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과 성소와 봉사(2)

by 청지기 posted Feb 2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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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6시 26분




제9과


성소와 봉사(2)



[연구범위]

초기문집, 232~253; 각 시대의 대쟁투, 299~330.


기억절 :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히 9:24, 25)


서론 :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소 문제와 조사심판에 관한 문제를 분명히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크신 대제사장의 위치와 사업에 대하여 그들 스스로 알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그들은 이 시대에 필요한 신앙을 활용하거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차지하기를 바라시는 그 위치를 채우지 못하게 될 것이다. 각 사람은 영혼을 구원하든지 잃어버리든지 할 것이다.”(쟁투, 488) 


성소 진리와 재림운동(1)

1. 윌리암 밀러는 어떤 계기로 성경을 연구하게 되었는가? 그는 어떤 성경을 어떤 방법으로 연구했으며 무엇을 깨닫게 되었는가?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사 34:16)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하시리라”(사 28:13)

시 119:130.


밀러는 지금까지 그가 경멸히 여겨온 종교에 대한 신앙을 여러 사람 앞에 고백하였다. 그러나 그의 믿지 않는 친구들은 그가 이전에 자주 성경의 권위에 대하여 힘 있게 반대하여 온 바로 그 모든 논증들을 지체 없이 제시하였다. 그 때에 그는 그 사람들에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성경이 하나님의 계시일 것 같으면 반드시 그 자체에 모순이 없어야 하고, 그것이 인류의 교훈으로 주어졌다면 사람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을 위하여 성경을 연구하되, 모순된 것처럼 보이는 점들이 조화를 이룰 수는 없는지 연구해 보기로 결심하였다.

그는 모든 선입견(先入見)을 버리고자 힘쓰는 한편, 성경의 주석들을 참고하지 않고, 관주와 성구 사전(聖句辭典)을 이용하여 성경의 구절과 구절을 비교함으로 연구하였다. 그는 그 연구를 극히 규칙적으로, 조직적으로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창세기에서 시작하여 성경 구절 한 절 한절을 읽어가면서 그 의미가 분명히 이해되기 전에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그는 별로 모순이나 의문이 없이 이해할 수 있고 거기 관련되는 다른 성경 구절을 비교하여 자기의 견해와 일치되는 때에는 다음 성경 구절로 넘어갔지만 만일 분명하지 못한 점을 발견할 때에는 언제든지 그 문제에 관한 다른 모든 성경 구절을 대조 연구하였다. 그렇게 함으로 어렵게 보이던 것이 없어져 갔다. 그는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을 만나면 다른 성경 구절에서 그 해석을 찾아 발견하였다. 그가 하나님의 깨우쳐 주심을 위하여 열렬히 기도하면서 연구할 때, 이전에 이해할 수 없으리만큼 어둡게 보이던 것들이 분명해졌다. 그때에 그는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시 119:130)고 한 시인의 말을 깨닫게 되었다.”(쟁투, 319, 320)


2. 윌리암 밀러는 성경연구를 통하여 다니엘서를 연구하면서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가 성소의 정결을 주님의 재림과 연관시킨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7)


밀러는 다니엘서 8장 14절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고 한 말씀을 해석할 때, 당시에 일반적으로 성소를 이 세상이라고 생각하던 견해를 채택하였다. 그러므로 성소가 정결하여진다는 말을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불로써 이 세상이 깨끗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므로 그는 2,300주야의 끝이 분명히 예언된 것을 볼 때에 그것은 재림의 때를 알려준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와 같이 그의 잘못은 그가 성소에 관한 일반적인 견해를 받아들인 데 기인된 것이었다.”(쟁투, 352)


성소 진리와 재림운동(2)

3. 윌리암 밀러의 2,300주야 연도의 계산은 틀림이 없었으나,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 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계 10:9)


이 경고를[계 14:7] 전한 사람들은 올바른 기별을 바로 그 기별이 요구되는 올바른 때에 선포하였다. 그러나 마치 초기의 제자들이 다니엘서 9장을 근거로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는 기별을 전하기는 하였지만 바로 그 성경 가운데 메시야의 죽으심에 대한 예언이 있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처럼 밀러와 그의 동역자들도 다니엘서 8장 14절과 요한계시록 14장 7절을 근거로 기별을 전하면서도 재림 전에 하여야 할 다른 기별이 그 같은 14장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 제자들이 70주일의 끝에 건설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오해했던 것처럼 재림신자들도 2,300주야가 마칠 때에 일어날 사건을 오해하고 있었다. 이 두 경우는 다 같이 진리에 대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일반적인 오류를 그냥 받아들이거나 고집하므로 생긴 일이었다. 그 두 종류의 사람들은 다 같이 하나님께서 전하고자 하시는 기별을 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기는 하였으나, 그들은 다 같이 자기들의 기별을 오해함으로 실망을 당하였다.”(쟁투, 352)


4. 그렇다면, 이 예언에 기초한 재림운동은 하나님의 섭리였는가? 실망한 재림성도들은 이제 어떤 문제에 눈을 돌리게 되었는가?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 29:29)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욥 11:7)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쁨으로 그들의 주님을 기다리고 있음을 보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시험해 보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분은 예언적 기간을 계산하는 데 생긴 과오를 당신의 손으로 덮어 두셨다. 그리하여 주님의 오심을 고대하고 있던 자들은 이 과오를 깨닫지 못하였으며 시기를 반대하는 최고의 학자들도 역시 그것을 들추어내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낙망을 경험하도록 계획하셨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갔다. 주님의 나타나심을 기쁨으로 고대하던 자들은 용기를 잃고 슬픔에 잠겼고, 예수의 오심을 사모하지는 않았으나 두려움 때문에 그 기별을 받아들였던 자들은 그가 기다리던 정한 때에 오시지 않자 모두 기뻐하였다. 그들의 증언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지 못했고 생활을 정결케 하지 못하였다. 정한 때가 지나가자 그러한 사람들은 뚜렷이 구별되어 드러났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바였다. 그들은 먼저 구주의 나타나심을 진정으로 사모한 자들이 슬퍼하고 실망하는 것을 보고 돌아서서 비웃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시험하여 시련의 때에 물러서고 돌아서는 자들을 골라내시는 것이 그분의 지혜임을 보았다.”(초기, 23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큰 재림운동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셨으며 그분의 권능과 영광이 이 운동에 같이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운동이 거짓된 광신 소동으로 조롱과 모욕을 받고 암흑과 실망으로 끝을 맺도록 허용하지 않으실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이 의심과 불확실한 상태에 묻혀 있게 버려두지 아니하실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천삼백 주야의 예언의 기간에 대한 계산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기초로 한 재림운동의 확실성을 의심하였다. 그러나 그와 반면에 성경과 하나님의 성령의 증거로 지지된 신앙적 근거와 체험을 버리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그들이 예언 연구에 있어서 건전한 해석 원칙을 적용했다고 믿고 이미 얻은 바 진리를 굳게 잡고 계속하여 같은 방법으로 연구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열렬한 기도로써 그들의 견해를 다시 검토해보고 그들의 잘못을 발견하기 위하여 성경을 연구하였다. 그들이 예언의 기간을 계산하는 일에 아무런 착오가 없는 것을 깨닫게 되자 그들은 성소 문제를 한층 더 세밀하게 연구하게 되었다.”(쟁투, 410, 411)


성소 정결

5. 1844년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던 많은 사람들은 실망을 통하여 무엇을 배우게 되었는가?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

“오 하나님이여, 주의 길이 성소에 있으니 누가 우리 하나님처럼 그렇게 위대한 하나님이리이까?”(시 77:13; 킹제임스)


그와 똑같이 밀러와 그 동역자들은 예언을 성취시켰고, 세상에 전해지도록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기별을 전하였다. 그러나 그들도 만일 그들의 실망을 가르쳐 주고 재림 전에 또 다른 한 기별이 전파될 것을 알려 주는 예언을 미리 완전히 이해했었더라면, 결코 그 예언을 성취시킬 수 없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첫째와 둘째 천사의 기별은 적시에 전파되었고, 하나님께서 기별들을 통하여 하시고자 계획하신 사업은 성취되었다.”(쟁투, 405)

“성소 문제는 1844년의 실망의 신비를 해결하는 열쇠가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손이 큰 재림운동을 지도하셨다는 것과 하나님의 백성의 위치와 현재의 의무를 가르쳐 줌으로 진리의 전체적인 체계가 상호 연결되고 조화되어 있다는 것을 밝히 보여 주었다. … 그러나 이제 그들은 다시 지성소 안에서 주님, 곧 미구에 왕과 구주로 다시 오실 자비로운 대제사장을 뵈옵게 되었다. 성소에서 나온 빛은 과거, 현재, 미래를 환하게 비추어 주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절대로 착오 없는 섭리로써 그들을 인도하여 주신 사실을 알았다. 초대의 제자들처럼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기별을 비록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하였으나 그 기별을 모든 면에서 정확하게 전하였다. 그 기별을 전함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수고는 주님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았다. 다시 ‘산 소망’이 생겨서 그들은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였다.”(쟁투, 423)


6. 예수님께서 1844년에 시작하신 일은 무엇이었으며, 우리는 어떻게 하늘에서 벌어지는 그것을 알 수 있는가?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 9:11, 12)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다리던 시간에 예수님을 뵙지 못하게 되어 크게 실망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예언된 기간이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의 구주께서 오시지 않는 이유를 몰랐다. 천사가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지 못했는가?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이행하지 못하셨는가? 아니다. 그분은 약속하신 모든 것을 반드시 성취시키셨다. 예수께서 일어나셔서 하늘에 있는 성소의 문을 닫으시고 성소를 정결케 하시기 위하여 지성소의 문을 여시고 그리로 들어가셨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던 자들은 그 신비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실수했으나 하나님 편에서의 실수는 없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모두 성취되었으나 인간은 이 지구가 예언된 기간이 끝날 때 정결케 될 성소라고 오해했던 것이다. 무너진 것은 인간의 기대였지 하나님의 약속은 아니었다.’”(초기, 250)

“예수께서 갈바리에서 운명하실 때 그가 ‘다 이루었다’고 외치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다. 그것은 지상 성소에서의 봉사가 영원히 끝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드리는 희생 제물을 받으시기 위하여 더 이상 지상 성소에서 제사장들을 만나시지 않을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 때 예수께서 피를 흘리셨으며 그 피를 가지고 친히 하늘 성소에서 드리신 것이다. 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씩 지성소에 들어가 지상 성소를 정결케 한 것같이 예수께서 1844년 다니엘 8장의 2,300주야의 예언이 마칠 때 그분의 중보를 통하여 은혜를 입을 수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마지막 속죄를 하시고 하늘 성소를 정결케 하시기 위하여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다.”(초기, 253)


(대)속죄일

7. 오늘날 우리는 상징적인 이스라엘의 절기 가운데 어떤 절기를 실제적으로 경험하고 있는가? 이 날은 무엇과 관련이 있는가?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희에게 성회라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며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고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레 23:27, 28)


오늘날 우리는 대속죄일에 살고 있다. 표상적 의식에서, 대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속죄의 봉사를 하는 동안 모든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 죄를 회개하고 겸손한 태도로써 그들의 심령을 괴롭게 해야 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이었다. 그와 같이 자기 이름이 생명책에서 도말되기를 원치 아니하는 모든 사람은 그들의 은혜의 시기가 얼마 남지 아니한 오늘날 죄를 슬퍼하고 진정으로 회개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심령을 괴롭게 해야 한다. 그들은 심각하고 철저하게 마음을 살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허(浮虛)하고 경박한 정신은 반드시 버려져야 한다. 지배권을 장악하고자 일어나는 악한 경향들을 이기고자 하는 모든 사람 앞에는 반드시 격렬한 투쟁이 있다. 준비하는 일은 개인적으로 할 일이다. 우리는 단체적으로 구원을 얻지 않는다. 사람의 순결과 헌신이 다른 사람의 그런 특성의 결함을 보충해 줄 수 없다. 비록 온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각 개인의 사건을 조사하시기를 마치 세상에 그 한 사람밖에는 다른 사람이 없는 것처럼 세밀히 하실 것이다. 모든 사람이 조사를 받되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어야 한다.”(쟁투, 489)


8. 속죄일은 단 하루다. 이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이 날에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은 너희를 위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 속죄할 속죄일이 됨이니라 이 날에 스스로 괴롭게 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 이 날에 누구든지 아무 일이나 하는 자는 내가 백성 중에서 멸절시키리니 너희는 아무 일이든지 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레 23:28-31)


 그 모든 의식은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주님께서 죄를 가증히 여기심을 깊이 깨닫게 해줄 뿐 아니라 또한 죄와 접촉하면 반드시 부정하게 된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기 위한 것이었다. 이 속죄의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에 각 사람은 통회하고 마음을 괴롭게 하여야 하였다. 그날에 모든 사람은 일을 전폐하고,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엄숙하게 하나님 앞에 자신을 겸비하게 하고, 기도하고, 금식하고, 마음을 깊이 살피는 가운데 지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쟁투, 419, 420)


구속의 경륜을 완성시킴

9. 지성소의 봉사를 완성하기 위하여 대제사장은 최종적으로 그 죄를 어떻게 처리했는가? 

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어 미리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낼지니”(레 16:21)


백성들은 이 연례적 봉사로 속죄에 관한 중요한 진리를 배웠다. 일 년 동안 드려지는 속죄제를 통해 죄인을 대신하여 대치물이 가납되어졌지만 그 희생 제물의 피가 죄를 완전히 속죄하지 못했다. 그것은 다만 죄가 성소로 옮겨지는 방편을 제공한 것뿐이었다. 피를 드리는 제사로 죄인은 율법의 권위를 인정하고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는 동시에 세상 죄를 지고 가시기로 되어 있던 그분께 대한 믿음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그가 율법의 선고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니었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회중을 위한 한 제물을 취하여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율법이 기록된 돌비 위에 있는 속죄소에 뿌렸다. 이와 같이 하여 죄인의 생명을 요구하는 율법의 요구가 충족되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중보자의 신분으로 그 죄를 자기가 지고 성소에서 나옴으로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든 죄짐을 지게 되었다. 그는 성막문에서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뽑은 염소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불의와 그 범한 모든 죄를 고백하고 그 죄를 염소의 머리’에 두었다. 그리고 죄를 담당한 이 염소가 광야로 보내어졌을 때 죄가 백성에게서 영원히 분리된 것으로 그들은 생각하였다. 이와 같은 것이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히 8:5)로서 수행한 봉사이었다.”(부조, 355, 356)


10. 속죄일의 경험을 통하여 죄인들은 어떤 경험을 하게 되는가?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렘 31:34), 

“그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발견치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나의 남긴 자를 사할 것임이니라”(렘 50:20)


그리하여 새 언약의 약속이 완전히 성취될 것이다.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렘 31:34), ‘그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발견치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나의 남긴 자를 사할 것임이니라’(렘 50:20). ‘그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의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사 4:2, 3)라.”(쟁투, 484)


[상고할 말씀]

예수께서는 기쁨으로 기다리던 무리들이 바라던 대로 세상에 불을 내려 성소를 정결하게 하려고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예언적 기간을 계산하는 일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음을 보았다. 예언된 기간은 1844년에 끝마치고 예수께서 그날들 끝에 성소를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지성소로 들어가셨다. 나는 다시 기다리다가 실망한 무리들을 보았는데 그들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믿음의 증거들을 살펴보았으며 예언적 기간을 계산하는 일을 재검토 하여 보았으나 잘못을 찾을 수 없었다. 때는 찼는데 저들의 구주는 어디 계시는가? 그들은 그분을 잃어버렸다.”(초기, 243)


“그리스도의 희생과 제사장 직분을 표상하는 구약 시대의 상징적 의식에 있어서 성소를 정결케 하는 일은 제사장이 하는 연중 봉사 중의 맨 마지막 것이었다. 그것은 속죄의 사업을 완성하는 일이요, 이스라엘 사람들의 죄를 도말하고 제거해 버리는 일이었다. 그것은 하늘의 기록책에 적혀 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죄를 도말하고 제거하시는 하늘의 대제사장 그리스도의 최후의 봉사를 예표하는 것이었다. 이 봉사는 조사하는 일, 곧 심판하는 일로써 그리스도께서 권세와 영광으로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기 전에 있을 일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는 모든 사건이 결정된 후가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주리라’(계 22:12)고 말씀하셨다. 또한 계시록 14장 7절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라’고 한 첫째 천사의 기별은 재림직전에 있을 이 심판을 말한 것이다.”(쟁투, 352)

“장차 온갖 종류의 속임수가 일어날 것이며 우리는 든든히 설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이 요구된다. 또한 우리는 건물을 위하여 튼튼한 기둥들을 원한다. 주님께서 세우신 것은 단 한 가지도 옮길 수 없다. 영혼의 원수는 성소가 없다는 교리와 같은 거짓 교리들을 끌어들일 것이다. 성소 문제는 믿음에서 이탈하는 자들이 따지는 문제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주님께서 지난 50여 년 동안 우리에게 주신 진리가 아니고서야 우리가 어디서 안전한 길을 찾을 수 있을까? - 리뷰 앤 헤랄드, 1905년 5월 25일”(전도, 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