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과 제사(1)

by 청지기 posted Feb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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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6시 05분




제6과


제사(1)



[연구범위]

부조와 선지자 315~325, 350, 351.


기억절 : 히스기야가 명하여 번제를 단에 드릴새 번제 드리기를 시작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시로 노래하고 나팔을 불며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악기를 울리고”(대하 29:27)


서론 :  조석마다 일년 된 어린양을 적당한 소제물과 함께 제단 위에서 불살랐다. 이것은 그 민족이 매일 여호와께 헌신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에 끊임없이 의지한다는 것을 상징하였다.”(부조, 352)


 

번제(燔祭)

1. 모든 제사제도의 기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노아는 방주에서 내리자마자 여호와를 위하여 무엇을 드렸는가?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창 4:4)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창 8:20)


하나님의 영광이 그룹 천사들이 경비하는 낙원의 문에 나타났다(하나님의 영광이 그룹 사이에 나타났으며 후에는 이것을 쉐키나라고 불렀으며 이스라엘 예배의 중심인 지성소 안에 거하였다. 출 25:22; 시 80:1; 사 39:16 참조). 아담과 그의 아들들은 이곳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나아왔다. 그곳에서 그들은 율법에 대한 순종의 맹세를 새롭게 하였는바 바로 그 율법을 범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에덴에서 추방당했었다”(부조, 62)

“노아는 황폐된 지상에 나왔었으나, 자신을 위하여 집을 준비하기 전에,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 그가 소유한 가축은 적었으며 그것들을 보존하느라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않았었다. 그러나 그는 만물이 그분의 것임을 인정하는 표로써 즐겁게 그 가축의 일부를 주께 드렸다. 이와 같이 우리의 자원하는 헌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우리의 첫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베푸시는 그분의 모든 긍휼과 사랑에 대하여, 우리는 기도로 그리고 그분의 사업을 위하여 헌물을 드림으로 우리에게 베푸시는 그분의 모든 자비와 사랑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인정해야 한다.”(부조, 105)


2. 매일 아침저녁으로 한 마리의 양이 번제로 성소에서 드려졌다. 이 표상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네가 단 위에 드릴 것은 이러하니라 매일 일 년 된 어린 양 두 마리니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 양은 저녁 때에 드릴지며”(출 29:38-39)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막 12:33)

출 29:40~42.


조석마다 일년 된 어린양을 적당한 소제물과 함께 제단 위에서 불살랐다. 이것은 그 민족이 매일 여호와께 헌신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에 끊임없이 의지한다는 것을 상징하였다.”(부조, 352)

“가족마다 조석 예배를 위한 고정된 시간을 가질 것이다. 부모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밤 사이에 보호하여 주신 것을 감사하기 위하여, 그리고 하루 동안 하나님의 도움과 지도와 보살펴 주심을 구하기 위하여 조반을 하기 전에 그들의 주위에 자녀들을 모으는 것은 얼마나 합당한 일인가! 그리고 또한 저녁에는 부모들과 자녀들이 주님 앞에 다시 한 번 모여서 지난 하루 동안에 주신 축복을 인하여 감사를 돌리는 것은 얼마나 마땅한 일인가!”(7증언, 43)


소제(素祭)

3. 희생 제물에는 피 흘림이 있는 제물과 피 흘림이 없는 제물로 나뉘는데, 소제는 후자에 속하였으며, 고운가루로 만든 누룩 없이 만든 전병으로 드리는 일종의 예물제사였다. 소제물 위에 무엇을 첨가하여 드렸으며 무엇이 빠져서는 안 되는가? 그 의미는 무엇인가?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그 위에 기름을 붓고 또 그 위에 유향을 놓아”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레 2:1, 13)

“…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막 9:50)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고후 2:15, 16)

레 2:2~12, 16.


두 감람나무는 황금빛 기름을 자체로부터 내어 보내어 순금 관을 통해서 성소의 등대를 채우는 순금 주발에 이르게 한다. 황금빛 기름은 성령을 대표한다.”(목사, 188)

“의문(儀文)의 제사에서는 제물마다 소금을 쳤다. 향을 피우는 것과 같이 이것은 그리스도의 의만이 그 제사를 하나님께 가납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예수께서는 이 관습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마 5:13)고자 하는 자들은 다 구원하는 소금인 우리 구주의 의를 받아야 한다. 그 때 그들은 ‘세상의 소금’이 되어 소금이 방부(防腐)의 역할을 하는 것처럼 사람들 중에서 죄악을 방지한다(마 5:13).”(소망, 439)


4. 소제는 모든 번제나 모든 화목제와 함께 드려졌다. 소제물과 함께 드려져서는 안 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 의미는 무엇인가?

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지니 너희가 누룩이나 꿀을 여호와께 화제로 드려 사르지 못할지니라”(레 2:11)

“정월에 그 달 십사일 저녁부터 이십일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칠 일 동안은 누룩을 너희 집에 있지 않게 하라 무릇 유교물을 먹는 자는 타국인이든지 본국에서 난 자든지 무론하고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쳐지리니 너희는 아무 유교물이든지 먹지 말고 너희 모든 유하는 곳에서 무교병을 먹을지니라”(출 12:18-20)

“…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눅 12:1)

갈 5:9; 고전 5:6~8.


가루 속에 넣은 누룩은 부지중에 모든 가루를 누룩의 성질로 변화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와 같이 마음속에 외식이 자리 잡도록 허용한다면 그것은 품성과 생애에 스며들게 된다. … 이 거짓 원칙[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기만적인 원칙]은 일단 받아들여지면 마치 가루 속에 든 누룩처럼 품성에 침투하여 변화시키는 작용을 하였다.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를 그렇듯 어렵게 만든 것이 바로 이 기만적인 교훈이었다.”(소망, 408)


화목제(和睦祭)

5. 화목제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제사와 달랐는데, 유월절을 제외하고 백성들이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예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화목제물을 먹는 일에 있어서 엄격히 금지된 사항은 무엇인가? 여기서 배울 교훈은 무엇인가?

만일 그 화목제 희생의 고기를 제 삼 일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그 제사는 열납되지 않을 것이라 드린 자에게도 예물답게 못되고 도리어 가증한 것이 될 것이며 그것을 먹는 자는 죄를 당하리라”(레 7:1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마 12:39, 4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바리새인들은 죽은 자의 부활을 믿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이라도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는 능력이 그들 가운데 있어서 그들이 그 권세의 나타남을 보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이 동일한 부활의 권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엡 2:1) 영혼에게 생명을 가져다주는 그 권세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그 생명의 성령, 곧 ‘부활의 권능’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킨다(빌 3:10; 롬 8:2). 악의 권세는 깨뜨려지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영혼은 죄로부터 보호함을 받는다. 그리스도의 성령에게 마음을 여는 자는 자기 몸을 무덤에서 일으켜 줄 전능한 권능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소망, 209)

“아버지께서 당신을 부르신다고 말하는 힘 있는 천사의 음성이 그리스도의 무덤에 들렸을 때에 구주께서는 자기 속에 있던 생명으로 무덤에서 나오셨다. 그 때 다음과 같은 그분의 말씀이 진실임이 밝혀졌다.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다. 이제 제사장들과 관원들에게 말씀하신 그분의 예언은 성취되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10:17, 18; 2:19).”(소망, 785)


6. 화목제는 일반적으로 속죄제와 번제 후에 드려졌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는가?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


아,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는 사람들과 행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특권이 얼마나 놀라운가! 그리스도를 죄를 담당하신 분이요 우리 죄악을 위한 화목제물이심을 아는 지식이 우리로 거룩한 생애를 살게 하는 힘이 된다. 이 지식은 인류의 행복을 위한 안전한 보호자이다. 사단은 이 지식이 없이는 우리가 반드시 혼란에 빠지게 되고 우리의 힘을 상실하게 될 것을 잘 알고 있다.”(1기별, 264)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대제사장이 화려한 예복을 벗고 일반 제사장의 세마포 옷을 입고 봉사한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종의 형상을 취하시고 자신이 제사장으로서 그리고 자신이 제물도 되셔서 제사를 드리셨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사 53:5)린다.”(소망, 25)


속죄제(贖罪祭)

7. 죄인들이 성소를 찾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일 평민의 하나가 여호와의 금령 중 하나라도 부지중에 범하여 허물이 있었다가 그 범한 죄에 깨우침을 받거든 그는 흠 없는 암염소를 끌고 와서 그 범한 죄를 인하여 그것을 예물로 삼아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 희생을 번제소에서 잡을 것이요 제사장은 손가락으로 그 피를 찍어 번제단 뿔에 바르고 그 피 전부를 단 밑에 쏟고 그 모든 기름을 화목제 희생의 기름을 취한 것같이 취하여 단 위에 불살라 여호와께 향기롭게 할지니 제사장이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레 4:27-31)

레 4:1~35.


예수께서 양편[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셨기 때문에 양편 모두가 그를 죄의 대속물로서 즉 세상의 구주로 믿는 것만이 그들에게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는 것이다.”(초기, 209)

“비유적으로 백성들의 죄는 중보자로 집전중인 제사장에게로 옮겨졌다. 제사장 자신이 속죄제물이 될 수도 없고, 그의 생명을 드려서 속죄를 할 수도 없는 것은 그도 또한 죄인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 자신이 직접 죽음의 고통을 당하는 대신 그는 흠 없는 한 마리의 양을 죽였다. 죄의 형벌은 그 죄 없는 짐승에게로 옮겨지고 그 짐승은 그를 직접 대신하는 대속물이 되어 완전한 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였다. 이러한 희생 제물의 피를 통하여 사람은 믿음으로 세상 죄를 속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바라보았다(영문시조 1878.3.14).”(화잇주석, 레 8:31)


8. 속죄제물은 누가 어디서 잡아야 하는가?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그가 만일 어린 양을 속죄제물로 가져오려거든 흠 없는 암컷을 끌어다가 그 속죄제 희생의 머리에 안수하고 번제 희생을 잡는 곳에서 잡아 속죄제를 삼을 것이요”(레 4:32, 33)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히 13:12)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히 13:12)다.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까닭에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다. 우리의 대속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예루살렘성 밖에서 고통을 당하셔야만 했다. 그분은 중범자들과 살인범들이 처형 받던 성문 밖에서 죽으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갈 3:13)다는 말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말씀이다.”(소망, 741)

“그분은 우리의 슬픔을 지셨고, 그분은 우리의 죄 때문에 비애(悲哀)에 처하게 되셨다. 그분께서는 친히 속죄제물이 되셔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될 수 있게 하셨다”(4증언 374)


속건제(贖愆祭)

9. 속건제는 잘못에 대한 고백과 제물을 드리는 것뿐만 아니라, 잘못에 대한 수정을 요구한다. 이것과 관련하여 성경에는 어떤 실례가 있는가? 

성물에 대한 범과를 갚되 그것에 오분 일을 더하여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제사장은 그 속건제의 수양으로 그를 위하여 속한즉 그가 사함을 얻으리라”(레 5:16)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지 일을 더하여 그가 죄를 얻었던 그 본주에게 돌려 줄 것이요 만일 죄 값을 받을 만한 친족이 없거든 그 죄 값을 여호와께 드려 제사장에게로 돌릴 것이니 이는 그를 위하여 속죄할 속죄의 수양 외에 돌릴 것이니라”(민 5:7,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눅 19:8)

레 6:2~6.


삭개오는 성령의 감화에 복종하자마자 성실에 위배되는 모든 행위를 버렸다.

개혁이 따르지 않는 회개는 참된 회개가 아니다. 그리스도의 의는 자복하지 않고 버리지 않은 죄를 덮는 외투가 아니다. 품성을 변화시키고 행동을 제어하는 것이 생애의 원칙이다. 거룩함이란 하나님께 전체를 바치는 것이며 마음속에 있는 하늘의 원칙에 마음과 생애를 완전히 복종시키는 것이다.”(소망, 555, 556)


10. 예수께서 모든 사람의 질고를 지신 것은 자신이 어떤 제물이 되시기 위함이셨는가? 속건제에서는 피를 제단 주위에 뿌렸다. 피를 뿌리는 일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무엇인가?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사 53:10, 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

레 7:2, 7.


반복해서 뿌려지는 것은 회개하는 죄인들을 위해 완성되어야 할 사업의 완전함을 예증한다. 그가 가진 모든 것은 희생되어야 했다.”(4증언, 122)

“그러나 잃어버린 세상을 위한 속죄는 충분하고 풍성하고 완전하여야만 하였다. 그리스도의 선물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영혼에게 미치기에 풍족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큰 선물이신 분을 받아들일 사람의 수효를 초과하지 못하게 하는 그런 제한이 있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구속의 경륜의 관유(寬裕)함이 준비한 모든 것을 성취하지 않는다고 해서 구속의 경륜이 헛된 것은 아니다. 구속의 경륜은 여유가 있어야 한다.”(소망, 565)


[상고할 말씀]

성소 자체뿐 아니라 제사장들의 봉사도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히 8:5)의 구실을 해야 하였다. 이와 같이 그것은 매우 중대하였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 예표적 봉사의 하나하나에 대하여 매우 분명하고 자세한 지시를 주셨다. 성소의 봉사는 매일의 봉사와 연례적인 봉사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매일의 봉사는 성막의 뜰에 있는 번제단과 성소에서 수행되었고, 연례적인 봉사는 지성소에서 거행되었다. …

매일의 봉사는 조석으로 드리는 번제와 금향단에 향기로운 향을 드리는 일과 개인들의 죄를 위한 특별한 제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외에 또 안식일과 월삭과 특별한 절기를 위하여 드리는 제사가 있었다.”(부조, 351, 352)

“조석마다 일년 된 어린양을 적당한 소제물과 함께 제단 위에서 불살랐다. 이것은 그 민족이 매일 여호와께 헌신하고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에 끊임없이 의지한다는 것을 상징하였다. 성소의 봉사를 위하여 드려지는 제물은 모두 ‘흠(이) 없’(출 12:5)어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명백하게 명령하셨다. 제사장들은 희생 제물로 가져온 모든 짐승들을 검사하여 흠이 발견되는 것은 모두 거절해야 했다. ‘흠 없’는 제물만이 자신을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벧전 1:19)으로 바치시기로 되어 있는 그분의 완전한 순결을 상징할 수 있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을 설명하는 실례로서 이 희생 제물들을 지적하였다. 그는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고 말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 봉사하기 위하여 자신들을 바쳐야 하며 될 수 있는 대로 거의 완전한 제물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보다 못한 것은 무엇이든지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다. 온 마음으로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생애의 최선의 봉사를 그분께 드리고자 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촉진시켜 주는 율법과 일치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그들의 모든 힘을 경주하고자 노력할 것이다.”(부조, 352, 3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