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과   충성의 시금석

by 청지기 posted Sep 1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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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지는 시간: 오후 7시 52분




제3과


충성의 시금석





[연구범위]

시대의 소망, 281~289; 각 시대의 대쟁투, 49~54.





기억절 :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겔 20:12)



서론 : “안식일은 그리스도를 창조자와 거룩하게 하시는 분으로 가리킨다. …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었다고’(겔 20:12)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능력의 표징이다. … 안식일은 그리스도의 성결하게 하시는 능력의 표징으로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속한 이스라엘의 일원이 되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다. … 안식일은 사람의 마음에 잃어버린 에덴의 평화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구주로 말미암아 회복된 평화에 대하여 말해 준다.”(소망, 288, 289)



그리스도로부터 배울 교훈


1.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얼마나 왜곡시켰으며, 특히 안식일을 주신 본래의 목적에서 얼마나 이탈되었는가? 예수께서는 안식일의 본래의 목적을 회복하시기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말 것이니라 하거늘”(눅 13:14)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면 무죄한 자를 죄로 정치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마 12:7, 8)

마 12:1~13; 눅 13: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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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율법을 너무나 왜곡해서 그 율법을 속박하는 멍에로 만들었다. 그들의 무의미한 법칙들은 다른 국가들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되었다. 특별히 안식일은 갖은 형태의 무의미한 규칙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안식일은 그들에게 즐거운 날도, 여호와의 성일도, 존귀한 날도 아니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의 준수를 견디기 어려운 무거운 짐으로 만들어 버렸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는 불을 켜거나 심지어 촛불을 켜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그들의 규칙상 그들 스스로 행하는 것이 금지된 많은 일들을 이방 사람에게 의존하였다. 그들은 만일 그런 행위가 죄가 된다면 다른 사람들을 고용하여 그것들을 하게 하는 사람도 그들이 스스로 그 일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이 죄가 된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구원이 유대인들에게 한정되어 있으며, 모든 다른 사람들의 형편은 이미 소망이 없는 까닭에 그렇게 한다고 해서 더 나빠질 리 없다고 생각했다.”(소망, 204)



2.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치시는 일을 안식일을 범했다는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일은 율법의 원칙과 조화됨을 설명해 보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송사할 빙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가 엿보니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저가 일어나 서거늘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눅 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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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셨기 때문에 안식일을 범한다고 비난했지만, 그분의 말씀은 당신께서 하나님의 명령을 범하지 않았음을 증거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한다고 선언하시고, 만일 그들이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죄없는 자를 정죄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저들에게 상기시키셨다. 주님께서는 저들의 마음을 율법과 증거의 말씀으로 돌이키시고 당신 자신이 구름기둥 가운데 말씀하시고 또한 저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을 드러냈음을 상기시키셨다. 주님께서는 안식일에 사람이건 짐승이건 고통당하는 자를 고쳐주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과 조화된다는 것을 저들에게 보여주셨다.”(영문시조, 1896.1.16)

“구주나 당신의 제자들 중 어느 누구도 안식일의 율법을 범하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산 표본이셨다. 그의 생애 가운데 율법의 거룩한 명령을 범한 일을 찾아볼 수 없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정죄하려는 기회를 찾던 증인들을 바라보시면서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요 8:46)고 말씀하셨지만 아무도 반박할 수 없었다.”(소망, 287)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제정된 안식일 


3. 안식일을 범했다고 비난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께서는 어떻게 답변하셨는가? 안식일에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유대인의 주장이 옳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요 5:1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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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고통당하는 자들을 구하는 사업이 안식일의 법과 조화된다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예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선언하셨다. … 만일 율법에 대한 유대인들의 해석이 올바르다면,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일을 종결하시고 우주의 끊임없는 일상적인 과정을 중지시키셔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태양이 안식일에 그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막으시고, 지구를 따뜻하게 하고 초목에게 양분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그 온화한 빛줄기를 차단하셔야 하는가? 천체들이 성일에는 종일토록 조용히 정지하여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시냇물이 들과 숲에 물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명령하시고 바다의 물결이 그 쉴 줄을 모르는 조수의 간만(干滿)을 멈추도록 명하셔야 할까? 밀과 곡식은 자라나기를 멈추고 익은 포도송이는 그 자줏빛 열매를 맺는 것을 연기하여야 하는가? 초목들은 안식일에는 꽃봉오리가 맺거나 꽃이 피어서는 안 되는가? … 하나님께서는 잠시라도 당신의 손을 멈추실 수가 없는데 만일 멈추신다면 인간은 기절하여 죽을 것이다.”(소망, 206, 207)



4. 안식일은 누구를 위해 제정되었으며,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하여 안식일에도 어떤 일들은 계속되어야 하는가?


또 가라사대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막 2:2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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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또한 이날에 행해야 할 일이 있다. 생활에 불가결한 일은 행해져야 하며 병자는 돌보아야 하며 곤핍한 자들의 필요는 공급해 주어야 한다. 안식일에 고통하는 자들을 구하기를 게을리하는 자에게 죄 없다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졌으므로 자비로운 행위는 안식일의 의도와 완전히 조화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들이 안식일이나 기타 어떤 날에 경감시켜 줄 수 있는 고통으로 한 시간이라도 고통당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신다.

하나님께 대한 요구는 다른 날에 보다 안식일에 한층 더 크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평시의 작업을 떠나서 명상과 예배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들은 다른 날보다도 안식일에 더욱 많은 은총을 하나님께 간구한다. 그들은 특별한 관심을 보여주시기를 하나님께 요구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가장 훌륭한 축복을 갈망한다. … 하늘의 사업은 결코 중단되지 않으므로 사람들도 선한 일을 결코 중단해서는 안 된다. 안식일은 쓸모없는 무위(無爲)의 시간이 되도록 의도되지 않았다. 율법은 주의 안식일에 세속적인 일을 금지하고 있다. 생계를 위한 일은 중지해야 한다. 세속적인 향락이나 이익을 위한 노동은 그날에는 적법하지 않다.”(소망, 207)



하나님의 율법을 무너뜨림


5.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도록 하기 위하여 유대인들로 하여금 어떤 까다로운 규칙과 유전들을 만들도록 하였으며, 그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예수께서는 그들을 어떻게 탄핵하셨는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마 23:2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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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과 랍비들은 그들이 잃어버린 것을 보충하기 위하여 그들 자신이 만든 여러 규정들을 많이 만들어 냈다. 이 규정들이 더욱 엄격하여질수록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더욱 적게 나타났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결함을 의식의 다과(多寡)로 측정하였으나, 마음은 자만과 위선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의 이러한 까다롭고 짐이 되는 규례들과 함께 율법을 지키기는 불가능하였다. 하나님을 섬기고자 원하는 자로서 랍비의 규례들을 지키려고 힘써 본 자들은 무거운 부담에 눌려 애를 썼다. 그들은 번민하는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다.”(소망, 29)



6.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을 까다롭게 만들어 지킬 수 없는 율법이라는 누명을 씌우고 급기야는 거룩한 안식일을 변경시킴으로 하나님의 율법 안에 무너진 데가 생기게 되었다. 그 역사적 과정을 설명해보라.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단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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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은 자기가 목적한 사업을 성취할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초림 전에 먼저 유대인으로 하여금 안식일을 가혹한 부담이 되게 하여 그날을 준수하는 일이 무거운 짐이 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이와 같이 자기가 만들어 놓은 그릇된 것을 이용하여, 그것을 유대인의 제도라고 모욕하였다. 일요일을 즐거운 축일로 삼아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지키도록 하는 한편 그는 유대교에 대한 증오감을 보이기 위하여 안식일을 금식하는 날이요, 우울하고 슬픈 날로 삼도록 그들을 이끌었다.”(쟁투, 52, 53)

“거의 모든 회의에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안식일은 조금씩 가치를 저하시키는 동시에 일요일은 조금씩 높이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교의 축제일은 신성한 제도인 듯이 높임을 받게 된 반면 성경상 안식일은 유대교의 유물이라는 선고를 받고, 그날을 지키는 자는 저주를 받을 자로 공포되었다. 이리하여 이 큰 배도자는 마침내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살후 2:4)게 스스로를 높이는 데 성공하였다.”(쟁투, 53)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


7. 하나님의 성일에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이라는 말씀의 깊은 의미를 설명해보라.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사 5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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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안식일이 기쁘고 거룩하고 높임 받는 날이 되도록, 그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한다. 가증하고 금지된 오락의 즐거움을 추구함으로써는 이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가정에서 안식일을 높이는 일에 크게 기여할 수 있으며, 그날을 주일 중 가장 흥미로운 날로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녀를 흥미롭게 하기 위하여 시간을 바쳐야 한다. 변화는 자녀들에게 행복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옥외로 나갈 수 있을 것이며, 밝은 태양이 비치는 수풀 속에 그들과 함께 앉을 수 있고, 그들과 하나님의 사업에 대하여 대화함으로 그들의 활동적인 마음에 무엇인가 양식을 줄 수 있으며, 천연계의 아름다운 사물에 그들의 주의를 돌림으로 사랑과 존경을 그들에게 고취시킬 수 있다.

안식일이 우리 가족들에게 참으로 흥미 있는 날이 되어 매주 그날이 돌아옴을 기쁨으로 환호하며 맞이하게 되어야 할 것이다. 가족들에게 적합한 교훈을 나누어 줄 방법을 고안하며, 가족들로 하여금 영적인 사물에 흥미를 갖게 하고,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제시하거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 품성을 완성하시고 영생을 허락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를 제시하는 것보다 부모들이 더 안식일을 높이고 존경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부모들이여, 자녀들이 안식일을 기다리며 그것을 마음으로부터 환영하도록 안식일을 기쁜 날로 만들라.”(2증언, 584, 585)



8.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들에게 어떤 약속이 보증되어 있는가?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사 5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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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그리스도의 창조와 구속의 능력의 표징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그 날은 즐거운 날이 될 것이다. 그들은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봄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즐거워 할 것이다. 안식일은 그들에게 구속하시기에 능하신 그리스도의 권세의 증거로 창조 사업을 가리킨다. 안식일은 사람의 마음에 잃어버린 에덴의 평화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구주로 말미암아 회복된 평화에 대하여 말해 준다. 그리고 천연계의 모든 사물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는 그분의 초청을 반복하고 있다.”(소망, 289)

“교육의 한 방편으로서 안식일의 가치는 측량할 수 없이 큰 것이다. 어느 것이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당신께서 영광으로 풍성하게 하시고 모양을 변화시켜 우리에게 도로 주시는 것이다. … 안식일은 창조와 구속의 능력의 표징으로써 하나님을 생명과 지식의 근원으로 가리키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 창조되던 당시의 영광을 회상케 하며,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우리를 재창조하시고자 하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안식일과 가정은 에덴에서 같이 제정되었는데, 하나님의 목적에서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날에는 여느 날과는 달리 특별한 에덴의 생활을 재현할 수 있는 것이다.”(교육, 250)



안식에 들어감


9. 안식일 준수의 결과는 무엇인가? 우리 모두는 어떤 안식에 들어가야 하는가? 


또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겔 20:12)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히 4:9~11)

마 11:28~30; 히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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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마음의 온유와 겸손을 즐거운 마음으로 배우면 그분은 우리에게 틀림없이 평화와 안식을 주실 것이다. 우리의 뜻과 방법을 포기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투쟁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교훈을 배우면 우리는 평화와 안식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교만과 이기심과 야망을 극복해야 한다. 우리의 뜻은 그리스도의 뜻 안에 삼켜져야 한다.”(화잇주석, 마 11:29)

“제 칠일은 십자가의 진정한 표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창조의 기념이며 구속은 창조―십자가를 통한 창조이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구속 사업을 발견할 수 있고 우리는 그 구속으로 옷 입게 되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은 자아의 완전한 포기 곧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절대적으로 그리스도를 신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안식하고 그 안에서 안식을 찾는다. 십자가는 우리를 태초 곧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 안으로 다시 데려간다. 일곱째 날에 쉬는 것은 창조에서―십자가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완전한 구속 사업 안에서 우리가 죄로부터 안식을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의 표에 지나지 않는다.”(기쁜 소식, 십자가의 영광, 와그너 저)



10. 회복사업이 완성될 때, 여호와의 안식일은 어떤 위치를 차지할 것인가?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롬 2:12)

약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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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 월삭과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사 66:22, 23)

“태초에 아버지와 아들은 창조 사업을 마치신 후 안식일에 쉬셨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창 2:1)었을 때에 창조주와 온 하늘의 거민들은 영광스러운 광경을 보고 기뻐하였다. …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행 3:21) 때가 올 것인데 그 때에도 역시 창조 당시의 안식일 곧 예수께서 요셉의 무덤 속에서 쉬시던 그날이 휴식과 기쁨의 날이 될 것이다. 하늘과 땅은 ‘매 안식일’(사 66:23) 함께 찬양하고 구원받은 민족들은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즐거운 예배를 드릴 것이다.”(소망, 769, 770)



[상고할 말씀]


새로 지음을 받은 세계에서 구속받은 사람들은 태초에 아담과 하와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던 일과 즐거움을 갖게 될 것이다. 에덴의 생활은 정원과 들에서의 생활이 될 것이다. …

그 곳에서는 모든 재능이 계발되고 모든 능력이 증가할 것이다. 가장 웅대한 기도(企圖)도 실행되고 가장 높은 포부가 달성될 것이요 가장 높은 희망이 실현될 것이다. 여전히 그 곳에는 정복해야 할 새로운 고지, 찬탄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경이, 이해해야 할 새로운 진리, 몸과 정신과 마음의 능력을 요구하는 새로운 연구 제목이 나타날 것이다. …

바야흐로 이 모든 일들이 성취되려는 찰나에 서 있는 우리들에게 앞으로 될 일 곧 우리의 시조가 에덴동산을 떠난 이후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바라고 기다리고 갈망하고, 기도한 사건들에 대한 이러한 묘사가 얼마나 장중한 사건이며 활기를 주는 관심사인가!

순례자 동지들이여, 우리는 아직 세상일의 그늘과 소요 속에 살고 있으나 머지않아 우리의 구주께서 구원과 안식을 주시려고 나타나실 것이다.”(선지, 730, 731)