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속죄일

by 청지기 posted Jan 1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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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지는 시간: 오후 5시 41분


제3과


(대)속죄일


[연구범위]

각 시대의 대쟁투, 479~491.


기억절 :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레 23:27)


서론 :  비록 온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각 개인의 사건을 조사하시기를 마치 세상에 그 한 사람밖에는 다른 사람이 없는 것처럼 세밀히 하실 것이다. 모든 사람이 조사를 받되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어야 한다.”(쟁투, 490)

나팔절 / (대)속죄일을 알림

1. 이스라엘의 절기는 시기적으로 봄과 가을로 구분되는데, 봄 절기의 핵심은 유월절이고 가을 절기의 핵심은 (대)속죄일이다. 그러므로 이 (대)속죄일이 열훌 앞으로 다가왔음을 어떤 절기가 알려주는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레 23:24-25)


때는 바야흐로 나팔절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다. 그 장면은 슬프고도 흥미있는 것이었다. …

그날의 처음 부분은 종교적 행사에 바쳐졌고 백성들은 나머지 시간을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함으로 헤아려 보고 당신께서 주신 하사물(下賜物)들을 기뻐하면서 보내었다. 여러 몫의 음식이 아무것도 준비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다. 율법의 말씀을 읽고 깨닫는 데 또한 큰 기쁨이 있었다.

다음날에도 율법을 읽고 설명하는 일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정한 때 곧 7월 10일에 대속죄일의 엄숙한 예식을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거행하였다.”(선지, 661-665)

2. 이 나팔절은 실체적으로 재림운동을 통하여 어떻게 성취되었는가?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계 14:7)


1833년에 밀러는 그가 속하고 있던 침례 교회로부터 설교를 할 수 있는 증명서를 받았다. 그 교파의 많은 목사들도 그의 사업을 인정하였으므로 그는 정식으로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쟁투, 332)

“밀러가 그리스도의 재림이 절박했다는 증거를 공중 앞에 알려 주기 시작한 2년 후에 구주께서 재림의 징조로 약속해 주신 맨 마지막 징조가 나타났다. 예수님께서는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리라’(마 24:29)고 말씀하셨다. 또한 요한은 하나님의 날을 알려주는 광경을 이상 중에 보았을 때 다음과 같이 그 사실을 기록하였다.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과 실이 떨어지는 것같이 땅에 떨어지’(계 6:13)더라. 이 예언은 1833년 11월 13일의 유성(流星)의 큰 소나기로 분명히 성취되었다.”(쟁투, 332-333)

(대)속죄일의 실체(1)

3. 대제사장은 1년에 한 번 어디에 들어가서 정결케 하는 의식을 행했는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장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무시로 들어오지 말아서 사망을 면하라 내가 구름 가운데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레 16:2)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히 9:3)


일 년에 한 번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성소를 정결케 하기 위하여 지성소에 들어갔다. 지성소에서 거행된 이 봉사로 연중 일체의 봉사가 완결되었다.”(부조, 355)

“예수는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존전에 나타나기 위하여 지금 지성소에 계신다. 거기에서 그분은 순간마다, 그의 백성을 그분 안에서 계속 완전한 자로 하나님께 내어 놓으신다. 그러나 그분이 하나님 앞에서 이런 식으로 우리를 대표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자비를 악용하고, 부주의하고, 무관심하고, 방종해도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는 죄를 섬기시는 분이 아니시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분 안에 거할 때만 그분 안에서 완전하고,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가납함을 받는다(사인즈 1892. 7. 4).”(화잇주석, 히 9:24)

4. 속죄소는 어떤 점에서 매우 특별한가? 그곳에서 어떤 특별한 계시가 주어졌는가?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 25:22)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씀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민 7:89)


이 법궤는 이스라엘의 영광이요 능력으로 생각되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의 표시가 밤낮으로 그 법궤 위에 머물러 있었다.”(살아, 183)

“성막과 성전에 다 같이 그분의 영광이 속죄소 위에 있는 거룩한 쉐키나 가운데 머물러 있었다. 그 분께서는 백성들을 위하여 당신의 사랑과 인내의 풍성함을 끊임없이 나타내셨다.”(선지, 18)

“그곳은 여호와께서 속죄소 위에 있는 영광의 구름으로 당신의 임재를 나타내시던 곳이었다. 그 곳은 하늘과 땅이 연결되어 그 위로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내리락하고,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을 이 세상에 열어 준 신비로운 사다리가 놓여 있던 곳이다(창 28:12; 요 1:51 참조).”(쟁투, 19)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씩 지성소에 들어가 엄숙하고 두려운 하나님의 임재 속에 법궤 앞에서 봉사할 때 그가 하나님의 뜻을 물으면 하나님께서는 음성으로 대답하셨다. 여호와께서 음성으로 대답하시지 않을 때에는 빛과 영광이 법궤의 오른편에 있는 그룹 위에 비치어 시인하는 표를 주셨다. 만일 저희의 요구가 거절을 당할 때에는 왼편 그룹 위에 구름이 머물러 있었다.”(살아, 184)

(대)속죄일의 실체(2)

5.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지성소에서 봉사하는 동안 백성들은 무엇을 해야 했는가?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칠월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리하라”(레 16:29)

“이는 너희에게 큰 안식일인즉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할지니 영원히 지킬 규례라”(레 16:31)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이 날에 누구든지 아무 일이나 하는 자는 내가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너희는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레 23:27-31)


그 모든 의식은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주님께서 죄를 가증히 여기심을 깊이 깨닫게 해줄 뿐 아니라 또한 죄와 접촉하면 반드시 부정하게 된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이 속죄의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에 각 사람은 통회하고 마음을 괴롭게 하여야 하였다. 그날에 모든 사람은 일을 전폐하고,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엄숙하게 하나님 앞에 자신을 겸비하게 하고, 기도하고, 금식하고, 마음을 깊이 살피는 가운데 지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쟁투, 419-420)

6. 2,300주야와 성소정결, (대)속죄일,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심에 관한 예언을 계 11:19절의 말씀에 비추어 생각해보라.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계 11:19)


성경에 예언된 것처럼 지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봉사는 2천3백 주야의 끝인 1844년에 시작되었다. 계시자 요한이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계 11:19)니라고 한 말씀은 곧 이 때에 적용되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성소의 둘째 칸 즉 지성소에 있다.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하여 중보하려고 지성소에 들어가셨을 때에 성전 안은 열려져 있었으며 하나님의 법궤가 보였다. 믿음의 눈으로 구주의 중보 사업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엄과 능력을 나타내 보이셨다. 그의 영광의 빛이 성전에 가득 찰 때 지극히 거룩한 곳으로부터 찬란한 빛이 세상에서 당신을 기다리는 백성들에게 흘러 비쳤다”(살아, 379)

그리스도의 피

7. 지상 성소의 봉사에서 대제사장은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 무엇을 가지고 들어갔는가?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 일 차씩 들어가되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이 피는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것이라”(히 9:7)


그는 대속죄일에 온 이스라엘의 중보자로서 지성소에 피 없이는 들어가지 않았다.”(부조, 426)

“모형과 실체에 있어서, 둘 다 정결하게 하는 일은 피로써 하는데, 먼저 것은 짐승의 피로 할 것이요 나중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해야 한다.”(쟁투, 417-418)

8. (대)속죄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부정으로부터 어떻게 정결함을 입을 수 있었는가? 그 의식들은 무엇을 상징했는가?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히 9:13)

“또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장 안에 들어가서 그 수송아지 피로 행함 같이 그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곧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 범한 모든 죄를 인하여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또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 같이 할 것이요”(레 16:15-16)


백성들은 이 연례적 봉사로 속죄에 관한 중요한 진리를 배웠다. 일년 동안 드려지는 속죄제를 통해 죄인을 대신하여 대치물이 가납되어졌지만 그 희생 제물의 피가 죄를 완전히 속죄하지 못했다. 그것은 다만 죄가 성소로 옮겨지는 방편을 제공한 것뿐이었다. 피를 드리는 제사로 죄인은 율법의 권위를 인정하고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는 동시에 세상 죄를 지고 가시기로 되어 있던 그분께 대한 믿음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그가 율법의 선고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니었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회중을 위한 한 제물을 취하여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율법이 기록된 돌비 위에 있는 속죄소에 뿌렸다. 이와 같이 하여 죄인의 생명을 요구하는 율법의 요구가 충족되었다.”(부조, 355-356)

“유대인들이 바쳤던 희생제물은 세상의 구속을 위해 흘려질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였다. 희생제도는 피 흘림이 없이는 죄가 용서될 수 없다는 대속죄일의 진리를 온 세상이 알도록 강조하고 있다.”(영문시조, 1893.8.28.)

조사심판

9.  (대)속죄일의 경험은 마치 자신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는 경험이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이것을 경험할 수 있는가?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 22:11-13)


오늘날 우리는 대속죄일에 살고 있다. 표상적 의식에서,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속죄의 봉사를 하는 동안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고 겸손한 태도로써 그들의 심령을 괴롭게 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었다. 그와 같이 자기 이름이 생명책에서 도말되기를 원치 아니하는 모든 사람은 그들의 은혜의 시기가 얼마 남지 아니한 오늘날 죄를 슬퍼하고 진정으로 회개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심령을 괴롭게 해야 한다. 그들은 심각하고 철저하게 마음을 살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허(浮虛)하고 경박한 정신은 반드시 버려져야 한다. 지배권을 장악하고자 일어나는 악한 경향들을 이기고자 하는 모든 사람 앞에는 반드시 격렬한 투쟁이 있다. 준비하는 일은 개인적으로 할 일이다. 우리는 단체적으로 구원을 얻지 않는다. 사람의 순결과 헌신이 다른 사람의 그런 특성의 결함을 보충해 줄 수 없다. 비록 온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각 개인의 사건을 조사하시기를 마치 세상에 그 한 사람밖에는 다른 사람이 없는 것처럼 세밀히 하실 것이다. 모든 사람이 조사를 받되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어야 한다.”(쟁투, 489-490)

10. 이 조사심판의 사업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가?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벧전 4:17)

“…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겔 9:6)


상징적 의식에는 죄를 회개하고 고백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온 사람들, 곧 그들의 죄가 속죄 제물의 피를 통하여 성소로 옮겨진 자들만이 대속죄일의 봉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대속죄와 조사 심판의 날에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의 사건만을 다루게 된다. 악인들의 심판은 완전히 구별되어 있으며 그것은 그 후에 집행된다.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벧전 4:17)할 것인가.”(쟁투, 480)

[상고할 말씀]

의인과 악인은 그들의 생활 상태 그대로 여전히 세상에 살면서 하늘 성소에서 철회할 수 없는 마지막 결정이 내린 것도 모르고 밭 갈고 집짓고 먹고 마시고 할 것이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간 후 하나님께서는 그를 배 안에 두고 경건치 못한 자들은 배 밖에 두신 채 문을 닫으셨다. 7일 동안 사람들은 그들의 운명이 결정된 것을 모르고 경솔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들은 또한 임박한 심판에 관한 경고를 조롱하였다. 구주께서는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9)고 말씀하셨다. 각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고 범죄한 인류에 대한 은혜의 초청이 철회되는 마지막 시간은 밤중에 도둑이 오는 것처럼 가만히 눈에 띄지 않게 올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막 13:35, 36)). 깨어 있기를 소홀히 하고 세상의 매력을 향하여 마음을 돌리는 자들의 상태는 참으로 위험하다. 사업가가 이득에 마음을 빼앗기고, 향락을 즐기는 자가 방종을 구하고, 유행을 따르는 자가 몸을 단장하기에 겨를이 없을 바로 그때, 온 세상의 심판관 되신 예수님께서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단 5:27) 라고 선고하실 것이다.”(쟁투, 4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