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과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by 청지기 posted Jul 3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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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7시 36분




제5과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연구범위]

산상보훈, 21~24.


기억절 :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서론 :  영혼 속에 거하시고 사람의 생애에 뚜렷하게 나타나시는 성령은 딱딱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동정심과 자비심을 불러일으켜 준다.”(보훈, 23)

 

자비의 근원 


1. 자비의 근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 103:8)


 

“하나님은 모든 자비의 근원이시다. 그분의 이름은 ‘자비롭고 은혜롭’(출애굽기 34장 6절)다. 그분은 우리를 우리의 가치에 의해 취급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당신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지 묻지 않으시고, 우리를 가치 있게 해주기 위하여 당신의 풍성한 사랑을 부어 주신다. 그분께서는 원한을 품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벌을 주려 하지 않으시고 구속하려 하신다. 당신의 섭리를 따라 나타내시는 엄격함도 실은 완악한 자들의 구원을 위한 것이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의 고통을 씻어 주고 그들의 상처에 향유를 발라 주고자 심히 갈망하신다. 하나님께서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출애굽기 34장 7절)으심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죄는 제거해 주시기를 원하신다.”(보훈, 22)


2.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당신의 품성의 영광을 어떻게 나타내셨는가? 그분이 자비로우시다는 증거는 어떻게 나타났는가?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출 34:6)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요일 4:9)


애 3:22.


 

“‘비록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자를 비웃고 말씀을 멸시하며 그 선지자를 욕하’(대하 36:16)였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들에게 당신을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출 34:6)으로 나타내셨다. 거듭되는 배반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자비는 그들이 회개하기를 계속 탄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아비가 그 자식을 불쌍히 여기는 것보다 더한 사랑으로 ‘그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 사자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대하 36:15)셨다. 마침내 모든 권고와 경계와 견책이 허지로 돌아가자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가장 귀한 선물을 보내어 주셨는바, 그분께서는 그 하나의 선물을 통하여 하늘의 모든 것을 다 주셨다.”(쟁투, 19)


그리스도의 봉사


3.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생애와 하늘 성소의 봉사에서 그분의 자비하심이 어떻게 나타났는가?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눅 4:18)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히 2:17)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가 되시는 그리스도께서는 영광의 빛으로써 이 세상에 오셨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하여 오셨다. 그분에 대하여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그분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행 10:38),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었다. 그분은 나사렛 회당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 19). 이것은 예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맡기신 사업이다.”(실물, 416, 417)

 

4. 하나님께서는 제사와 자비 중에 어느 것을 가치있게 여기시는가? 우리는 실수하고 연약에 싸여있는 형제들을 어떻게 취급해야 하는가?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마 12:7)


 

“자비로운 사랑을 가진 위대한 마음의 소유자께로 가까이 가라. 그리하여 그 신령한 동정의 물결이 그대의 마음속으로 흘러들어와 그대에게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으로 들어가게 하라. 예수님께서 그분의 귀중한 생애를 통하여 계시하신 온유와 자비가, 우리의 동료들,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형제된 자들을 취급하는 방법에 대한 모본이 되게 하라. 많은 사람들이 생애의 큰 싸움에서 피곤에 지쳐 용기를 잃었는데, 그들은 친절한 격려와 용기의 말 한마디로 승리할 힘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결코, 결코 무정하고, 냉랭하고, 무자비하고, 비판적으로 되지 말라. 용기를 주고 희망을 고취시켜 줄 한마디의 말을 해 주는 기회를 결코 잃어버리지 말라. 우리는 짐을 가볍게 해주기 위한 부드럽고 친절한 우리의 말, 그리스도와 같은 노력이 얼마나 원대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말할 수 없다. 실수한 자들은, 온유와 친절과 부드러운 사랑의 정신 외에 다른 길로는 회복될 수 없다.”(5증언, 612)


신의 성품에 참여함


5. 신의 성품에 참여하고자 하는 자들은 어떤 특성을 계발하여야 하는가?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시 37:23-26)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눅 6:36)


 

“긍휼히 여기는 자는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 안에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랑이 나타난다. 무한한 사랑이신 하나님과 일치되는 마음을 가진 모든 사람은 남을 교화시키기 위해서는 힘을 쓰되 남을 정죄하지는 않는다. 영혼 속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는 결코 마르지 않는 샘이다. 그분께서 거하시는 곳은 어디나 자비가 흘러넘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잘못을 범하는 자들, 시험을 당하는 자들, 궁핍과 죄의 희생물이 된 가련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을 때 그들을 도와 줄 가치가 있을까 하고 묻지 않고, 내가 어떻게 하여야 그들을 도와 줄 수 있을까 하고 묻게 된다. 그는 가장 가련하고 가장 비천한 사람들 속에서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면서까지 구원하려 하셨고 또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시켜 화목의 봉사를 하도록 하신 영혼들을 본다.”(보훈, 22)


6. 하늘의 지혜에는 어떤 특성들이 있는가? 형제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정신은 하나님의 지혜와 품성의 원칙과 어떻게 반대되는가?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약 3:17)


 

“서로를 비판하고 정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있는 것이며, 그분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같은 사람들끼리도 사랑할 줄 모르는 자들이다. 비판과 의심과 불평의 쓰레기들을 말끔히 치워 버리라. 그리고 그대의 신경을 바깥쪽으로 곤두세우지 말라. 어떤 자들은 너무나 민감해서 설명하기 어려운 자들이 있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관해서 그리고 그대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있는지, 그 율법을 범하고 있는지에 관해서 대단히 민감하게 되도록 노력하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민감하게 되기를 바라시는 점은 바로 이 점이다(대총회 회보 1903. 4. 1).”(화잇주석, 약 3:17)


자비로운 행동


7. 참된 신앙생애란 어떤 삶을 사는 것인가? 욥은 이런 신앙을 어떻게 실천했는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 1:27)

“이는 내가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줄 자 없는 고아를 건졌음이라 망하게 된 자도 나를 위하여 복을 빌었으며 과부의 마음이 나로 인하여 기뻐 노래하였었느니라 내가 의로 옷을 삼아 입었으며 나의 공의는 도포와 면류관 같았었느니라 나는 소경의 눈도 되고 절뚝발이의 발도 되고 빈궁한 자의 아비도 되며 생소한 자의 일을 사실하여 주었으며”(욥 29:12-16)


사 1:1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불쌍한 자들, 고난 중에 있는 자들, 압박당하는 자들에게 동정을 보이는 사람들이다. …

생애 자체가 고통스런 투쟁이 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늘 부족을 느끼며, 괴로워하고 불신을 나타낸다. 자신들에게는 감사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계속 투쟁하는 고독한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친절한 말과 동정의 표정과 감사의 표시는 마치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 한 그릇과 같을 것이다. 동정의 말 한 마디, 친절한 행동 하나는 피곤한 어깨에 무겁게 지워져 있는 짐을 치워 줄 것이다. 따라서 사심이 없는 모든 친절한 말과 행동은 잃어버린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표현이다.”(보훈, 22, 23)


8. 우리는 고통당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사 58: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눅 10:30, 33-35)


마 25:34~40.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는, 참 종교는 제도나 신조나 의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요, 다른 사람에게 최대의 선을 베풀고 진정한 선으로 사랑의 행위를 하는 데 있음을 보이셨다.”(소망, 497)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저희를 둘러싸고 있는 멸망하는 세상으로부터 자기 자신이 분리된 것처럼 느끼지 말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란 큰 거미줄의 일부분이며, 하늘은 그들을 성도들뿐 아니라 죄인들의 형제로 여기신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타락하고 잘못을 범하는 죄 많은 자들을 포용한다. 타락한 영혼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행한 모든 친절한 행위 즉 자비의 행동은 당신에게 행한 것과 똑같이 가납된다.”(소망, 638)


하나님의 약속 


9.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에게 어떤 약속을 하셨는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7)

“빈약한 자를 권고하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저를 건지시리로다 여호와께서 저를 보호하사 살게 하시리니 저가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저를 그 원수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 여호와께서 쇠약한 병상에서 저를 붙드시고 저의 병중 그 자리를 다 고쳐 펴시나이다”(시 41:1-3)


빌 4:19.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한 봉사로 생애를 하나님께 바치는 자는 누구나 우주의 모든 자원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분과 연결된다. 그의 생애는 변함없는 언약의 황금 고리로써 하나님의 생애와 하나로 이어진다. 주께서는 고통과 궁핍의 시간에 그를 잊지 않으실 것이다.”(보훈, 24)


10. 동료 인간들에게 긍휼과 자비를 베푼 자들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는 어떤 보증의 말씀을 주셨는가?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 인이 네 곁에서, 만 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시 91:1-10)


사 33:16.


 

“긍휼히 여기는 자는 가장 어려운 시간에, 긍휼히 여기시는 구주의 자비 안에서 피난처를 찾게 되고 영원한 거처로 영접 받게 될 것이다.”(보훈, 24)


“의롭게 행하는 자들에게 ‘그 양식은 공급되고 그 물은 끊치지 아니하리라’는 약속이 있다.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쟁투, 629)



[상고할 말씀]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초기의 예언 중에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창 49:10)고 기록되어 있는 것과 같이 백성들이 그리스도께 모여들고 있었다. 무리들의 동정적인 마음들은 제사장들이 요구하는 고루한 의식보다 사랑과 자비의 교훈을 받아들였다. 만일 제사장들과 랍비들이 방해하지 않았다면 그분의 가르침은 이 세상이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그런 개혁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러나 이 지도자들은 그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예수님의 감화를 꺾어버리기로 결심하였다. 그분을 산헤드린 앞에 고소하고 그분의 교훈을 공공연히 비난한다면 그것은 이 일을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왜냐하면 백성들은 여전히 그들의 종교적 지도자들에게 큰 존경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히 랍비의 요구를 비난하거나, 그들이 백성들에게 지운 짐을 덜어 주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누구나 신성모독죄뿐 아니라 대역죄를 지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랍비들은 이런 바탕 위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혐의를 일으키기를 바랐다. 그들은 예수께서 확립된 관습을 전복하여 백성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킴으로 완전히 로마에 예속시키기 위한 길을 예비하려고 힘쓰고 있다고 말하였다.”(소망, 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