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셋과 에녹

by 청지기 posted May 0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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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7시 30분


제6과


셋과 에녹


[연구범위]

와 선지자, 80~89; 살아남는 이들, 57~61.


기억절 :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4)


서론 :  그리스도와 동역자가 될 수 있는 자만이, ‘주여 나의 모든 소유와 나 전체까지도 당신의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정을 받을 것이다.”(화잇주석, 마 19:16-22)

아담의 형상으로 태어난 셋

1.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셋째 아들을 주셨는데, 그 이름은 무엇이며 그 이름의 뜻은 무엇인가?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창 4:25)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창 5:3)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또 다른 아들을 주셨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상속자요, 영적 상속권의 사자(嗣子)가 될 것이었다. 이 아들에게 주어진 이름인 셋은 ‘약속된’ 혹은 ‘보상’을 의미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창 4:25)기 때문이라고 어머니는 말했다. 셋은 가인이나 아벨보다 더욱 고상하였으며 아담의 다른 아들들보다 그를 더 많이 닮았다. 그는 훌륭한 인물이었으며, 아벨의 발자취를 따랐다. 그러나 그가 가인보다 더 많은 미덕을 타고난 것은 아니었다. 아담의 창조에 관하여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다고 하였으나 타락한 후에 인간은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창 5:1, 3)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죄 없이 창조함을 입었으나 셋은 가인처럼 그 부모의 타락한 성질을 물려받았다.”(부조, 80)

2. 인간이 타락한 후에 태어난 셋은 어떤 인물이었는가?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6)


셋은 존귀한 인물이었으며 의를 행하는 일에 아벨의 자리를 채울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도 죄된 가인과 같이 아담의 아들이었으며, 가인보다 선천적으로 더 선한 성품을 아담에게서 유전으로 받은 것은 아니었다. 셋은 죄 가운데 출생하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의 부친 아담의 신실한 교훈을 따름으로써, 그는 그분의 뜻을 행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다. 셋은 패역한 가인의 후손과의 교제를 끊고 아벨이 살아 있었다면 행했을 일 즉, 죄인들의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존경하고 순종하게 하려고 노력하였다.”(살아, 57)

“도덕적 성품에 있어서 셋은 가인이나 아벨보다 더욱 고상하였고 다른 어떤 아들들보다 더욱 아담을 닮았었다. 셋의 후손들은 가인의 악한 자손들에게서 떠나갔다. 그들은 불경한 가인의 자손들이 하나님과 그의 거룩한 계명을 경외하지 않았을 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3영적 60).”(화잇주석, 창 4:25)

일곱째 계명의 무너짐

3.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부류와 하나님께 무관심하고 대적하는 두 부류로 나뉘게 되었다. 특별히 누구에 의해서 일곱째 계명이 범해지게 되었는가?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창 6:1-2)


하나님의 저주를 받고 가인은 그 아버지의 가족을 떠나갔다. 그는 먼저 땅을 경작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고, 다음에는 한 도시를 건설하여 그의 장자의 이름을 따서 도성의 이름을 붙였다. 그는 에덴의 회복에 대한 약속도 버리고 죄로 저주받은 세상에서 자기의 소유와 즐거움을 얻으려고 여호와 앞을 떠났다. 그리하여 그는 이 세상 신을 숭배하는 많은 무리의 조상이 되었다. 그의 후손들은 단순히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발전에 있어서는 탁월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였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목적에도 반대하였다. 가인이 이끌어 들인 살인죄에 그의 5대손 라멕은 일부다처의 죄를 더하였으며, …”(부조, 81)

4. 일곱째 계명이 무너짐으로 세상은 어떤 형편에 놓였는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창 6:2-3)


셋의 후손은 하나님의 아들들로 불리웠고 가인의 후손은 사람의 아들들로 불리웠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아들들과 섞여 살았으므로 부패하게 되고, 또 그들과 통혼함으로써 저희 아내들의 영향을 받아 그들의 독특하고 거룩한 품성을 상실하고 가인의 자손들의 우상숭배에 그들과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짓밟았다.”(살아, 62)

“셋 자손들이 가인의 후손의 딸들의 아름다움에 혹하여 그들과 통혼함으로 여호와를 불쾌하게 하였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그들 앞에 끊임없이 이르러오는 유혹으로 말미암아 현혹되어 죄에 빠졌다. 그들은 독특하고 거룩한 품성을 잃어버렸다. 타락한 자들과 섞임으로 그들은 정신과 행동에 있어서 그들과 같이 되었다. 일곱째 계명의 제지를 무시하고 그들은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았다. 셋 자손들은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유 11) 세속적 번영과 향락에 몰두하고 주의 계명을 등한히 하였다.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그들은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셨다(롬 1:21, 28). 죄는 치명적인 문둥병처럼 세상에 널리 퍼졌다.”(부조, 81-82)

아담의 생애에서 배울 교훈

5. 인류의 시조인 아담의 일생은 어떤 생애였으며 어떤 비난들을 피할 수 없었는가?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삼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창 5:3-5)


거의 1천년 동안 아담은 사람들 가운데 살면서 죄의 결과들을 목격하였다. 그는 악의 조류를 막으려고 충실히 노력하였다. 그는 그의 후손들을 주의 길로 교육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시하신 것을 주의 깊게 간직하고 후세대에게 그것을 반복하였다. 그는 자자손손 9대에 이르기까지, 낙원에 있었던 사람의 거룩하고 행복스러운 지위에 대하여 묘사하며,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하여 그분의 율법에 엄격히 복종해야 할 필요를 자기에게 가르치신 것과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비스러운 준비를 마련하신 것을 그들에게 설명하면서 자기의 타락의 역사를 반복하여 말하였다. 그러나 그의 말에 유의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자주 그는 그의 후손들에게 이와 같은 재난을 초래한 죄를 범한 데 대하여 통렬한 비난을 받았다.”(부조, 82)

“아담은 떨어지는 나뭇잎과 시드는 꽃에서 쇠퇴하여 가는 천연계의 첫 징조를 목격하였을 때, 사람들이 죽은 자를 위하여 슬퍼하는 것 이상으로 심히 슬퍼하였다. 비교적 연약하고 섬세한 꽃들이 시드는 것을 보고는 그다지 크게 슬퍼하지는 않았으나 사람의 특별한 유익을 위하여 창조하셨던 높고 풍치 있는 튼튼한 나무가 잎이 떨어지고 쇠락하여 갈 때 그에게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특별한 유익을 위하여 창조하신 이 아름다운 자연이 전체적으로 파멸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살아, 55)

6. 아담은 자신의 잘못을 만회하고자 어떻게 애썼는가? 그는 무엇을 뼈저리게 느끼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벧전 2:19)


아담의 생애는 비탄과 겸비와 통회의 일생이었다. 에덴을 떠났을 때 그는 죽음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으로 공포에 떨었다. 그의 장자 가인이 아우를 죽였을 때 그는 처음으로 인간 가족 가운데서 죽음의 실재(實在)를 알게 되었다. 자기의 죄에 대한 심한 가책과 아벨이 죽고 가인이 버림을 받은 이중 슬픔으로, 아담은 고뇌로 기가 꺾였다. 그는 마침내 홍수로 인한 세상의 멸망을 초래케 할, 전 세계에 편만한 부패를 목격하였다. 창조주께서 그에게 내리신 사형 선고는 처음에 무섭게 보였으나 약 1천년 동안 죄악의 결과를 목도한 후에 그는 고통과 슬픔의 생애를 끝나게 하심은 하나님의 자비라는 것을 느꼈다.”(부조, 82)

“천사들은 아담이 타락한 후에도 그와 교통을 유지했으며, 그에게 구원의 계획에 대해서와 인류는 구속받을 수 없는 지경에 빠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비록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무서운 분리가 일어났을지라도 그분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희생을 통해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일찍이 대책이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저희의 유일한 소망은 겸손한 회개의 생애와 이미 준비된 희생 제물을 믿는데 있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주로 믿고 받아들이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의 공로를 통해 다시 그분의 은총을 받게 될 것이다.”(살아, 56)

현대보다 나은 광명의 시대

7. 오늘날 세상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인류역사에서는 과거의 사람들이 미개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어떠한가?

늙은 자에게는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욥 12: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전 7:10)


홍수 이전의 세계가 사악하기는 하였으나 그 시대는 많은 사람들이 흔히 상상하듯이 무지 야만의 시대는 아니었다. 그 백성들에게는 도덕적·지적으로 높은 표준에 도달할 수 있는 기회가 허락되었다. 그들은 비상한 체력과 지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종교적·과학적 지식 모두를 얻는 데 있어서 그들의 유리함은 비할 데 없었다. 그들이 장수하였으므로 지적 성숙이 늦었으리라고 상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들의 지력은 일찍 발달되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뜻에 일치하게 산 사람들은 일생 동안 지식과 지혜를 끊임없이 증가시켰다. 우리 시대의 저명한 학자들과 홍수 전에 살았던 같은 나이의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그들은 체력뿐만 아니라 지력에 있어서도 크게 열등한 것이 나타날 것이다. 수명이 단축되고 체력이 감소됨에 따라 인간의 지적 능력도 감소되었다.”(부조, 82-83)

“오늘날의 세상이 알고 있는 것보다 휠씬 더 위대한 기술과 발명품들이 홍수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홍수로 쓸려버린 공예품들의 숫자도 현 세계가 자랑하는 공예품들의 숫자보다도 휠씬 더 많았다(편지 65, 1898).

… 사람들이 만약 홍수 때문에 잃어버린 기술이 얼마나 많은가를 안다면 소위 원시 시대에 관해서 그렇게 유창하게 말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그 당시 그분의 사람들을 통해서 옛날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볼 수가 있다면 홍수 전 시대의 기술은 하잘 것 없는 것이라는 말을 자신있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것보다 휠씬 더 많은 것들을 홍수로 잃어 버렸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내려다보실 때 자신이 사람들에게 주신 지혜는 왜곡되고, 사람의 마음의 상상은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다. 그분은 이 사람들에게 지식과 가치있는 아이디어를 주셔서 그분의 계획을 성취하려 하셨지만 지혜와 기술과 판단력을 받은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이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홍수의 물로 이 장수족들을 땅에서 도말해 버리셨고, 그들과 함께 항상 악한 목적에만 사용되었던 지식도 쓸어버리신 것이다. 땅에 사람들이 다시 살게 되었을 때 주께서는 사람들에게 그분의 지혜를 위탁하시는 데에 보다 신중히 하셨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크신 계획을 수행하는 데에 필요한 재능만을 주셨다(편지 24, 1899).”(화잇주석, 창 6:4)

8. 안타깝게도 이것을 증명해줄 자료가 없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선인들이 현대인들보다 더 지혜로울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토의해보라.

므두셀라는 일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창 5:25-27)


아담은 창조주께로부터 창조의 역사(歷史)를 배웠고, 직접 9세기 동안에 일어난 사건들을 목격하였으며, 후손들에게 그의 지식을 나누어 주었다. 홍수 전의 사람들에게는 책이나 쓰인 기록이 없었다. 그러나 탁월한 육체적·지적 능력의 소유자들인 그들은 뛰어난 기억력을 갖고 있었으므로, 그들은 전달된 것을 이해하고 보전할 수 있었으며, 그것을 손상됨 없이 차례로 그들의 후손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백 년 동안 7대의 사람들이 동시대에 살며 서로 의논할 기회를 가지고 모든 사람들의 지식과 경험으로 각자 유익을 얻었다.”(부조, 83)

에녹의 모본

9.  오늘날 이 마지막 시대에 에녹이 거론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에녹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였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암 3:3)면 동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거룩한 동행은 3백 년간 계속되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예수의 재림이 임박함을 안다면, 훨씬 더 열렬하고 헌신적이 되지 않을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에녹의 믿음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강해지고 그의 사랑은 더 열렬하게 되었다. 

에녹은 확고 부동하고 고도로 세련된 마음의 소유자였으며 지식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께 특별한 계시를 받는 영광을 얻었으나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완전하심을 항상 느끼면서 하나님과 끊임없이 교제함으로 가장 겸손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하나님과의 연결이 긴밀하게 되면 될수록 자신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더욱더 깊이 느꼈다.”(부조, 85)

“주의 영광을 위하여, 또한 품성의 아름다움을 닦기 위하여 대망(大望)을 품으라. 그대가 품성을 닦는 모든 면에 있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에녹이 비록 부패된 시대에 살고 있었으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것처럼 그대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에녹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실물, 332)

10. 죄악이 넘치던 홍수전 세계에서 에녹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생애를 보여주었다. 임박한 재림을 기다리는 백성들인 우리들에게 에녹은 어떤 모본을 보여 주었는가?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5-6)


죄악으로 말미암아 멸망 받을 운명에 처한 세상 가운데서 에녹은 하나님과 매우 밀접한 교제의 생애를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죽음의 권세 아래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셨다. 이 선지자의 경건한 품성은 그리스도께서 재강림하실 때에 ‘땅에서 구속함을 얻을’(계 14:3) 자들이 달성해야 할 거룩한 상태를 대표한다.”(부조, 88)

“홍수 전 세계에서처럼 그 때에도 죄악이 넘칠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부패한 마음의 충동과 기만적인 철학의 가르침을 좇아 하나님의 권위에 대항하여 반역할 것이다. 그러나 에녹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음의 순결과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기를 구할 것이며 마침내 그리스도의 형상을 반사할 것이다. 에녹처럼 그들은 주의 재림과 범법에 임할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경고할 것이다. 그들은 거룩한 담화와 모범으로 경건치 않은 자들의 죄를 견책할 것이다. 물로 세상이 멸망당하기 전에 에녹이 하늘로 승천한 것처럼, 산 의인들도 불로 세상이 멸망당하기 전에 하늘로 승천할 것이다.”(부조, 88-89)

“의기 소침해 있던 진실한 사람들은 에녹의 이 경험을 통하여 비록 저희가 창조주 하나님을 공공연히 대담하게 반역하는 범죄자들 가운데서 살지라도 주께 순종하고 약속된 구속주를 믿으면 진실한 에녹처럼 의를 행할 수 있고 하나님께 가납되어 마침내 주님의 거룩한 보좌에까지 높임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살아, 60)

[상고할 말씀]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인간의 협력이 없이 인간을 위하여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자기를 이기는 위대한 일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는 견해를 나타내지 말 것이다. 또한 그대들이 인간적인 최선을 다한 이후에 예수님께서 그대들을 도우실 것이라고 말하지도 말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말씀하셨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은 하나님과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성령께서 인간의 심령에 역사하시지 않는 한, 우리들은 매 발자욱마다 걸려 넘어질 것이다.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으며 무가치한 것이다. 다만 그리스도와의 협력만이 승리를 의미한다. 우리들이 신령한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구세주를 향하여 단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주님께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계 21:6)고 말씀하셨다.”(1기별, 381)

“세속에서 떠나 기도와 하나님으로 더불어 영적으로 교제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바쳤던 에녹은 말세에 세상과 분리되어 살 하나님의 충성된 백성을 대표하는 것이다. 불의가 땅 위에 가공할 만큼 편만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부패한 마음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상상을 따르며 기만적인 철학을 실행에 옮기고 높으신 하늘의 권위에 반기를 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주위의 불의한 행습을 떠날 것이며 그분의 거룩한 형상이 그들 속에 반영될 때까지 마음의 순결을 유지하고 생각의 순결을 주님의 뜻에 순응하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그들은 에녹과 같이 승천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되어 갈 것이다. 그들은 세상 사람을 가르치며 경고하기 위해 힘쓰는 한편 불신자들의 정신이나 행습을 좇지 않고 거룩한 담화와 경건한 모본의 생애로 그들을 책망할 것이다. 홍수로 세상이 멸망당하기 직전에 에녹이 승천한 것은 불로 인해 세상이 멸망당하기 전에 땅에서 의인들을 하늘로 데려가실 것을 예표한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계명을 충실히 순종하기 때문에 그들을 미워하던 자들 앞에서 성도들은 영화롭게 될 것이다.”(살아, 60-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