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공의와 자비의 무지개

by 청지기 posted Oct 0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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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5시 53분




제2과


공의와 자비의 무지개



[연구범위]

부조와 선지자, 106~107; 각 시대의 대쟁투, 635~636.


기억절 : …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계 4:3)


서론 :  사람이 그의 큰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할 때 구주께서는 그를 위하여 아버지께 간구하시며, 회개한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의 징표로써 구름 속에 있는 무지개와 보좌 주위를 두르고 있는 무지개와 자신의 머리 위에 둘린 무지개를 가리키신다.”(부조, 107) 


사랑의 속성

1. 하나님의 사랑이 가지고 있는 두 가지 속성은 무엇인가?

…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시 97:2)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잠 21:3)


하나님의 율법은 그분 자신만큼 신성하다. 이것은 그분의 뜻의 계시요, 그분의 품성의 사본이며, 하나님의 사랑과 지혜의 표현이다. …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극치인 사람에게 당신의 요구를 이해하며 그분의 율법의 공의와 자비, 그리고 그에 대한 율법의 신성한 요구를 이해할 능력을 주셨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성실한 순종이 요구되었다.”(부조, 52)

“그리스도의 목표는 공의와 자비를 조화시키는 것이었다. 공의와 사랑이 각기 독립된 위엄을 보존하게 하셨지만 서로 연합되게 하셨다. 그의 자비는 유약한 것이 아니었고, 죄를 벌하는 두려운 힘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사랑을 이끌어 내는 힘이 되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공의는 그 드높은 거룩함을 단 한 점도 손상시킴이 없이 용서가 가능케 되었다.”(화잇주석, 약 2:13)


2. 공의와 자비는 정반대의 성질이지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두 속성을 조화롭게 융합하셨는가?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저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사 30:18)

“그 노염은 잠깐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 30:5)


구름 속에 있는 무지개가 햇빛과 소나기가 한데 연합함으로써 생기는 것같이 보좌를 두르고 있는 무지개는 자비와 공의의 연합된 힘을 나타낸다. 공의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이는 보좌 위에 있는 언약의 무지개를 이지러지게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사람들이 율법이 내리는 형벌만 보게 된다는 말이다. 만약 공의가 없으면 즉 형벌이 없으면 하나님의 정부는 안정성이 없을 것이다. 구원을 온전케 하는 것은 자비와 공의를 잘 조화시켜 놓은 덕분이다. 우리들이 세상의 구속주와 여호와의 율법을 함께 바라볼 때 그 두 속성의 연합이 우리로 하여금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라고 부르짖게 한다(리뷰 1892. 12. 13).”(화잇주석, 요 3:16) 

“그대가 공의를 행하려고 할 때에는 공의에는 자비라는 쌍둥이 형제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 둘은 나란히 서며, 서로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자녀, 262)

“엄격함과 공의는 자비라는 쌍둥이 형제가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그리스도인 교육, 25)


보좌에 둘린 무지개

3. 하나님의 보좌 위에는 아름다운 무지개가 있는데, 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창 9:1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계 4:3)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시 85:10)


보좌 위에 있는 무지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는 말씀을 증거하는 항구적인 증언이다. 진리의 교사들이여, 율법이 백성들 앞에 제시될 때에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의 곧 언약의 무지개가 둘린 보좌를 가리켜 보이라. 율법의 영광은 그리스도이다. 그는 율법을 크게 하고 존귀케 하려고 오셨다. 자비와 평화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만나고, 의와 진리가 서로 입맞추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게 하라. …

십자가 위에 있는 죄패의 글을 보아라. 주께서 그것을 조정하셨다. 그것은 히브리어와 헬라어와 라틴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모든 인류를 위한 호소문이다. … 그리스도는 사단의 능력에 아무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는 사단의 왕국의 기둥들을 굳게 붙드시고 그 투쟁의 길을 통과하셨고, 죽음의 권세를 가진 그를 파멸시켰다. 한 길이 이제 열리고 그 길을 통하여 자비와 진리가 함께 만날 수가 있었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다(원고 111, 1897).”(화잇주석, 마 27:37)


4. 하나님의 율법과 구속의 계획 속에서 공의와 자비는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가?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발할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사 51:4)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


자비와 공의가 한데 어우러져서 구원을 충분하고 완전하게 한다. 우리가 세상의 구속주와 여호와의 율법을 볼 때에 우리의 입에서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라고 외치게 만드는 것은 그 두 속성의 혼합이다. 복음이 하나님의 율법의 불변성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완전한 제도라는 것을 안다. 그것은 우리의 가슴을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소망으로 뿌듯하게 한다. 사랑은 우리를 청하사 하늘 성문으로 들어오라 하시고, 공의는 희생되어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왕의 가족의 일원, 즉 하늘 왕의 자녀가 누릴 충만한 특권들을 모두 다 준다.”(화잇주석, 롬 3:24-26)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죄에 대한 유일의 정의는 ‘죄는 불법이라’(요일 3:4)는 말이다. 죄는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가 되는 위대한 사랑의 율법에 대항하여 싸우려는 정신의 표현이다.”(쟁투, 492)


자유의지(1)

5. 구속사업에 있어서 기본 원칙은 무엇인가?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보여주셨는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사 1: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눅 4:18)


구속 사업에는 강제가 없다. 외부 압력이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성령의 감화 아래서 누구를 섬길지 선택할 자유가 주어진다. 영혼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할 때 일어나는 변화 속에 가장 높은 의미의 자유가 있다. 죄를 버리는 것은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 스스로 사단의 지배를 벗어날 힘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기를 바라고 그 필요를 크게 느껴 우리 밖에 있는 자신보다 더 높은 힘을 구할 때 영혼의 힘에는 성령의 거룩한 힘이 불어넣어져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의지의 지시에 순종하게 된다.”(소망, 466)


6.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범하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4)


유혹자는 결코 강제로 우리에게 악을 행하게 할 수 없다. 그는 그의 지배에 굴복당하지 않는 한 우리의 마음을 지배할 수 없다. 의지가 승낙하고 믿음이 그리스도를 잡은 손을 놓은 후에야 사단은 자신의 세력을 우리에게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품고 있는 모든 죄된 욕망은 그에게 발판을 제공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표준에 이르지 못한 점마다 그가 들어와서 우리를 시험하고 멸망시킬 수 있는 열린 문이 된다. 우리가 실패하고 패배를 당할 때마다 그에게 그리스도를 비방할 기회를 제공하게 된다.”(소망, 125)


자유의지(2)

7. 하나님께서 피조물인 인간에게 의지의 자유를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율법과 자유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 30:19)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5)

“너희는 자유의 율법대로 심판 받을 자처럼 말도 하고 행하기도 하라”(약 2:12)


하나님은 아담이 금단의 나무에 손을 대지 못하게 붙드실 수 있는 힘을 갖고 계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만약 그렇게 하셨더라면 하나님의 율법은 독재적 율법이라는 사단의 비난이 인정을 받게 되었을 것이며,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진 도덕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기계에 불과했을 것이다(리뷰 1901. 6. 4).”(화잇 주석, 창 3:6)

“그러나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윗은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시 119:45)라 하였다. 사도 야고보는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후에 십계명을 ‘최고한 법’ 또한 ‘온전한 율법’이라고 말하였다(약 2:8, 1:25). 또한 요한계시록의 기자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지 반세기 후에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영어 흠정역 성경에는 ‘계명을 지키는 자’로 번역되었음)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함이로다‘(계 22:14)고 하였다. …

사단이 속박의 멍에라고 비난하여 온 하나님의 율법은 자유의 율법으로 높임을 받을 것이다. 시련과 연단을 받은 피조물들은 헤아릴 수 없는 사랑과 측량할 수 없는 지혜로 이루어진 품성을 그들 앞에 완전히 드러내신 하나님께 다시는 충성심을 변치 아니할 것이다.”(쟁투, 466, 504)


8. 하나님의 율법은 인류의 행복에 어떤 관계가 있는가?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을 행하였나이다 내 심령이 주의 증거를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시 119:165-167)


사랑의 율법이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가 되므로 모든 피조물들은 그 큰 원칙에 완전히 일치함으로써 행복을 누리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이 사랑의 봉사, 곧 주님의 성품을 이지적(理智的)으로 이해하므로 생기는 경배를 드리기를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강제적인 충성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의지의 자유를 허락하셔서 그들이 주님께 자발적 봉사를 할 수 있게 하신다.”(쟁투, 493)


사랑의 구속력

9.  하나님의 모든 명령은 강제적으로가 아닌 사랑의 구속력 아래서 주어졌음을 우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

“나의 사랑하는 바 주의 계명을 스스로 즐거워하며”(시 119:47)


구속 사업에는 강제가 없다. 외부 압력이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 성령의 감화 아래서 누구를 섬길지를 선택할 자유가 주어져 있다. 사람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할 때 일어나는 변화 가운데 가장 높은 의미의 자유가 있다. 죄를 버리는 것은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 스스로 사단의 지배를 벗어날 힘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기를 바라고 크게 그 필요를 느껴 자신보다 더 높은 힘을 구할 때 영혼의 힘에는 성령의 거룩한 힘이 불어 넣어져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의지의 지배를 받는다.”(소망, 466)

“하나님은 강제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사랑은 그분께서 마음에서 죄를 제거하실 때 사용하시는 대리인이다. 사랑으로써, 하나님은 교만을 겸손으로, 적의와 불신을 사랑과 믿음으로 바꾸신다.”(보훈, 76)


10.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계획을 성취하심에 있어서 그분의 품성의 어떤 속성을 사용하실 것인가?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시 119:97)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렘 31:3)


선악의 대쟁투가 하늘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때부터 반역이 영원히 정복되고 죄악이 전멸될 때까지의 역사도 또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의 증거이다.”(부조, 33)


“사랑은 그 본질에 있어서 파급적이며 그 활동에 있어서 조용하나, 큰 악을 정복하는 그 목적에 있어서는 강하고 힘차다. 사랑의 영향력은 녹이고 변화시킨다. 그것은 사악한 자들의 생애를 사로잡을 것이며, 다른 모든 방법이 실패할지라도 그들의 마음을 감화시키는 일을 할 것이다. … 예수님은 평화의 왕이셨다. 그분은 저항과 권위를 당신에게 굴복시키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지혜와 힘을 마음대로 사용하실 수 있었으나, 당신이 악을 정복하기 위하여 사용하신 것은 사랑의 지혜와 힘이었다.”(1보감, 210)


[상고할 말씀]

양심의 문제에 있어서 심령이 속박을 받아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여 그를 판단하거나 그의 의무를 규정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하나님께서 모든 영혼에게 생각할 자유와 그가 깨달은 대로 행할 자유를 주신다.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자신의 개성을 다른 사람의 개성과 합칠 권리를 가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모든 문제에는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롬 14:12, 5)는 원칙이 내포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나라에는 오만한 압제도, 행동의 강제도 없다. 하늘의 천사들은 지배하고 충성을 강요하려고 세상에 내려온 것이 아니요 은혜의 사자로서 인류를 향상시키는 일에 사람들과 협력하려고 내려오는 것이다.”(소망, 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