈출해 나온 자들은 안전을 위하여 산으로 도망하였다. 승리자들은 평야의 도시들을 약탈하고 풍부한 전리품과 많은 포로들을 노획하여 갔는데, 그 중에는 롯과 그 가족도 있었다.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던 아브라함은 도망병 한 사람에게서 전쟁 이야기와 그의 조카에게 닥친 재난에 대하여 들었다. 그는 롯의 배은망덕에 대한 불쾌한 기억을 품고 있지 않았다. 롯에 대한 그의 사랑이 불일 듯 일어났으며 그는 그를 구원하기로 결심하였다.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권고를 구하는 가운데 아브라함은 전쟁을 위하여 준비하였다.”(부조, 135)

6.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승리하였으나,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다. 어떤 사실이 이것을 증명해주는가?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오직 소년들의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취할 것이니라”(창 14:23-24)


아브라함의 종교는 의를 지지하고 피압박인을 방어하는 데 그를 용감한 사람으로 만들었음이 드러났다. 그의 영웅적 행위는 부근의 부족들간에 널리 감화를 끼쳤다. 돌아오는 길에 소돔 왕은 그의 수행원들과 함께 승리자를 환영하려고 나왔다. 그는 아브라함에게 전리품은 취하고, 포로들은 놓아 주기를 간청하였다. 전쟁의 관습대로 전리품은 승리자의 것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본래 이득을 목적으로 이 원정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행한 자로부터 이익을 취하고자 하지 않았으며, 다만 그의 동맹자들이 받아야 할 몫을 주도록 요구할 뿐이었다. 이와 같은 시험을 당했을 때 아브라함처럼 자기 자신을 고상하게 나타낼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처럼 막대한 전리품을 얻을 유혹을 물리칠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의 모본은 이기주의적이고 돈을 탐하는 정신에 대한 견책이다. 아브라함은 정의와 인간성의 요구를 중시하였다. 그의 행동은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레 19:18)는 영감으로 기록된 금언을 실증한다. … 그는 자신이 이익을 얻기 위하여 전쟁에 가담하였다고 생각하게 하거나 그의 번영이 그들의 선물이나 호의에 의한 것이라고 오해할 기회를 주고자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복주시기를 약속하셨다. 그분께 영광이 돌려져야 하였다.”(부조, 135-136)

언약의 반복

7.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 자손들에게 줄 땅(가나안)에 관한 언약을 몇 차례나 반복하여 말씀하셨는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창 12:7)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 13:15)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창 15:7, 1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8)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창 24:7)


당대의 사람들에게 특별히 소중했던 자손의 번영과 국가적 위대함에 대한 약속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이것에 더하여 그 믿음의 후사에게는 다른 모든 것보다 귀중한 보증, 곧 그의 혈통에서 세상의 구세주가 나시리라는 다음과 같은 보증이 주어졌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3).”(부조, 125)

“롯과 작별한 후에 아브라함은 온 땅을 주신다는 약속을 주께로부터 다시 받았다.”(부조, 133)

“사람들과 더불어 세우신 하나님의 이같은 언약의 보증으로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연기 나는 풀무와 타는 횃불이 쪼개진 희생 제물 사이로 지나가며 그것을 모두 태웠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의 음성이 아브라함에게 들리며 ‘애굽 강에서부터 큰 강 유브라데까지’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들에게 주실 것을 확증하셨다.”(부조, 137)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유한 지 거의 25년 되었을 때에 주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16 참고)고 말씀하셨다. 부조는 두려워 엎드렸으며 기별은 계속되었다.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부조, 137)

“아브라함이 거의 백세가 되었을 때, 장래의 후사는 사라의 아들이어야 한다는 보증과 함께 아들에 대한 약속이 그에게 반복되었다.”(부조, 146)

8. 아브라함은 이 언약을 받아들인다는 어떤 의식을 행하였으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께서 할례를 받도록 하신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창 17:9-11)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 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롬 4:11)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유한 지 거의 25년 되었을 때에 주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16 참고)고 말씀하셨다. 부조는 두려워 엎드렸으며 기별은 계속되었다.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 이 때에 아브라함에게 할례 의식이 주어졌는데, 그것은 ‘무할례 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롬 4:11)이었다.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봉사하는 일에 헌신하므로 우상 숭배자들과는 분리되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당신의 특별한 보배로 받으신다는 표로써 그것을 준수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 의식을 행함으로 그들은 그들 편에서 아브라함과 세우신 언약의 조건들을 성취할 것을 서약하였다. 그들은 이방인과 통혼하지 말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거룩한 율법에 대한 존경심을 잃어버리게 되고 다른 나라들의 죄된 행습에 가담할 유혹을 받게 되며 우상숭배에 빠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부조, 138)

아브라함의 중보

9.  아브라함은 우리들에게 어떤 모본을 보여주는가? 그는 나그네를 환대하는 중 부지중에 누구를 대접하게 되었는가? 이 일을 통해서 어떤 소식을 접하게 되었는가?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2)

창 18:1~2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큰 명예를 주셨다. 하늘의 천사들은 친구가 친구에게 하듯이 그와 동행하며 담화하였다. 소돔에 심판이 내리려고 할 때에 그 사실은 그에게 숨겨지지 않았고, 그는 죄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중재하는 자가 되었다. 그와 천사들과의 회견은 또한 환대에 대한 아름다운 모본을 제시한다.”(부조, 138)

“창세기의 기록에 보면 이 부조가 여름 태양이 뜨거운 정오에 마므레 상수리나무 그늘 아래 쳐 놓은 자기 천막 문에서 쉬는 것을 볼 수 있다. 세 사람의 나그네가 가까이 지나간다. 그들은 대접을 원하지도 않았고 도와 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이 기분을 상쾌하게 하지 않은 상태로 계속 길을 가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나이가 많이 든 사람이었으며, 위엄과 재물을 갖춘 사람이었고, 높이 존경을 받고 있었으며, 명령하는데 익숙해 있었다. 그런데 그가 이들을 보자 그는 ‘달려나가 영접하여 몸을 땅에’ 구부렸다. 그중 인도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창 18:2, 3)소서. 친히 그가 물을 떠와서 그들이 발의 먼지를 씻을 수 있게 하였다. 그가 그들의 음식을 택하였다. 그들이 시원한 그늘 밑에서 쉬고 있는 동안 그의 아내 사라는 그들을 대접하기 위하여 준비하였고 아브라함은 그들이 그의 대접을 받는 동안 존경 어린 태도로 서 있었다. 길가는 자들, 다시는 그리로 지나가지 않을지도 모르는 나그네들에게 이런 친절을 베풀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접이 끝난 후 그 손님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는 하늘 천사들을 대접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광스러운 사령관, 그의 창조주, 구주, 왕을 대접하였던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회담 내용이 알려졌고, 그는 ‘하나님의 친구’라는 소리를 들었다.”(6증언, 341-342)

“아브라함은 그의 손님들에게서 피곤한 세 행인들만 보았으나 그 가운데는 그가 경배해야 할 죄 없는 한 분이 계셨다는 사실을 거의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제 하늘에서 온 사자들의 참 성격이 드러났다. 그들은 비록 진노의 사자들로서 가는 도중이었으나,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에게는 먼저 축복을 말하였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죄악을 저지하고 죄과를 벌하기에 엄격하지만, 보복을 기뻐하지 아니하신다. 멸망시키는 일은 사랑이 무한하신 그분께는 ‘생소한 일’이다.”(부조, 138-139)

10. 멸망하는 자들에 대한 아브라함의 기도에서 누구의 정신이 나타났는가? 이것을 통하여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어떤 관계임이 증명되었는가?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 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 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창 18:32)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눅 23:34)

“이에 경에 이른 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약 2:23)

창 18:24-32.


멸망하는 영혼에 대한 사랑이 아브라함의 기도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는 저 부패한 도시의 죄는 미워하였으나 죄인들은 구원 얻게 되기를 원하였다. 소돔을 위한 그의 깊은 관심은 회개하지 않은 자들을 위하여 우리가 느껴야 할 걱정을 나타낸다. 우리는 죄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어야 하나 죄인에 대해서는 동정과 사랑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 …

아브라함의 정신은 그리스도의 정신이었다. 하나님의 아들 자신이 죄인을 위한 크신 중재자이시다. 죄인의 구원을 위하여 값을 치르신 그분은 인간의 영혼의 가치를 아신다. 티 없이 순결한 상태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악에 대한 적개심과 함께 그리스도께서는 무한한 선만이 품을 수 있는 사랑을 죄인에게 나타내셨다. 온 세상의 죄의 무거운 짐을 몸소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고통 중에서도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을 능욕하는 자들과 살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다.”(부조, 140)

“아브라함에 대해서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약 2:33; 롬 4:11)라고 기록되어 있다. … 여러 세기 동안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진리의 수호자요 보존자들이었던 백성들, 곧 그들을 통하여 세상의 온 민족들이 약속된 메시야의 강림으로 축복을 받게 될 백성들의 조상이 되도록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은 것은 큰 영광이었다. … 아브라함 편에서 이기적 목적으로 진리를 배반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는 율법을 지킬 것이요 공정하고 의롭게 처신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이 주를 경외할 뿐 아니라 자신의 가정에서 종교를 신장할 것이었다. 그는 자기 가족을 의로써 가르칠 것이었다. 하나님의 율법은 그의 가족 사이의 규범이 될 것이었다.”(부조, 140-141)


[상고할 말씀]

랍비들은 하나님께 범죄한 자들이 멸망될 때에 하늘에는 기쁨이 있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나님에게 있어서 멸망시키는 일은 ‘비상’ (사 28:21)한 일이며 온 하늘이 기뻐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간 속에 당신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일이라고 가르치셨다.

죄 중에서 방황하던 자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려고 할 때에는 비평과 의심을 받는 일이 흔히 있다. 저 사람이 과연 진정으로 회개한 것일까라고 의심하는 자들과 또는 ‘저 사람은 언제나 믿음이 견고하지 못하다. 그가 끝끝내 믿음을 지킬는지가 의심스럽다’고 속삭이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들을 참소하는 사단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악인들은 그들의 비평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을 낙담시키고 소망에서 끊어지게 하며, 하나님께로부터 더욱더 멀리 떠나가게 한다. 회개하는 죄인들로 하여금 잃어버렸던 영혼이 돌아올 때에는 하늘에 큰 기쁨이 있음을 생각하게 하라.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쉬게 하고 어떤 경우에든지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의 조롱과 의심으로 낙심하지 않게 하라.”(실물, 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